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빛 시취>

별의 시간으로 예언된 종말에 관해서.

by 황기영

“여기도 아파트 들어서나 보네”

너는 그렇게 말했다. 네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높은 가벽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는 환하게 웃는 모델이 아파트 사진과 함께 전사되어 있고, 그 위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놓은 높다란 가벽. 우리 키의 몇 곱절은 높은 그 가벽 덕에 원래 있었을 녹빛 언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이제 우리의 땅입니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거대한 크레인 만이 그 가벽을 너머 삐죽하게 솟아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해, 아파트를 사지도 못하는 사람이 천지인데 왜 계속 짓는 걸까.”

“그러게, 나중에 가면 공짜로 뿌릴 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너는 이렇게 말했다.

“건물을 짓는 걸 생각하면 역시, 불쾌해. 자연을 ‘자연‘ 스럽게 두지 않는 게 인간의 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집착하잖아.”

그건 분명 그랬다. 친환경 건축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묘한 감각이 떠올랐다. 아마 이 건축 장소에서도 찾아보면 ‘친환경’이니 이런 단어들을 찾을 수 있겠지. 풀과 나무로 뒤덮였던 언덕을 뒤집는다. 풀도 나무도 다시 땅에 넣은 다음, 그 모든 걸 파낸다. 현장의 주변에 세운 가벽의 높이는 우스워질 만큼 녹빛 시체와 갈빛 흙이 섞인 잔해를 깊게, 끊임없이 파낸다.

그런 걸 과연 친환경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아무것도 없어서 벽화를 명물로 내세운 영세한 마을을 떠올린다. ‘텅 빈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해, 그림으로 채워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어서 그 낙서로 가득한 벽이라도 인간의 의지가 이런 것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그런 마을. 아주 배가 부른 도시의 인류도 다르지 않다. ‘공터’를 참지 못해서, 전부 밀어버리고 건물을 올린다. 올라가는 건물들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끝없이 높아질 것이다. 마치 평평한 땅이란 것이 너무 좁다는 듯, 이 지구가 너무 좁아서 우리는 위로 뻗어나간다고 주장하듯.

“아쉽네. 그래도 자주 갔었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갔었다’의 범위를 25년까지 확장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릴 때 말고는 그 언덕을 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그때의 흑과 백의 빛, 녹 빛과 적 빛, 황 빛을 기억한다. 올라갈 때 무릎높이의 수풀을 헤치면서 올라, 반바지를 입은 내 종아리에는 붉은 열꽃이 올랐던 것도, 언덕의 꼭짓점에선 정말 ‘밭’이라고 할만한 들꽃의 무더기가 존재해서, 이름도 모를 꽃들이 세상엔 이렇게 많다는 것도. 무섭게만 생겼던 사마귀가 사실은 너무도 나약해서 사람에게는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도, 잠자리를 잡는 데에는 신중함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어떤 생명들은 수풀을 헤집어야만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도. 그런 것을 배웠던 기억이 흘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제 흙과 함께 교반 된다. 섞인다. 찢어지고 무너진다. 땅속도 땅 위도 구분 없이 아주 골고루 반죽이 된다. 나는 원한이 있는 시체들을 생각한다. 그 흙은,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날 것이다. 독한 풀독의 풋내와, 끈적하고 비릿한 생명체의 체액으로 끈끈하게 응집된 흙은 아주 검고, 지독한 냄새가 날 것이다. 아주 질척한 질감이 될 것이다. 그 흙 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 생명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 모든 것을 비워내 인간이 채워내는 것은 과연 ‘원래 있던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걸까.

언젠간 이 모든 살육과 파괴 행위에 대한, 보잘것없는 존재의 기를 쓰고 몸 비트는 ‘자기주장’에 대해, 거대한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꽤 납득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1999년에도 2012년에도 종말은 예견됐었는걸. 나는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 예언들은 ‘별의 시간을 읽어내서’ 나온 결론인걸. 우주 전체를 24시간을 봤을 때 인류는 겨우 1초가 될까 한 시간 동안 존재 했다는 걸, 다시 한번, 별의 지리한 시간 감각에 대해 생각한다.

종말은 현재 진행형일지도 몰라. 이미 우리는, 이 별에게 미움받았을지도 몰라.

“역시 종말은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네.”

“야 넌 무슨 아파트 이야기하다가 종말 이야기를 해”

“응 아니, 그냥 저러다가 별이 복수라도 하면 어쩌나 해서”

“이미 당하고 있잖아, 11월에 이렇게 더운 게 말이 되냐?”

멋쩍게 웃었다. 손에 들고 있는 지구에 구멍을 내서 만든 캔맥주가 조금 무색했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플라스틱 컵에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빨대가 꽂힌 너의 음료에도 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