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진짜 친구’의 의미

by 제이

20대의 나는 참 친구가 많았다.
취미가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다.
함께 지내는 친구들은 더 적어졌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닌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취미를 함께 즐기며 웃을 수 있는 친구,
내 속마음을 털어놔도 비밀을 지켜줄 것 같은 믿음직스러운 친구,
생각은 다르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
그중에서도 마음이 복잡하게 엉켜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단연 ‘속마음을 지켜줄 것 같은’ 그 친구다.

팔로알토의 스탠포드 디쉬(Stanford Dish)는
지역 주민들이 하이킹이나 조깅을 즐기는 약 3마일의 트레일이다.
나는 그 친구와 이곳에서 자주 만나 함께 걷는다.


트레일을 도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다.
남편에게 서운했던 일, 아이들 때문에 속상했던 일, 황당했던 사건들,
그리고 “이게 웬 횡재야?” 싶은 좋은 일들까지.
주제는 매번 다르지만, 대화는 늘 웃음과 공감으로 이어진다.


실리콘밸리에는 외국에서 이민 온 엔지니어 부모들이 많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고,
자신이 이뤄온 성취를 아이들도 이어가길 바란다.
그 속에 있다 보면 나 역시 때때로 중심을 잃고 조급해질 때가 있다.


특히 아들이 12학년이 되어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엔
그 감정이 절정에 달했다.
한국처럼 점수로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은 홀리스틱 리뷰—성적, 활동, 추천서 등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다.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몇 달은
마치 회색 안개 속을 걷는 듯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를 찾았다.

트레일을 걸으며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으면
그 친구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크게 공감하거나 조언하지 않아도
“그럴 수도 있지.”
그 짧은 한마디에 마음이 신기하게 가벼워졌다.
같은 속도로 걸으며 내 불안을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스탠포드 디쉬의 바람소리와 친구의 목소리가 섞일 때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된다.
결국 인생을 단단하게 만드는 건 결과나 성취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보며 들어주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의 존재임을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오늘도 그 친구와 디쉬를 돈다.
바람은 제법 차가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하다.
예전엔 많은 친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곁을 지켜주는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