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싸이코(2000) 이야기

21세기, 베이트만이 배트맨이 되다.

by 조성현

패트릭 베이트만은 완벽한 겉모습을 가진다. 수려한 얼굴, 탄탄한 몸, 재력까지 갖춘 그는 분명 사회적으로 성공한 명망있는 인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를 본 모든 이는 안다. 이는 겉껍데기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패트릭 베이트만이라는 인물의 알맹이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오래된 영화이며 이미 이야기가 많이 된 고루한 소재를 구태여 끌고 오는 것은 그만한 이유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가 비웃는 존재는 여피족이며 이 단어는 이미 20년도 더 된 케케묵은 단어이다. 이제와서 여피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영화의 개봉년도는 2000년이고, 지금은 2026년이며, 미국의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이다. 이제와서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잘 것 없는 일일테다.


그러나 내 뇌리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외피처럼 두른 도덕적 올바름이다. 소위 말하는 글로벌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PC 논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도덕적 원론을 말하는 것이다. 패트릭은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그야말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문장들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깨어있는'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여성의 참정권을 늘리고, 이민자들을 보듬고,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등등.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은 패트릭의 말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이가 누구인지.


사회적 약자들을 설정하고 그들을 향해 시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그 근원적 오만에 대해서는 차치하도록 하자. 그것은 이번 주제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니까. 영화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자면, 베이트만은 여성을 약자로 설정하고 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진출을 도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도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가 여성에게 하는 행위는 가학적이며, 또 음란하기 그지없다. 그들을 향해 시혜를 베풀어야한다는 태도의 이면에는 잠재적 계급론이 존재하며, 마땅히 상위의 존재가 하층의 계급에게 일말의 가학성을 띠는 것은 사실 괴이한 결론의 도출은 아니다. 철저히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말이다.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얼핏 듣기에는 참으로 다정하고도 따스해 보이는 문장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따라붙는다. '어떤 여성을 말인가?' 만일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세상에 목적없는 이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순수하게 믿는 이가 있다면 생활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든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보호 선언은 쉽게 검증 불가능한 미덕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신념이라기보다, 때로는 이미지 관리의 언어로 소비된다. 구체적인 관계도, 책임도 없는 이타성은 종종 자기 연출의 언어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베이트만의 사례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발현하는 소위 말하는 'XX는 과학이다.'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 것은 실존하는 사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혜적 관점을 가진 일부 인물들이 결백한 남성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훈수를 하는 것은 보기에 매우 거북하다.


그렇다. 그리하여 나는 그 날카로운 E(이)를 감춘 채, 히어로(Batman)인양 행세하는 21세기 베이트만(Bateman)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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