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축제에서 만난 낭만적인 재즈 청음회
오늘 하루는 평소보다 빨리 맞이했다. 새벽 3시쯤 눈을 뜨면 보통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켜고 관성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들어간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채워진 피드들 틈에 추천 알고리즘은 한강과 함께 언급되던 하루키의 문장들을 던져주었다. 나는 피드 속 하루키의 글귀들을 보며 그가 작업하며 듣는다는 재즈 100선을 떠올렸다. 그 기억에 이끌려 스포티파이를 열고 누군가가 만들어둔 하루키 플레이리스트를 저장했다. 재즈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으로 스포티파이를 켰고, 그날은 유독 재즈를 선택한 것이다.
약속이 있어서 엄마 차를 얻어 탔다. 언제나 듣는 팝이지만 오늘만큼은 내 정신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와중에 노래의 언어들이 내 생각의 부유물들을 막아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사가 없는 음악을 골랐다. 드뷔시가 남긴 유일한 현악 4중주(C. A. Debussy String Quartet in G minor Op.10). 실내악의 해방이라고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곡이지만 오늘의 무료함과 머릿속의 안개는 '실내악의 해방'정도로는 걷히질 않는다. 여전히 내가 가진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 '답답함'. 절제된 음률의 완벽함이 매지도 않은 넥타이를 풀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새벽에 저장한 하루키 플레이리스트. 엘라 피츠제럴드와 쳇 베이커, 루이 암스트롱의 느긋함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이 저 멀리 사라진다.
그렇게 긴장을 푼 채로 카시트에 몸을 구기며 떠올리는 생각, '나는 왜 이 음악을 좋아할까?' 요즘 고민하는 베르그송의 물질성과 연결시켜 보려고 머리를 굴린다.
재즈의 여유로움과 즉흥성,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정해진 선율에서 이탈하여 그 순간에 맞춰 연주되는 재즈는 그 즉흥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찾는다. 그리고 완성된 결과물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준다. 나는 어쩌면 재즈를 들으면서 나 역시 언젠가 의외성을 즐기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는 잡생각을 한다. 불확실한 삶을 재즈처럼 살아가는 것, 그게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규빈님을 만나러 온 차이나타운은 커피축제가 한창이었다. 행사가 마치기 전까지 나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카페를 찾아 차이나타운을 누볐다. 마땅히 맘에 드는 공간이 없어 길을 헤매다 느긋한 음악이 크게 울리는 거리를 발견하고 홀리듯 재즈음악을 따라 들어간 건물은 청음회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망설이다 들어가서 한 자리 차지하고는 눈을 감고 온몸을 진동시키는 큰 음악을 느꼈다. 현대 재즈 음악의 변천사를 설명하면서 재생하시는 음악 한 곡 한 곡에 몸과 마음이 동한다. 어디서 들었는데 콘서트장에 남녀가 같이 가면 낭만적인 오해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한다. 콘서트장의 큰 음악소리 때문에 심박수가 높아지면, 높아진 심박수의 이유를 상대방 때문이라고 착각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하던데? 내 곁에 이성이 있었다면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기분 좋은 좋은 떨림과 울림을 느꼈다.
물론 이 좋은 떨림이 부정맥 때문이라면 좀 슬플 것 같지만.
아무튼 이렇게 고급행사를 도시의 역사와 맥락 있게 어울리는 장소에서 보여주니 너무 행복하다. 이 도시, 이 거리, 그리고 이 음악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마주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청음회가 끝나고 강연자님께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얻어냈다. 안나푸르나 출판사의 사장님이신 강연자님은 명함도 하나 주시겠다며 출판사에서 운영하시는 부스로 나를 이끌었다.
뒤따라가는 길에 죽 늘어선 각종 음반과 LP를 파는 부스들, 그 활기찬 분위기의 부스들 중에서도 한 가판에서 행운의 2달러를 찾아가라며 다급히 불러 세웠다. 내가 그 사람에게 행운을 맡겨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마도 맡겨뒀을 나의 행운을 찾으러 가판 앞으로 다가가자 사장님은 내게 행운을 두 장이나 쥐어주고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내게 행운을 쥐어주며 행복을 얻는 사람이라니 순수하다. 이 순수함이 나를 다시 웃게 한다.
집으로 나서는 길, 내 귀에는 여전히 재즈가 들려온다. 고즈넉한 LP 바 앞을 지날 때, 묵직한 재즈가 다시 내 팔을 붙잡아 감아낸다. 냉장고만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는 마치 나를 삼키려는 것만 같았다. 엄청난 성량의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즈 음악을 보았을 때 LP핀이 레코드판을 분주히 동동거리며 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게 문턱을 넘지는 않았지만 가게 앞에 잠시 서서 거리를 울리는 재즈의 울림을 온몸으로 흘려보냈다. 재즈는 잠시 침울했던 내 감정을 다시 고양시키고 있었다. 내 온몸을 끌어당기는 동인천의 LP 바 CCR의 그루비한 매력을 맛보고는 좀 더 추워질 11월을 기약하며 그 거리를 빠져나왔다.
불안과 심란함을 머리와 몸에 가득 품고 집으로 터벅거리는 길은 추웠다. 그러나 그 불안과 심란함과 모직니트를 파고드는 찬바람까지 재즈의 따뜻함을 더 감미롭게 느끼게끔 할 뿐이다. 재즈로 가득한 오늘 하루. 마음이 움직이면 그루브가 생겨나고, 단순히 박자만 똑딱거린다면 그건 리듬에 불과하다. 리듬이 삶의 기본 골격이라면 그루브는 그 위에 우리의 감정과 경험을 더해 만들어내는 생동감 있는 흐름이다. 오늘도 재즈의 리듬 속에서 나는 그루비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분명 거리의 더 밝은 곳을 향해 걸을 테지. 단순한 낙관주의라기보다는 재즈를 들으며 '재즈적 사고'를 취한 것이다. 엘라의 목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Can't you hear a pitter-pat
And that happy tune is your step
Life can be so sweet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우리의 딛는 발걸음의 향방이 행복한 선율로 이끌 수 있다는 것, 즉, 우리가 선택한 관점에 따라 삶이 달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아무리 건물이 높고 뚱뚱해도 정오는 찾아온다. 내가 걸을 거리에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을 순간은 매일 찾아온다는 말이다. 삶은 내가 딛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를 위해 준비된 세렌디피티들, 우연한 행운들이 언제나 날 즐겁게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며 그 행운을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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