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더듬이였다

by 에밀리


어릴 때부터 나는 낭독하기를 즐겼다. 책을 펼쳐 시와 수필, 때로는 선언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미세한 떨림과 장단, 문장 사이의 여백에 귀 기울여 들었다. 말의 의미보다 먼저 소리가 다가왔고, 그것은 시각화한 활자와 다른 울림이었다. 학창 시절, 막연히 ‘나중에 성우가 되어도 좋겠구나’ 생각했다.


낭독의 시작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말을 더듬는 아이였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 자주 막혔고, 그 침묵이 두려워 혼자서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었다. 지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놀라워하고, 나도 오랫동안 잊고 살아서 그때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나에게 낭독은 생존에 가까웠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한데, 번번이 입 안에서 맴돌고 어버버 걸려 넘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방 안에서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문장은 차츰 내 호흡을 찾았다. 그렇게 말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 재촉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 기억은 딸을 통해 다시 생생히 떠올랐다. 티나는 말이 어눌했고 발음이 또렷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뭐라고? 다시 말해줄래?” 하고 물으면 속상해하며 입을 닫아버리곤 했다. 고등학생인 지금은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때의 아이는 말 앞에서 주춤했다.


어느 날, 나는 작은 두 손을 잡고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티나가 엄마를 닮았구나. 엄마도 그랬어."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엄마가?” “그럼, 말이 잘 안 나올 때가 많았어." 티나의 얼굴은 진지해졌다. “엄마는 어떻게 말을 잘하게 됐어?”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속으로 ‘우’나 ‘어’를 먼저 준비하듯 입모양을 만들고 낭독을 하거나 대화를 시작했어." 혼자 있는 시간마다 소리내어 읽으며 목소리를 듣고 가다듬던 연습,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을 때까지 반복하던 시간들. 그러다 보니 문장을 외워 낭송하게 되었고, 낭독은 두려움이 아닌 나만의 안식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돌아보면, 낭독을 통해 스스로 서는 법을 배웠고 이제는 그 경험을 타인에게 전한다. 낭독을 통해 얻은 것은, 말을 유창하게 잘하게 된 결과보다 '나를 끝까지 다독이는 태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낭독은 길이 되었고, 우리는 소리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