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도 몰랐던 남편의 두려움

by 제이

“내 부서가 한국 지점을 닫는다고 했을 때…
혹시 내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
그날이 아직도 생생해.”


평소 남편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라,
이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은 처음 듣는 고백이었다.

15년 전, 남편은 그 일을 계기로 한국 회사를 떠나
독일을 거쳐 미국 실리콘밸리로 오게 되었다.
그저 물 흐르듯 이곳까지 흘러온 줄만 알았는데
그 뒤에는 혼자서 견뎌낸 두려움과
밤마다 마음을 무겁게 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니 괜스레 마음이 시렸다.


그날 저녁, 우연히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이 20년 넘게 몸담아 온 회사에서
위기를 맞는 장면이 나왔다.
감정의 결이 너무 현실적이라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20년 넘게 대기업 다니면서 서울에 집 있고,
애 대학 보냈으면 진짜 대단한 거야.”

그 대사가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내려앉았다.
체념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어쩌면 묵묵히 버텨온 세월의 무게를
숨 쉬듯 담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아무 말 없이 걸어온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고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오래 남았다.


예전에는 남편이 특별히 고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늘 같은 표정, 늘 흔들림 없는 말투.
하지만 이제는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책임과 두려움이 있었는지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함께 살아도 서로의 세계를
완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한 걸음씩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게
어쩌면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인지 모른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지?”

위로를 건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의 마음을,
이제는 함께 들여다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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