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가 가르쳐준 건, 결국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였다
나는 오랫동안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돈이 많아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연봉 1억을 유지하던 순간에도 마음은 늘 불안했다.
“더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머리를 스쳐갔다.
돈은 분명 내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인 건 맞다. 그러나 편안함과 충만함은 늘 다른 지점에 있었다.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글을 쓰고, 감정일기와 감사일기를 쓰며, 긍정 확언을 이어가던 시간이었다.
종이에 한 줄씩 적어 내려가던 그 순간들, 나는 내 안에서 낯선 놀라움을 마주했다.
처음 긍정 확언을 접했을 때 나는 이런 문장들을 적었다.
“나는 천억 자산가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나는 풍요로운 부를 이루었다.”
처음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확언이 쌓일수록 문장의 결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이런 문장들을 적고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책으로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 강연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전한다.”
“나는 나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로, 세상에 작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처음 확언을 썼을 때처럼, 더 많은 돈을 바라는 내용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았다.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내가 되고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는 사실, 돈보다 더 큰 것을 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위로가 되는 글, 마음을 움직이는 강연, 그리고 나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 그것이 내가 꿈꾸던 진짜 부(富)였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망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확언을 통해 나는 돈을 넘어서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행복한 삶은 돈이 많아야 완성되는 게 아니다. 행복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걸.
삶은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희망을 파는 문구점’을 만나고, 확언을 시작하고, 다시 브런치를 만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니. 나는 점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루의 글을 다 쓰고 나서 잠자리에 들 때면 마음이 묘하게 꽉 차오른다. 허전함이 아닌 충만함.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상상했다. 미래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설레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편안히 잠에 들었고, 달콤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딘가 낯선 곳을 걷고 있었다. 공기에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고,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흘러왔다.
향기를 따라 걷다 보니 눈앞에는 커다란 마카롱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케이크 위에는 다이어리와 노트, 펜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먹고 싶었지만, 혹여 케이크가 망가질까 조심스러웠다.
“한입 먹어볼까? 그런데 주인이 있으면 어떡하지? 돈을 내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망설이다가, 결국 마음속에서 속삭였다. “아, 그냥 먹자.”
그리고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나 맛있고, 달콤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 이게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다.”
그 순간 나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달콤한 꿈속을 깊게 헤엄치고 있었다.
눈앞의 케이크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자신의 내면, 그리고 진짜 자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상징이었다. 먹어도 될까 망설이다가 결국 한입 베어 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두려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케이크의 달콤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자유였다. 그러니 이 꿈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그 꿈은, 앞으로 그녀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작은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