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쇼군 요시노부의 선택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대정봉환(大政奉還)

by 조강

권력을 포기한다는 것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눈앞에 있는 이익은 지금 당장에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을 가져다 줄수도 있다. 선택의 순간에 개인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우선하고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시야가 넓어지는 게 아닐까. 개인과 사회는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고 조금 더 넓은 이익을 통찰했던 인물이자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의 시대로 가보자.


1853년 일본에 등장한 페리 함대와 마주한 일본은 서양을 배척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은 정식으로 통상조약을 체결한 미국의 화물선을 공격해 버린다. 과격한 조슈번은 조정에서 명분을 잃어버렸고 막부는 조슈번을 조정의 적(조적)이라 칭하고 공격하게 된다. 처절하게 굴복당한 조슈번을 뒤로 일본은 점점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서양의 강력한 군사력을 경험한 몇 개의 번주들은 더 이상 막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기 시작한다. 특히 조슈번은 1차 정벌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자신들만의 양이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점점 막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조슈번을 공격하기 위해 2차 정벌을 계획하지만 이번에는 사쓰마 번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미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서양식 군사력을 갖춘 사쓰마번은 막부의 통제권에 따르지 않고 텐노를 중심으로 조슈번과 함께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에 이른다.


막부의 운영이 꺼지기 직전, 2차 조슈 정벌을 하던 중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사망하게 되면서 쇼군 자리는 공석이 된다. 누군가는 채워야 했고 절대적인 후보가 어릴 적부터 총명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였다. 이미 불타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막부에 쇼군이 된 요시노부는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야만 했다. 이때 요시노부공의정체(公儀政体)를 모토로 일본의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자 했다.


공의정체는 천황이 중심이 되어서 하부에 상원과 하원을 둔 민주적인 의회 정치 체제였다. 요시노부는 만약 내각제가 시작되면 본인의 재산과 권력이 강하므로 영향력을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은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필요했고 변화의 중심에 막부가 설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공의정체 제안은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전략으로, 요시노부는 쇼군의 정치적 권한을 교토의 천황에게 다시 되돌려주게 된다. 이른바 대정봉환(大政奉還)이다.


새로운 정부 그리고 니시키노미하타

하지만 신정부를 꾸린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요시노부를 그냥 두면 새로운 일본이 탄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천황을 필두로 하여 요시노부의 영지를 모두 몰수해 버리는 대호령을 발표하면서 막부와 신정부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요시노부는 군대를 모아서 전쟁을 일으키지만 천황의 군대에는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가 걸려있었다. 이 깃발의 의미는 천황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관군이라는 의미였다. 즉, 요시노부의 군대는 조정의 적이 되었고 쇼군의 입장에서는 천황을 보필하면서 정치를 하는 입장의 명분이 사라져 버리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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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부 본인 또한 이대로 전쟁이 이어지면 일본은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힘을 쓸데없이 써버린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결국 요시노부는 전쟁터에서 홀로 이탈하여 에도의 우에노 관영사(寛永寺)에 칩거하면서 싸울 의지가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한 신정부군은 교토와 오사카를 정리하고 에도성으로 진격한다. 하지만 사전에 요시노부의 의지와 함께 신정부군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막부군의 카츠 카이슈의 비밀 협상을 진행한다. 결국 신정부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에도성을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끝까지 본인의 권력을 놓치지 않고 몰락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요시노부는 쇼군에 취임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대정봉환으로 권력을 내려놓았다. 비록 본인이 혁신에 중심에 서지는 못하였지만 에도성을 전쟁 없이 내어주고 본인은 도쿠가와 가문의 고향인 시즈오카로 내려가 46년을 은둔하면서 살았다. 최단 임기 쇼군이자 최장수 쇼군의 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이 나오스케가 대로에서 내려오지 않으면서 안세이 대지옥의 폭정을 삼았던 행보와는 전혀 다른 선택이었다.


현재의 권력보다 큰 그림

요시노부의 대정봉환은 치밀한 정치적인 계산이 앞서 있었다. 비록 막부에서의 쇼군이라는 직위는 사라지지만 근대적인 의회라는 정치 구조에서 권력은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의회 정치체제는 도입되어도 그 중심에 요시노부가 설 자리는 없었다. 조슈와 사쓰마의 동맹은 한발 더 나아가 요시노부의 모든 권력의 포기를 요구했다. 개인의 욕심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욕심이 충돌하는 시기였다. 만약 요시노부의 바람대로 권력을 유지한 채로 민주정부가 설립되었다면 독재가 끊이질 않았을 것이고, 것만 형태만 다른 막부 체제가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행히 요시노부는 20대부터 개인의 욕심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판단력이 빠른 만큼 그가 본 현실은 권력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고 결국 대정봉환에 이어 일으킨 전쟁에서도 빨리 항복하면서 에도성을 그대로 신정부군에 넘겨주면서 무의미한 출혈을 방지하였다.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공존한다. 개인적인 욕심에 지배되는 자아도 있고 나의 환경을 지탱해 주는 국가를 위한 애국심이라는 자아도 있다. 만약 개인의 욕심이 끝도 없이 펼쳐지게 된다면 나를 넘어선 환경을 위하는 자아는 소멸될 것이다. 심지어 개인의 욕심 자체가 엄청난 영향력이 큰 사람에게는 국가를 파멸로 밀어 넣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빨리 현실에서 선택의 결과를 크고 깊게 경험할 수 있다.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나 칩거생활을 한 요시노부의 선택은 많은 이로운 점들이 있었다. 빠른 근대화를 할 수 있었고, 불필요한 내전을 없앨 수 있었고, 서양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요시노부 본인도 장수를 누릴 수 있었고 일본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을 한 셈이다.


욕망과 욕심에 매몰되어서 현재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은 위험하다. 이 선택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결과가 나에게만 이로운지 사회에 이로운지 혹은 지금 당장 이로운 건지 장기적으로 이로운 건지 고려를 해볼 필요가 있다. 올바른 선택이 중첩되고 지속되면 올바른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한 결말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결이 맞지 않을 때는 은거도 답이 된다

요시노부는 판단력이 빨랐던 사람이다. 막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에도성은 어떻게 될지, 근대화를 일으킨 일본은 어떻게 될지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막부를 해체하고 에도성을 반납하고 보신 전쟁에서도 빨리 이탈할 수 있었다. 시즈오카에서 은거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요시노부가 원했던 정의가 일본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본인의 적극적인 공백 덕분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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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폐번치현(막부 체제의 행정 시스템을 근대적인 현으로 바꿈), 폐도령(무사들의 칼을 소지하는 권리 박탈), 징병령(근대적인 군대 조직)을 빠르게 시행된다. 이런 근대 정책에서 가장 소외된 것은 에도 시대의 무사 계층 즉 사무라이(侍)었다. 신분의 특권과 동시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무사들의 반발심은 커져만 갔고 그 연장선에서 정한론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만약 요시노부가 여전히 메이지 유신에 참여할 의지를 가지고 정치적인 성향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전국의 무사들은 막부의 마지막 쇼군이자, 무사의 아이콘인 요시노부를 중심으로 다시 결집을 했을 것이다. 보신 전쟁 수준으로 끝나지 않고 전국적인 내전으로 바뀌고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의 힘을 빌리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일본의 주권은 외국에게 빼앗기고 근대국가는커녕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해서 동일본과 서일본으로 분단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막부 말기, 요시노부의 개인적인 고뇌를 상상하면서 나의 선택을 되돌아보자. 선택의 이익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혹은 개인적인가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내가 아닌 상대방을 돌아보고, 지금 당장의 이익 보다 미래를 위한 선택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의미 있는 선택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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