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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간서치 엄마의 고민

by Agnes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든 이후 색다른 즐거움이 생겼는데, 바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집에 와서 나와 남편을 상대로 뽐내는 걸 보는 재미다. 엄마 아빠 대학 나왔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 놀이는 첨성대를 아느냐, 이방원을 아느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아느냐 등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진화 및 발전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나는 그날 식사 중 남편에게, 내가 책만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지 않냐고 말하던 중이었다. 남편은 맞다고, 과독하면 안된다고, 음식도 과식하면 체하는 법인데 책이라고 그렇지 않을 리 없지 않냐고, 그만 좀 보라고 했다. 옆에서 식사에 열중이던 아이는 밥을 먹다 말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간서치야? 책만 보는 바보?


그즈음 아이가 이덕무의 간서치(看書癡)를 배운 것이었다. 꽤 인상 깊은 말이었던지 때를 잘 잡아 엄마에게 찰떡 같이 써먹었는데, 우리는 그날 크게 오래 웃었다. 나는 아이가 그 말을 안다는 것에 놀랐고 이렇게 배운 걸 집에 와서 뽐낸다는 것이 몹시 재미났고 그걸 나에게 갖다가 붙인 그 재기에 흡족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아들에게 바보란 소리를 들은 것이다. 흥. 너무한 거 아냐?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제 나는 대놓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선생님은 책이 정말 좋아요. 가끔은 책을 보며 와인을 마시기도 해요. 우리 집 서재 좀 볼래요? 그리고 내 서재(라기보다는 그냥 거실 책장?) 사진을 보여 준다. 뭔가 특별하지 않아요? 그게 뭘까요? 찾아보세요.


우리 집 작은 서재. 거실 책장(의 일부)


그럼 학생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책을 색깔 별로 정리한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 내고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웃어 준다. 나는 이어서 질문한다.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까요?


대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도 대답해 주고 싶은데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내가 스스로 오답을 만든다. 이상한 사람? 이런 식으로. 사실 내가 원한 대답은 '다독가'였다. 요즘 나는 고급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 그리고 '독' 그리고 '가'로 이루어진 조어를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이해하고 받아 적기도 하고 흥미로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가르친다. 선생님은 다독가라고. 그런데 문득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뭐라고 해요?


물론 아이에게서는 '간서치'가 나왔고, 동료에게서는 '책벌레'가 나왔고, 고급 한국어 책에는 '독서광'이 나왔다. 오, 이거 흥미로운데. 하지만 내가 원했던 대답은 '다독가'인데. 예술가, 화가, 작가, 할 때 그 '가'.

어리석거나, 벌레이거나, 광적인 거 말고, 하나의 일가를 이룰 정도로 그것을 이루어 냈다는 뜻의 '가(家)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AI리서처가 그러는데 리디 상위 1%의 다독가는 1분기에 평균 90권을 구매하고 32권을 읽는다고 한다. 나는 세 달 동안 32권보다는 더 많이 읽는 것 같으니 나도 상위 1%다. 흠, 뭔가 흡족하다.


요즘 나의 고민은 내가 너무나도 심한 다독가라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문득 깨어 보니 나는 물정 모르는 40대 여성이었다. 고등학생의 엄마라고 하기엔 학부모로서의 정보가 매우 부족하고, 한참 돈 벌어야 할 나이치고 주식에도 부동산에도 별 관심이 없다. 더 답답한 것은, 야구도 축구도 규칙 하나 제대로 모르며 남들은 10년 간 본 무한도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런닝맨은 서너 번 봤나.


나는 어쩌면, 상식이 좀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잘도 숨기고 살았지. 어쨌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독서가 제일 하고 싶고, 내가 집안일을 서둘러하는 이유는 다 끝내고 출근 전에 독서를 하고자 하는 유인이 매우 크며, 퇴근 후 집에 오면 어서 빨리 침대 속으로 들어가 취침 전 독서를 하고 싶다. 요즘은 출퇴근 시간에 책이 읽고 싶어서, 자동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싶을 정도다. 나에게는 웬만한 모든 것이 독서 다음으로 순위가 밀린다. 학교에 수업하러 제때 가고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는 게 기특할 정도다.


그렇게 읽어 댄 덕에, 내가 노년에 관한 독서 에세이를 낼 수도 있었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는 하는데. 요즘 카카오톡 프로필 이름을 '간서치'로 바꾸고 싶은 반성을 매일매일 한다. 그런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40대 후반에 자기가 물정 모르는 인간임을 발견한 인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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