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나

근대화의 눈앞에서 흔들리는 에도막부

by 조강

근대화의 물결과 충격

근대사에서 동아시아에 속한 3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여 서양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고, 제국주의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입장을 스스로 바꾼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이상하게도 통치자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물러났으며, 본인의 신분을 버리면서 새로운 나라로 변신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바로 일본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606년 오사카 여름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치의 본거지인 에도로 돌아와 에도막부를 설립하게 됩니다. 270년간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일본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건 18세기말 러시아가 통상 요구를 해오면서부터 입니다. 러시아 제국의 해군은 홋카이도 인근에 다다르게 되고, 급박해진 막부는 홋카이도를 직할영토로 삼으면서 러시아와 홋카이도 사이에 지형을 조사하게 됩니다. 서양 세력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 옆나라 인 청나라에 아편전쟁이 터집니다. 서양 세력의 힘을 몰랐던 일본입장에서는 황제의 나라이자 동아시아의 패자(覇者)였던 청나라가 조그만 섬나라 영국에 졌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미국이 에도 앞바다에 등장합니다. 페리 제독이 4개의 함선을 이끌고 일본에 통상요구를 한 것입니다. 당시 증기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두려움 그 자체였고, 일단 잘 타일러서 미국으로 보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1854년 다시 나타난 미국은 통상요구를 하고 막부는 격렬한 의견대립에 부딪히게 됩니다.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무너졌고, 서양에 대해 '개항'할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이 와중에 상징적인 존재였던 텐노가 정치의 중심에 서기 시작합니다. 막부는 미국과 통상을 체결하려고 하였으나 텐노는 이를 거절한 것입니다. 가마쿠라 막부 이후로 700년간 이어져왔던 막부의 권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입니다. 텐노의 거절의사는 막부가 텐노를 보좌하면서 정치를 대리하고 있다는 명분을 뿌리째 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막부는 텐노의 의사를 무시하고 통상을 체결하고, 일본 사회에는 막부에 대한 반감과 동시에 존왕양이(尊王攘夷)사상이 싹트게 됩니다.


에도막부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곳은 현재 야마구치 현의 조슈번이었습니다. 모리(毛利) 가문이 지배해 온 조슈번은 기존에는 서일본 전체를 아우르는 영지를 보유했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로 영지가 대폭 축소되면서 조슈번으로 한정되게 됩니다. 매년 새해 인사로 다이묘에게 "이번에는 막부를 공격할까요?"라고 물어보는 게 통상적인 인사가 될 정도로 막부에 대한 반감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현재 가고시마현이 위치한 사쓰마 번도 막부에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천황의 정치적인 발언을 두고 흔들리는 막부 앞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한데 이때 눈에 들어온 게 전통적인 지위는 있으나 실력은 없었던 텐노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쓰마와 조슈는 16세의 메이지 텐노를 옹립하여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우선 오쿠보 도시미치와 이와쿠라 토모미는 천황의 신병을 확보하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교토의 궁궐을 포위하면서 정권을 잡습니다. 또한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를 조정의 적, 조적으로 선언하고 토벌하기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궁중혁명이 일본의 역사를 흔들어버리는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의견은 일치하나 속도가 다르다

사실 막부와 사쓰마, 조슈번 모두 개화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속도는 달랐고 새로운 일본의 주인이 되기 위해 경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흥성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면서 서양을 배척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즉, 개방을 하면서도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막부와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던 번들의 대결이 바로 메이지유신입니다.


언제나 개방과 개혁은 기존 세력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에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1853년 에도만에 미국 함대가 등장한 이래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고 왕을 옹립한다는 존왕양이 사상은 조슈번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막부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번들은 막부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텐노의 의견을 무시하고 막부가 마음대로 개항을 시작하자, 존왕양이 사상은 극에 달했고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1863년 조슈번은 큐슈와 혼슈를 연결하는 칸몬해협을 지나고 있는 미국무역선을 무차별 공격하고 극단적인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미국과 함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4개국은 조슈번을 공격하면서 시모노세키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사쓰마에서도 교토에서 돌아오는 번주 앞에서 예를 표시하지 않고 말을 타고 지나가는 영국인들을 죽여버리고 영국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2개의 번 모두 강한 존왕양이 사상이었으나 모두 패배했고 이 전쟁을 기점으로 해서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적극적인 개국론으로 돌아선 조슈,사쓰마는 막부 못지않게 개항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양의 신식무기들을 구입하면서 신식 군대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조슈번의 시모노세키 전쟁과 사쓰마번의 영일전쟁에 대패하면서 조슈, 사쓰마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개항을 외치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게 됩니다.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신속한 태도 전환은 태평양전쟁 패배 이후에도 미군에게 빠르게 협조하는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강함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는 게 생존에 유리한지 파악이 빠르다고 할까요.


결국 이이 나오스케에서 시작한 서양과의 조약 체결로 막부도 개방에 나서고 있었으나 조슈와 사쓰마의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막부의 눈을 피해 서양에서 무기를 수입해 오고 막부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군대를 갖추게 됩니다. 막부는 웅번(雄藩)의 조합을 이기지 못하고 조정의 적(敵)이 되면서 역사에서 퇴장하게 됩니다.



막부의 묘수, 대정봉환

앞서 알아본 조슈번의 시모노세키 전쟁은 말 그대로 막 나가는 조슈번의 정책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교토에서는 급진개화하지만 조슈번은 전쟁의 책임배상문제를 막부에 떠넘겨 버렸고, 막부는 조슈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슈와 전쟁을 벌인 막부는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사망하게 되고 후사로 정치계의 브레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5대 쇼군이자 마지막 쇼군으로 막부의 지휘권을 잡게 됩니다.


막부는 몰락 중이었고 막부의 말을 고분고분 듣던 번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막부의 힘은 말 그대로 칼에서 나왔습니다. 서양과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까지 서양과 전쟁을 피했던 이유는 막부의 권력이 기반하고 있는 정통성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힘에 있어서는 자신 있었던 막부가 조슈번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조슈번은 기병대(奇兵隊-이상한 군대)를 만들어 사무라이가 아닌 농민들과 상인들로 구성된 기형조직에 서양식 군대를 만들었고, 결정적으로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동맹을 체결하면서 전국의 번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가 컸습니다.


막부의 끗발이 점점 떨어져 가던 사이에 15대 쇼군 요시노부는 정치적 지형을 면밀히 분석하고 천재적인 신의 한 수를 두게 됩니다. 전국의 번들이 막부를 몰아세우던 번들의 명분을 없애는 대정봉환을 해버린 겁니다. 스스로 권력을 다시 700년 전 텐노에게 헌납하게 되면서 요시노부는 명분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교토를 에워싸고 궁중혁명을 일으킨 조슈~사쓰마번의 신정부군이 에도성으로 밀고 들어오는 찰나에도 ‘전쟁 없이’ 에도성의 문을 열어줍니다. 요시노부는 전쟁을 극히 피했지만 내전으로 인해서 일본 전체의 힘이 빠지면 결국 서양 세력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260년간 이어져왔던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미래는 만드는 게 아니라 읽는 것

일본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조선 바로 옆 섬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서양의 침략을 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고구려고 당나라와 싸우고 조선이 일본과 싸운 것과 비하면 외세의 침입이 거의 없었던 일본은 오히려 1853년 페리의 등장으로 인해 불과 15년 만에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게 됩니다.


외세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고, 전통은 무력했습니다. 사무라이들 특히 하급 무사들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 시행착오 끝에 막부 말기의 정세를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사무라이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시대정신을 읽었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주인은 표면상으로는 천황이었지만 오랫동안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그림자 세력이 일본을 지배해 왔습니다. 철통 같던 막부의 권력은 외세의 침입으로 흔들렸고, 바람 속에 출렁이는 일본을 제대로 읽은 것은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던 하급 무사들과 본인의 안위보다 일본의 안위를 생각했던 요시노부였습니다.


권력관계, 국제정세, 신분사회는 항상 변해갑니다. 미래를 정확하게 어떻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시대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미래의 방향성은 잡을 수 있습니다. 시대를 읽으면 문제가 등장하고 정확한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의 의견은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이 되며, 새로운 시대가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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