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우승한 '나폴리 맛피아'는 첫 라운드에서 안성재 심사위원에게 '보류' 판정을 받았다. 안성재 심사위원의 표현을 빌리면 전혀 "쓰잘데기없는 걸" 접시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나폴리 맛피아는 보기 좋고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고도 아무 맛도 안 나는 꽃을 장식용으로 넣은 탓에 재료의 사용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에 백종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음식이 맛 좋으면 됐지 꽃에 의미가 없어서 보류해 놨다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설명이 웃기다고 생각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음식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재료의 종류로나 양으로나 다다익선이라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인 것 같다. 다양한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갈수록 음식이 나아지리라는 기대 말이다. 그러나 안성재 심사위원은 음식에 "쓰잘데기없는 걸" 넣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이를 일관되게 심사 결과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생을 요리하라' 라운드에서 나폴리 맛피아와 트리플 스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 이유다.
나폴리 맛피아는 '할머니의 게국지 파스타'를 설명하며 태안과 서산을 중심으로 한 요리이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로만 만들었다고 했다. 첫 라운드의 '의미 없는 꽃'에 대한 오답노트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멋있게 보이려고 비싼 재료들을 "때려 넣었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뺄 수 있다는 것은 정확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맛있고 절제돼 있고 재료에 충실"한 음식이라고 상찬했다. 한편, 트리플 스타는 미국에서 힘든 시절 먹었던 클램차우더 수프를 파인다이닝 음식으로 재해석했다면서도 여기에 맥락 없는 이빨고기를 넣어 메시지에 비해 과잉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에드워드 리의 '나머지 떡볶이 디저트'에 대해 호평하며 "필요 없는 재료가 들어가 있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예술가 역시 무엇을 넣을까 못지않게 무엇을 뺄지 고민한다. 화가는 무엇을 그릴지 못지않게 무엇을 그리지 않을지 고민한다. 위 드로잉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자신이 키우던 개, 럼프를 그린 것이다.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은 닥스훈트의 특징을 일필휘지로 포착했다. 한 개의 선으로 연결된 개의 형상은 앞다리 끝에서 우뚝 멈춘다. 피카소가 그리다 말았을까? 미완성 같은가? 왜 피카소는 저 앞다리를 폐곡선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이 드로잉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을 열어놓은 저 앞다리에서 나온다. 덕분에 개의 형상에 숨구멍이 생기며 여백과 분리되지 않은 개방감과 활달함을 자아낸다. 피카소가 저 앞다리와 머리를 연결하는 선을 '그리지 않기로 선택'한 결과다.
360도 공간을 담아내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술이 나왔을 때, 많은 영상 창작자들이 혼란에 빠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에는 카메라 안의 공간과 카메라 바깥 공간이 구분되므로,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프레임은 가상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공간과 현실의 물리적 공간 사이에 경계를 이루며 서사적, 심미적 정보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런데 가상현실 영상은 360도 공간을 다 담아내므로 프레임 자체가 사라진다. 가상현실 영상 창작자들의 근본적 고민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잘라내지 못하는지라 시각 정보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빼고 싶은 것을 빼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예술은 주제나 개념을 구현하는 데에 모자라도 안 되지만 넘쳐도 안 된다. 안성재 심사위원이 언급한 '절제'의 미덕이다. 수학 개념을 빌리자면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키는 '해(解)'를 구하는 것이다. 물론 예술에서 그 답이 맞는지 증명할 길은 없다. 작품이 누구를 얼마나 설득시키는지를 결과적으로 살펴보고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거슬러 올라가 반성적으로 되짚어볼 뿐이다. 그러나 예술에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가 없다면 작품이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해가 무수히 많다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뿐일 것이다.
좋은 작품은 먼지 한 톨 앉아도 균형이 깨지는 천칭과 같이 작가의 의도를 팽팽하게 구현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의 플롯에 대한 설명에서 유기적 통일성을 강조하며 말했다. "있으나마나 별 차이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1984)에서 살리에리는 모짜르트의 음악을 이렇게 설명한다. "음표 하나라도 건드리면 음악이 훼손될 거야. 소절 하나라도 건드리면 구조가 무너질 거야.(Displace one note and there would be diminishment. Displace one phrase and the structure would fall.)" 모짜르트의 음악에는 빼거나 바꿔도 되는 잉여적인 음표, 잉여적인 소절 하나가 들어있지 않다는 얘기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ZlMEBj7P2M
** 덤으로 밝히자면, 실사 기반 360도 영상 촬영에서는 '카메라 뒤' 공간 역시 사라지므로 촬영 시 감독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숨바꼭질하듯 숨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