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10대의 나와, 내가 그랬듯 앞으로 나아갈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by 지경


9살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따로 살기 시작했다.

나는 우울증이 심해져 우리와 못 살 것 같다는 엄마와 떨어져 서울에서 꽤나 깡촌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아빠손에 붙들려 열명이 채 안 되는 반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겨우 겨우 적응하고, 입이 거칠고 폭력적이던 아빠와 치매기가 심하셔서 나를 매일 때리시던 할머니에게 익숙해질 때 즈음, 아빠는 엄마와 합치고 싶었는지 나와 동생을 대구에 사는 엄마 집으로 16살까지 2주에 한번 정도 주말 동안 보내주었다.


그렇게 가끔씩 보는 엄마는 내 기억 속의 착하고 나에게 상냥하기만 한 엄마가 아니었다. 스트레스와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밖에 내보내두고 그렇게 싫어하던 아빠뿐만 아니라 아빠를 닮았다던 나의 성격, 가치관, 생김새 등을 가지고 울고 불고 욕해댔었다.

그때는 내가 다 너무 잘못한것만 같았다. 내가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이라고 믿었던 엄마가 싫어하는 사람과 닮고, 그렇게 행동한다니 너무 큰 죄를 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손바닥을 비벼대며 엄마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외치는 일 밖에는 10살 즈음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엄마 때문에 나는 내적이든 외적이든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제정신도 아니었다. 약 6년간 계속해서 이러한 일이 반복되었으니, 나의 멘탈이 멀쩡했었더라면 그거대로 정상은 아니었을 거 같다.

하지만 그때는 나의 가치관, 생각, 성적, 할머니한테 맞을때도, 아빠한테 목이 졸리며 죽으라는 소리와 함께 온갖 욕을 들었을떄도 모든 문제들은 전부 내 탓인 줄 알았다.

그때의 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어서 내가 그렇게 생각, 행동해왔고 지금 이런 내가 완성되었다는 걸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이 지난 후에나 깨달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도 스물한 살에 나는 자취를 했다.

300에 35짜리 원룸 한 칸을 얻었다. 학교까지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모자라고 부족하고 문제투성이었던 모자라지만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보증금과 월세를 해결하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행동하나하나에 제약이 걸리지도 않고 나를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 주는 것만 같은 6살 연상 남자친구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 상상대로 깨끗하고 아기자기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고 내가 애착 갖고 있는 물건들로 가득 차있는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학교와 그 당시 남자친구, 채무문제가 생겨버려서 나는 또 우울 속으로 빠져버렸다. 엄마와 아빠의 품에서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행복하고 앞으로는 정말 행복의 연속일 것만 같았는데, 정말이지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서 2년 정도 나는 최소의 먹고살기 위한 알바만을 제외하고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서 작은 방 안으로 숨어버렸다.


사람들이랑 최소한으로만 연락하고 정말 죽은 듯이 살았다.

아무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나한테 이러기만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어릴 때처럼 내 탓만 하기에는 이제는 내가 머리가 너무 커져버렸다.

정말 이게 내 탓인가? 하는 의문과 내 탓이 아닌 것 같은 나의 마음이 계속 부딪혔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정답은 안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계속 갔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만 지나면 나아진다고 했었는데 정말 너무할 정도로 나는 아직 어리고 상처받고 우울한 상태 그 상태 그대로였다. 또 내가 이상한 건가 잘못한 건가 진짜 생각 많이 했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단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계기나 힘이 생길 뿐이다.

내가 일어나야겠다고 느낀 건 거창한 계기나 힘이 아니었다.

나는 내 잘못으로 나의 10대가 힘들었거나 내향적으로 변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았다는 걸 정말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정말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가끔씩 주변에서 말해도 들리지도 않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맞아, 내 잘못 아니야. 그래, 난 아빠 딸이잖아 닮은게 당연하지. 난 아빠랑 살았었잖아. 그때 엄마 우울증도 심했잖아. 그게 어떻게 내 잘못이야.' 하고 인지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항상 괴롭혀왔던 나의 모든 부정적인 부분이 내 잘못이라고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언젠가 나는 행복하다고 믿고 싶었던 건지, 믿었을 때도 한구석에 남아있던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나는 더 이상 나의 모습 때문에 자괴감이나 우울함이 생길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우울함이 사라지면서 바쁘게 살고 싶어 졌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방을 멀리서 바라봤는데, 조그마한 방에 틀어박혀 먹고 자고 게임하기만을 반복했던 내 방은 더 이상 나의 낙원이 아니었다. 나를 옭아두고 있는 감옥 같았다. 내가 만들어서인지 더 나가지도 못하고, 나갈 생각도 안 드는 작고 더 이상 행복이란 남아있지 않은 어두운 방이었다. 그걸 느꼈다고 바로 치우지는 않았다. 그 방을 치운다고 내가 행복해지거나 우울함이 아예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단지 그냥 혼자 맛있는 케이크나 빵과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고 햇빛을 보고 산책이 하고 싶어지다 보니 어느새 밤낮은 바뀌게 되었고, 방의 쓰레기나 정리 안 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한두 개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을 그렇게 치우기 시작하니 나를 옭아매던 감옥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닌 그냥 나의 방이었다. 낙원도 감옥도 아닌 그냥 방이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부모님도 작은 나의 방도 그냥, 그냥 그런 존재였다. 부모님과 어른들, 주변환경들이 나에게 주변환경이 정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였다. 특히 10대의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던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어른들이 날카롭게 던지는 감정에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말들이 전부 사실인 줄 알고 그 다 그 감정들을 다 뼛속까지 받아냈었다.

하지만 내 의지로 대학교 과를 정하고, 돈을 차곡차곡 모아 자취를 한 후, 그 후에 내가 느끼고 행동한 건 오로지 성인이 돼 독립한 나였다. 엄마아빠의 행동들이 잘했다거나, 정당화 되는것은 절대 아니다. 안 해도 될 걱정과 있어야 할 자신감과 자존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없었던 것은 10대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냥 이제 와서 보니 그 사람들은 그냥 잘못했을 뿐이고 이미 다 지나가서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면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언제까지고 그 사람들의 탓을 할 수도 없다.

나를 넘어뜨렸지만, 나의 인생인데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넘어져서 평생을 살고 싶다거나, 그 상태로 죽을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일어나서 이때까지의 힘들게 살아온 불쌍한 나의 10대와 나의 미래를 위해 걸어가고 싶어 졌다.

내가 일어나게 된것은 다른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나를 위해서, 내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이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 나는 10대의 나에게 어줍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이야기 해주고 싶지 않다.

단지 그냥 충분히 쉬고 넘어져있으라고 하고 싶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걷고 싶으면 걷고, 뛰고 싶으면 뛰는 거다. 아무도 인간은 자기 자신이 불행하거나 힘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이 너무 불행하고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에 더 이상 걷거나 뛰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가도 된다. 남들의 속도에 맞출 필요도 없고 남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내 인생이다. 배가 고파도, 몸을 다쳐서 몸이 아파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상처를 준 사람이나 상처를 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아프다.


정말로 달릴 필요도 열심히 살필요도 없다. 그냥 정말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도, 행복하고 즐거운 것도 본인이 느끼니까 본인을 위해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푹 쉬고 그냥 일어나기만 해도 된다. 그거만 해도 너무 힘들었을 테니까 천천히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몇 살이든 간에 누구보다 스스로가 제일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자기 스스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이다.

지금 많이 힘들고 아파서 더 이상 달려나가거나 걸어갈 힘이 없어서 멈춰있거나 넘어져 있다면, 그대로도 좋으니 충분히 힘들어하고 아파하면서 쉬거나 넘어져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기 자신만의 속도대로 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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