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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일승 Oct 22. 2021

우리도 국가대표였다(2)

2001 윌리엄 존스컵

존스배를 앞두고 나는 그 당시 스윗치 맨트맨 디펜스(Switch Man to man Defense)에 빠져 있었다. 신장이 큰 외국 선수들에게 경쟁력이 있는 수비가 무엇일까 고민을 하던 중 재빠르게 대처를 못하면 턴 오버를 하게 되는 이 수비를 해보기로 맘먹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수비는 당시 김인건 감독님이 많이 사용하는 전술이라는 보도자료를 보고 전화를 드렸다
이러이러해서 이수비를 배우고 싶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요즘 이수비를 이문규가 잘 쓰더라 나는 너무 오래돼서 문규한태 가서 배워봐 하신다
그래서 이문규선배한테 기본적인 원칙과 요령을 배우고 다른 자료를 첨가해서 이 연습을 시작했다 이수비는 적절한 스윗치 타이밍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수비 위치가 좀 더 공격적이고 뒤를 내주더라도 볼 쪽으로 위치하여야 했다
즉 볼을 가진 공격자와 내 공격자 사이의 중간 지점까지 나면서 스윗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수비 포지션을 하프웨이 포지션( Half Way Position) 이라 한다
어린 대학생들과 군기를 지닌 상무 선수들한테는 최적의 수비 훈련이었다 다만 한 명이라도 스위치를 늦게 하면 바로 구멍이 나는 수비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여러 상황별 준비를 하고 지역방어 하나도 준비를 했다.

이제 첫 경기다.

하지만 대만 언론은 우리가 진정한 국가대표가 아님을 알고 취재의 초점을 우리 팀 전력분석보다 체육부대의 시스템에 집중했다

                           온두라스 팀과 함께


비슷한 상황의 분단국가에서 의무복무를 하는 체육 특기자들의 징집 시 활용제도에 흥미를 갖고 단장으로 온 참모장이나 상무 선수 위주의 취재였다.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는 경기에 몰두했다.

다행히 우리는 약체팀들의 앞선 경기를 순조롭게 이겨나가고 컨디션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서 표명일의 놀라운 경기력이 나왔다. 그는 한국에서 보여준 기량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냉정한 플레이로 경기를 거듭했다. 점점 황성인의 백업이 아닌 표명일 그 자체가 경쟁력이 있는 선수로 변해갔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빠른 기량 발전은 아직도 예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윤영필

현주엽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간간히 출전시간을 조절해 주고 있었고 주로 윤영필을 많이 기용했는데 와..

너무 잘해주고 있었다. 장신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괴력을 뽐내며 우리 골 밑을 잘 지켜주고 가드와 투 맨 게임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김택훈은 수비 스페셜리스트 였다.

형들의 경기를 대학생들은 주로 벤치를 지켰지만 진경석 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정확한 슈팅력이 장기인 그는 거리와 각도에 상관없이 볼이 오면 림으로 영락없이 메이드를 시켜줬다. 함께 한 대학생들은 유독 점프력이 좋았는데 전병석 김경록 박유진 등은 정말 놀라운 점프력으로 리바운드에 가담해 주었다.

약체인 몽골 캐나다 등은 이런 대학생들의 선전으로 상무 선수들은 휴식을 취했고 이제 우리는 두 경기가 남았다.

전승이었다. 필리핀과 대만이었다.

이제 언론의 취재는 대한민국의 군 제도가 아니라  진정 우리 팀의 전력분석이었다.

손규완은 이미 언론에서 별명이 하나 붙여줬다.   "신 수" 그는 신의  손이었다. 3점의 정확도가 50%가 넘었다.

손규완이 볼을 잡을 때마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그는 보답했다. 거의가 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무시무시했다. 나는 대만 귀화를 권유했다. 외모도 그리 대만에서는 이국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ㅎㅎ

당시 대만 농구의 인기라면 아마 큰돈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와 필리핀의 경기는 거의 난투극 같은 수비를 하는 필리핀이었다. 특히 손규완의 수비는 팔꿈치로 내려찍는 파울까지 하는 행동까지 하였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냉정하게 신경전에 말리지 않고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흥분한 김승환 코치가 몇 번이고 달려 나가려 했지만 도리어 선수들이 붙잡곤 했다. 개인기가 뛰어난 필리핀, 운동능력까지 좋았지만 우리의 협력수비에 쓴 맛을 봐야 했다.

표명일 황성인의 영리한 경기 조율과 허를 찌르는 돌파에 필립핀 선수들은 점점 거칠어갔다.

그렇게 치열한 경기를 하지만 경기를 마치고 서로는 금방 친해졌다. 이게 스포츠 아닌가 그리고 농구인 것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를 했던 러시아 팀은 선수들이 몸이 안 만들어져 왔다. 아시아권 대회라 비시즌에 쉬엄쉬엄 관광차 온 그런 마인드였다. 몇 번 겨루기를 해 보다 스코어가 벌어지니 바로 포기했다. 하지만 그 젊은 감독은 꽤나 수준 높은 전술을 들고 나와 그와 친분을 쌓고 싶었다. 그는 구소련에서 국가대표를 5년이나 한 유명한 선수 출신이었다.

스페인 등 유럽 명문 팀에서 용병 생활도 많이 한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나중에 블라디보스토크 팀을 맡아 내가 KTF팀에 있을 때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시가 자매시가 돼있어 교류전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결승전 같은 대만이 남았다. 두 팀도 전승이었다.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몇몇 협회 관계자들이 왔다. 이 대회는 대회 중간에 대만의 남쪽 제2의 도시 가오슝이란 도시로 이동을 해서 경기를 했다. 좀 더 이국적인 맛이 나는 도시였지만 경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만과의 경기는 손규완과 대만과 경기처럼 손규완의 손은 더욱 매서웠다. 그리고 그가 당한 파울은 심핀들의 휘슬이 잘 울리지 않았다. 홈 코트의 이 점인지 대만 팀은 심판의 도움 없이도 좋은 전력을 가졌는데 심판들의 애국심이 경기의 질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대만의 일부 관중들은 오히려 우리를 응원했다.

두 팀이 원 없이 겨뤘지만 대만의 승리였다. 우리 역시 기대 이상의 성과에 오신 협회 관계자나 단장으로 온 참모장도 여간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스포츠를 좀 더 이해하는 모습 이었다.

체육부대에 근무하면서 일부 지휘관들은 모든 것을 군인 정신으로 대신한다. 그러면 다 우승하고 신기록도 가능하다.

하지만 스포츠라는 게 그리 단순한 분야인가 이렇게 경기장에서 같이 호흡하고 느끼다 보면 우승에는 모든 면이 맞아야 하고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간다.

이제 경기 일정은 마치고 전 선수단은 가오슝 관광을 하루 하며 대회 일정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대만 농구협회의 초청으로 식사와 만찬에 참석을 하였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술잔이 한순배 돌자 갑자기 참모장이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중국 고량주맥주를 채워 돌리기를 제안한다 한국의 전통 이란다. 그런 전통은 없는데..

이거 큰 일 났다.  협회 분들은 당황한 눈치다. 나는 단장인 참모장에게 간단히 하고 들어 가시죠라고 했다.

그러자

"추 감독 이 자리는 내게 맡겨요 애들 오늘 내가 싹 보내 버릴게"

단장님 그래도 이건 위험하세요

" 아 이 사람 나를 몰라? 이놈들 혼 좀 내줄 테니..ㅎㅎ 걱정 말고"

사실 나는 술이 약해 양해를 구하고 대신 맥주만 약간 마셨지만 폭탄주를 마시는 대만 농구협회 사람들은

죽는시늉을 하며 독한 술에 힘든 액션을 취한다.

단장은 점점 신이 나서

"니들 오늘 맛 좀 봐라 어제 복수다.."

하며 연신 술잔을 돌린다.

술잔이 몇 바퀴 돌고 대만 인사 중 한 명이 뭐라고 한다.

2차를 가자고 한다. 우리들은 자리를 옮기면서 단장의 의기양양한 폭탄주 활약을 들었다.

자리를 옮긴 곳은 우리 노래방 같은 MTV인가하는  노래방 기계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테이블의 놓여있는 술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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