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싶지만 놓아야 할 때」

"붙잡지 않는 대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기로 했다"

by J u

상처는 의외로 오래 남았다.
마음속에서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아주 작은 일에도 그날의 말과 표정이 되살아났다.
그 사람이 건넨 날카로운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 못 한 나의 무력감이 더 괴로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람의 연락처를 지우지 못했다.


왜일까?

상처를 준 사람인데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혹시’라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혹시 마음이 변할지도, 혹시 우리가 다시 좋아질지도, 혹시 이번엔 다를지도.
기도를 한다고 했지만, 사실 내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설득하는 쪽에 가까웠다.


“주님, 이번만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주세요.”
그 기도는 점점 간절해지기보다 집착으로 변해갔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면?”
내가 두려워한 건 혼자 남겨지는 것, 거절당하는 것, 그리고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 두려움이 나를 관계에 묶어 두었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더 꽉 붙잡게 만들었다.

성경을 읽다 마주한 말씀이 있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나는 여호와를 신뢰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내 명철 내 계산과 기대를 의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내 생각과 똑같이 움직이셔야 한다’는 전제를 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제야 조금씩 보였다.


붙잡는 게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붙잡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놓으셨다.
그 사랑은 억지로 묶는 사랑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자유 속에서 관계가 회복되는 건 하나님이 원하실 때,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붙잡지 않기로.
아니, 사실은… 붙잡는 걸 내려놓는 과정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손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한 허전함과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럴 때마다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상처 준 사람의 말과 행동에 내 마음이 휘둘리지 않는 자유, 그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


그 자유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 이미 주신 사랑과 은혜를 다시 붙잡을 때 시작됐다.

이제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제가 내려놓아야 할 것을 붙잡고 있다면, 제 손을 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빈 손에 주님의 손을 꼭 쥐게 해 주십시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붙잡지 않는 대신, 하나님의 손을 더 굳게 붙잡기로 한 것이다.
그분의 손은 절대 나를 놓지 않으시니까.


붙잡음을 내려놓는다는 건, 내 감정이 단번에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었다.
마음속엔 여전히 공허함이 남았고, 때때로 그 사람과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마다, 나는 하나님께 달려갔다.
마치 아이가 어둠 속에서 부모의 손을 찾듯이, 나는 두 손을 들어 기도했다.

그러자 조금씩 내 마음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비워진 자리에는 서서히 하나님의 평안이 채워졌다.
그 평안은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여전히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하나님이 어떤 관계를 멀리하게 하실 때는, 나를 더 귀한 자리로 부르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분은 좋은 것을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다.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이렇게 속삭인다.


“주님, 제가 손을 놓아도, 주님은 제 손을 놓지 않으시죠.”
그리고 그 대답은 언제나 같다.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13:5)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발걸음이 무겁다 못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였고,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선 수십 번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서자 익숙한 공기가 날 감싸 안았다.
책상 위엔 펼쳐 놓은 성경이 그대로 있었다.


며칠 전 묵상하던 자리에 끼워둔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리라. 네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시편 121:8)


나는 그 말씀 앞에 멈춰 섰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놓음’은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완전한 잃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인간적인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끄기를 반복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와, 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동시에 내 안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기도 자리에 앉았다.


“주님, 제가 왜 이렇게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손을 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꽉 쥐고 있는 건 제 의지입니다.”

기도 중에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도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달랐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니, 내 집착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내 원대로만 이루어지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뜻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며칠 뒤, 우연히 그 사람을 마주쳤다.
거리에서 멀리 보였지만,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나를 본 듯했지만, 그는 아무 표정 없이 지나쳤다.
가슴 한쪽이 시리게 아팠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속삭이셨다.
“네가 붙잡는 건 사람이 아니라, 나여야 한다.”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마치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은 듯, 숨이 조금 편안해졌다.

놓는 건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이 꼭 나쁜 건 아니었다.


그 아픔은 내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매 순간 상기시켜 주었다.
사람은 나를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이제는 안다.
붙잡지 않는다는 건 포기나 패배가 아니라, 더 큰 손에 맡기는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축복한다.


그의 삶에 하나님의 평안이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내 삶에도, 하나님의 뜻이 차고 넘치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나는 그 손을 붙잡는다.
그분의 손은 절대 나를 놓지 않으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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