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2009) 이야기

매력적인 실패작, 그가 엮어낸 역설에 대해

by 조성현

"Men get arrested. Dogs get put down"

(인간은 체포한다. 개는 처단한다.) - <왓치맨>(2009) 중 로어셰크의 대사


정의(Justice)를 정의(Justify)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보도록 하자. 로어셰크의 저 대사는 사실 어떠한 면에서 본다면 굉장히 위험한 선언이다. 인간과 개를 나누는 기준은 철저히 본인의 도덕관념이며, 절대적으로 타협이 없는 그의 성향상 그는 인간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분별하여 처단한다. 물론 그가 저 대사를 내뱉으며 '처단'한 대상은 6살 아이를 납치한 뒤 토막살해한 파렴치한 흉악범죄자이기에 저 말은 관객의 공감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로어셰크의 캐릭터성을 더욱 단단하게 해준다. 그러나 현실의 관점에서 저 대사를 곱씹어보도록 하자. 그래서 누가 인간이고, 누가 개인가.


로어셰크를 현실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변변한 직장도 없으며, 위생관념은 엉망이고 동료의 집에 쳐들어와서 대뜸 음식을 훔쳐먹으면서도 뻔뻔하게 훈계를 늘어놓으며, 고집을 부리며 비아냥 거리다가 주변인들과 트러블을 일으킨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사전적 의미의 '루저'이다. 더욱이 로어셰크는 가면을 쓴 모습 '로어셰크'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며, 오히려 가면을 벗고 시민들 속에 섞여있는 볼품없는 모습인 '월터 코벡스'를 위장으로 규정한다.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채 드러나는 이 정체성의 주객전도는 현실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나친 몰입으로 인한 사회성의 붕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이 영화 속에 존재하는 순간, 관객은 이 캐릭터에 가장 열광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단적으로 로어셰크의 캐릭터성을 잘 설명해주는 시퀀스 하나를 들여다보자.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을 죽인 배후를 찾기 위해 자체적인 수사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빅 피셔를 겁에 질려 도망치게 한 뒤 로어셰크가 찾아간 곳은 그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순간, 자신을 상담하기 위해 찾아온 정신과 의사가 근무하던 방이다. 의사는 폭동 현장에서 겁에 잔뜩 질린 채 방으로 피신해왔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로어셰크를 보고 아연실색한다. 패닉에 빠진 의사를 향해 로어셰크는 다가가 이렇게 외친다. "내 얼굴 어디 있어!(Where is my face!)" 의사는 증거물을 보존한 박스를 가리키고 로어셰크는 거기에서 자신의 물건을 찾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면을 뒤집어쓰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말해봐. 이제 뭐가 보이지?"


해당 시퀀스에서 로어셰크는 '가면'을 찾지 않는다. 그가 찾는 것은 '얼굴'로 이 단어의 선정은 로어셰크라는 히어로가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임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그리고 이 얼굴을 되찾은 히어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을 때, 이성적이고 자애로운 의사의 세계는 붕괴한다. 법과 질서로 세상을 수호해야 한다는 일반적 관객의 신념을 배반한 채, 폭동이라는 현장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폭동을 정화하는 수단은 야만적인 로어셰크의 복수심과 증오, 그리고 분노이다. 로어셰크가 의사를 향해 을러대는 마지막 일갈은 마치 그이 역전된 정체성과 마찬가지인 정의 구현의 수단이 상식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구현됨이 드러난다. 그 비꼼을 가득 담은 채 던지는 한 줄의 비아냥은 배우, 재키 얼 헤일리가 내뱉는 음산한 음성과 함께 어우러져 관객에게 오싹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이 역설적인 포인트는 로어셰크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상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은 로어셰크의 얼굴에 새겨진 것과 같은 영화의 가장 큰 얼룩이다. 영화 속 세계에서 히어로의 활동은 명백한 불법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코믹스, 그리고 시네마 내부의 히어로의 활동은 대다수가 불법이다. 사법 체계에서 벗어난, 국가의 공증을 받지 못한 존재들이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범죄자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제압하여 사회로부터 격리 혹은 제거를 한다는 행위는 네 글자로 치환하여 말하자면 '사적 제재'라고 한다. 국가로부터 불법으로 공인되어버린 자경단으로써 활동하며 사적 제재의 철퇴를 휘두르는 것은 즉, 엄연히 범죄 행위다. 여기에서 처음의 물음으로 되돌아 간다. 그래서 누가 인간이고, 누가 개인가.


코믹스의 원작자 앨런 무어는 실제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짜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로어셰크라는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정작 원작에서 시네마에 이르기까지 대중이 가장 열광한 캐릭터는 로어셰크이다. 설마하니 이를 관람한 대중 전체가 루저이기에 그에 공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설계한 실패한 인간군상이 가장 매력적인 서사의 인물을 조립해낸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실패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실패작이 극의 흡입력을 더했음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치 인간사에 존재하는 수많은 실패로 인한 발명품을 목도한 정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을 던진다. 만일 법을 최소한의 도덕으로 치환한다면, 불법 행위를 일삼은 로어셰크는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지 않은 인물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그는 인간이 아닌 개이다. 결국 이 지점에서 영화 <왓치맨>은 로어셰크라는 캐릭터와 동일한 궤적의 자가당착에 빠진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법 밖의 야수가 된 로어셰크처럼, 잭 스나이더는 원작의 비판적 메시지를 계승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그 파괴적 폭력을 가장 아름답게 전시하는 미학적 우를 범한다.


작가 앨런 무어가 설계한 '실패한 인간군상'은 스나이더의 카메라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영웅'으로 재조립되었고, 이 의도의 어긋남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거대한 얼룩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그 얼룩진 실패에 열광한다. 우리는 도덕적 경고보다 감각적 쾌락에 더 쉽게 매료되는 존재이므로. 그리고 때로는, 혹은 보편적으로 저열한 범법자를 보고 사법의 철퇴보다는 강자의 완력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에 열광하는 존재이기도 하기에. 로어셰크라는 매력적인 실패작이 이끄는 이 영화는, 그렇게 미학적 승리가 도덕적 패배를 가뿐히 압도해버린, 인간사의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발명품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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