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브런치에 글을 좀 더 자주 올리고 싶은데, 학원도 가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시험 기간은 또 왜 그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도무지 시간이 없단다. 언젠가 10시 30분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간식을 마시자마자(분명 씹어 먹는데, 마시는 느낌이다) 노트북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더니 휘리릭 글을 하나 써서 올렸을 때. 그때 어느 정도는 진심이구나 알았는데. 식음을 전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글이 쓰고 싶고 브런치에도 새 글을 올리고 싶나 보다.
내가 볼 때 내 아이는, 관종이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관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향적인 사람이 있다면 외향적인 사람이 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임의 축이 되어야 사는 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일 뿐. 그래서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시작하고 나니, 글을 써서 구독자도 올리고 싶고 댓글도 받고 싶고 하트도 받고 싶나 보다.
나는 솔직히 대응했다. 나는 솔직한 엄마다.
엄마는 너한테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냐거나 영어를 잘할 수 있냐는 질문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만...
나는 고1 아이가 혹시나 너무 글쓰기에 몰두할까 싶어, 일단 기말 시험에 집중하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가벼운 공모전 또는 독서감상문 이벤트 등을 알아봐 주겠다고 말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건 어떤 거냐고 재차 물었다. 이 정도의 관심은, 대체로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고딩은 다음 달 자기 스케줄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즈음 해외여행을 가겠다며 갑자기 티켓팅을 하고 호텔을 알아보는 엄마 아빠를 아무 관심도 없이 봐 넘기더니, 어제는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나 크리스마스 때 어디, 가?
응. 그래. 너는 일본 여행을 갈 예정이야. 우리는 고1 아이의 겨울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간다는 결정을 내린 부모란다. 며칠 공부 안 한다고 무슨 일 나겠니. 우리는 세상 속 편하고 한편 속 없는 부모란다. 나는 혹시나 고1 아들이, 남들은 윈터스쿨에 들어간다고 몇 달 전부터 대기하고 난린데 이러기냐고 한 마디 할까 봐, 점점 목소리가 작아져 소심하게 중얼거렸는데 웬걸, 아이의 반응은 이랬다.
아, 그래?
그리고 아이는 씻으러 들어갔다.
아이가 세상 쉽게 술술, 글을 쓰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글의 질을 떠나서 일단 빨리 쉽게 쓴다. 독서 감상문도 수행평가도, 그래서 속도가 엄청 빠르기는 하다. 붙잡고 끙끙거리거나 몇십 분씩 잡고 있지는 않는다. 그냥 시작하면, 술술 쓴다. 하지만 정말, 국어는 못 한다. 나는 지난 중간고사에서 아이의 국어 성적을 보고, 진심으로 절망했다. 아, 이건 좀 많이 너무하지 않은가 싶어서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이런 내 아이가 너무나 신기하다. 세상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다. 아이가 이미 이과를 선택했고, 그나마 관심 있고 잘하는 과목이 수학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 신기하다.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글을 잘 쓰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데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나도 10년 넘게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 수월하게 많은 업무들을 해 낼 수 있었으니까.
고백하는데, 나는 아이의 편지에 종종 감동받고 무장해제 된다.
아이는 아직은 가끔은 기념일에 손 편지를 써서 주는데,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아이의 글을 읽으며 심쿵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 이렇게 진솔하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아이는 내내 다정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렇게 진솔하게 너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너의 인생은 처음부터 내내 오랫동안 다정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