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사소한 농담
사소한 농담 그리고 "그럼 난 뭐 할까?"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둘이 기억에 남는다. 사소한 농담과 예수정 배우의 그 말. "그럼 뭐 할까?" 영화는 독립영화의 잔상과 상업영화의 잔상, 내게 그 둘을 함께 남겼다. 이야기는 슬프고 아름답다. 하지만 노년의 가난과 외로움은 익숙하다.
이른바 '고기 먹튀 노인 3인방'의 티키타카는 훌륭했다. 그 셋이 주고받는 티키타카는 웃음이 빵 터지기도 스멀스멀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는데, 사소한 농담을 하면서 늙어가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다. 나는 인생을 완성하는 것은 작은 농담들이라고 생각한다. 농담 없는 삶이란, 삶이 아니지. 책방 없는 동네가 동네가 아닌 것처럼(feat. 가브리엘 제빈/섬에 있는 서점).
칠십 중반의 세 노인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농담을 주고받으며 티키타카를 완성한다. 젊은 사람들이 흔히 "빠른"을 사용해 한 살이라도 나이를 많게 또는 적게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런다. "난 출생신고가 늦었어." 곧 여든이 될 할아버지 둘이 형님 소리를 듣고 싶어 야단이다. 남자들이란. 어처구니가 없게 재미있다. 자식도 없고 손주도 없다는 고백에는 바로 이렇게 받아친다. "그럼 총각이야?" 아무도 안 다칠 농담, 나이를 안 따진다면 당연한 농담. 그 사소한 농담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오래된 말도 참 좋았다. "공갈치지 마." 또는 "놀구들 있다." 이런 식의 말들. 딱 그들의 말이다. 내 엄마, 아빠 세대가 즐겨 썼던 말. 그들이 젊었을 적 즐겨 썼던 농담들이다. 그게 고스란히 그들에게 새겨져 있다. 나도 그럴까. 나도 나이 들어서 지금 쓰는 이 말들을 그대로 쓸까.
그리고 또 하나. "그럼 뭐 할까?"
왜 나이 들어서 무전취식하고 다니느냐고, 나이 들어서 왜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리냐고, 안 창피하냐고 묻는 손주에게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뭐 할까?"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젊은 사람이 일을 해야지. 애엄마가 돼 가지고. 자식이 돼 가지고. 그런 말들. 그런 말들이 노인에게도 따라붙는다. 나이 들어가지고. 그래. 그럼 난 뭐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내 아빠의 팔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번도 안 해본 팔순 잔치 어때요? 파티처럼. 아니면 두 분이 여행을 다녀오실래요? 어디로 누구랑. 이제 맛있는 음식도 별로 없고, 손주 재롱 보면서 즐거워할 일도 없고. 성큼성큼 걸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만 보, 이만 보 씩 걷는 해외여행도 용기가 안 나고. 다가올 좋은 날이 차곡차곡 줄어들고 있는 두 분 앞에서, 나는 속 빈 위로도 섣불리 건네지 못했다. 이제 시작인데, 용기와 기운을 낼 일만 남았다. 나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사소한 농담을 할 줄 아는 내 두 노인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