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갔나? 갔지 그럼

feat.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by Agnes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윤주상 배우의 내지르는 말소리가 반복되었다.

나는 그것이 꽤 좋았다.


화가 난 것 같기도 그냥 주변 소리가 시끄러워 크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던 그 말소리. 영국(윤주상 배우)뿐 아니라 판례(양희경 배우)도 그랬다. 두 배우의 소리가 컸던 것은 뱃소리가 많이 들리고 바닷소리가 많이 들리는 곳이어서일 수도, 아니면 두 노인이 나이에 맞게 청력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배우 둘이서 내지르는 소리는 당당하다거나 자신 있게 호언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었다. 그것을 알아서 두 사람의 말소리가 더 내 귀에 박혔는지도 모른다.


갔나?
갔지, 그럼.
됐네, 그럼.


마지막에 영국과 판례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충분한 대화였다. 관객은 이 짧은 대화로 영화가 최선의 결말을 그렸음을 알아챈다. 판례의 아들 부부는 다행히 결국 베트남으로 떠났다. 영국의 배에서 일하는 용수는 판례의 아들이다. 젊은 용수는 이 땅에서의 미래에 기대가 없다. 생기 없이 텅 빈 눈으로 일하던 용수는, 어느 날 영국에게 거짓말을 부탁한다. 자기가 바다에 빠져 죽은 걸로 해 달라고. 그럼 보험금이 나올 테고, 그럼 자기는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그 보험금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서 희망을 찾겠다고.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단정하게 차곡차곡 진행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변수가 있고 갈등이 있고 하나의 이벤트는 살아서 자생력을 갖는다. 짐작과 다른 전개를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영국과 판례는 고군분투한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줄곧 말을 내지른다.


나는 두 배우의 말소리에서 노년의 삶을 보았다. 당당하다기보다는 단단한 말소리. 힘껏 내지르는 말소리. 그것은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분투였다. 그것은 늙은 사람의 고집 또는 성질머리 그런 것으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내 엄마는 이제 75세가 되었고 아빠는 80세가 되었다. 엄마 아빠와 대화를 할 때 나는 자주, 내 에너지로는 더 이상 그들을 흔들 수 없음을 느낀다. 내 활기도 내 농담도 이제 그들에게 그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엄마 아빠는 점점 더 고요해지고 점점 더 좌절하는 눈치다. 3년 후 혹은 5년 후를 떠올리거나 계획하는 것에 자신감을 잃는다. 그러니 10년 후를 말하다가는 결국 "내가 살아 있겠냐."로 끝을 내고 나는 그런 대화가 참 무겁다. 어쩌면 노년이란 내 상상력으로는 절대 짐작하기 어려운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뭐람.


그러니 영화 속 두 배우처럼 내 엄마와 아빠가 말소리를 좀 크게 내질러 봤으면 싶다. 나를 지키는 방법의 하나로, 내가 단단하다는 증거로, 말소리라도.


고단한 영국은 어느 날 술에 취해 신발을 신고 잠을 잔다. 겉옷을 입고 신발을 신은 채 잔다. 그런 건 괜찮다. 영국은 단단하게 내지르는 말소리를 가졌으니까.


너도 다 큰 애다. 어른이지.


남편을 잃어 당황한 어린 신부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다 큰 애이니까 너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잘 살라고. 그 당당한 말소리로 용기 잃은 청춘을 독려한다. 하지만 아직 애라고 말함으로써 위로도 해준다. 너는 다 큰 애다. 알아요, 하지만. 다 컸지만 애다. 감사해요, 그렇게 불러줘서. 나는 영국의 말을 되뇌면서 혼자 답하며 수긍했다. 마치 내 곁의 누군가에게처럼.


나는 다 큰 애고, 어른이다. 그러니 늙는다. 빛의 속도로 늙는 중이다.

큰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