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상대방은 그저 던진 질문일 뿐인데
이 말은 유독 내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남편을 따라 해외에 살게 되면서
직업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말을 할수록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다른 실수를 해도,
무언가를 잘 못해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왜 이 질문 앞에서만 그럴까.
“직업이 없다”,
“그냥 전업주부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적어도 자기 밥값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깊이 끌어내리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아들과 산책을 하다 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사람들이 무슨 일 하냐고 물으면 괜히 주눅 들어.
엄마라는 역할 말고 나를 설명할 다른 타이틀이 없는 것 같아서.”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엄마,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잖아요.
엄마는 일하는 사람들이 갖기 힘든 시간을 가졌고,
내가 크는 동안 항상 옆에 있어 줬잖아요.
나는 그게 좋았어요.”
내가 늘 아이에게 해 주던 방식으로
이번에는 아이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라고 한다.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전공은 쓸모없어질 거라는 말도 익숙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곁에 있어 주는 시간,
기다려 주는 마음,
성장의 순간을 묵묵히 지켜보는 역할.
어쩌면 나는
사라질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남을 일을 해온 사람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시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쉽게 대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나 자신을 작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