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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Dec 22. 2024

천국의 문, 황금아치

맥도날드 광고캠페인

  패스트푸드라고 불리는 먹거리를 둘러싼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영화 이야기다.

모건 스퍼록이라고 하는 감독은 그가 만든 영화 <슈퍼사이즈 미(Super Size Me)>를 무기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 회사 맥도날드와 한판 전쟁을 벌인 바 있다. 자신이 직접 한 달 동안 하루 세끼를 맥도날드 제품만을 섭취하면서 몸의 변화를 기록하고 의사, 영양사, 식품행정 당국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 결과, 패스트푸드가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등 사회적으로 암적 존재임을 부각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는 평을 얻어 냈다.


  이와는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머랩 모건이라는 미국의 한 여성은 역시 자신의 몸을 실험물로 이용해서 맥도날드에서 파는 음식이 다이어트에 매우 이롭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그녀는 90일 동안 맥도날드에서 파는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만을 먹고 16kg이나 체중을 감량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영화 <슈퍼 사이즈 미>가 맥도날드에 대해 악의적이고 불공평한 공격을 일삼았다면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 있는 두 당사자들의 주장이 과학적인 절차를 거친 타당성 있는 실험에 근거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보도에 의하면 영화감독의 방식이 좀 더 믿을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모건 스퍼록이 맥도날드사의 모든 제품을 한 번씩 먹어 본 것에 반해, 머랩 모건은 맥도날드 웹사이트에서 사전에 정보를 수집해서 1,400칼로리 미만의 저칼로리 식단으로 꾸며진 이른바 맥도날드식 식사를 했기 때문에 형평성의 논란은 피할 수 없겠다.


  지구촌 어디에나 불어 닥친 웰빙 회오리에 직격탄을 맞는 패스트푸드 기업의 현실을 말해주는 삽화이다.




  영화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에 시비를 거는 세력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각종 안티 패스트푸드 사이트, 자연식품 먹기 캠페인 등을 통해 패스트푸드는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인 음식이 당신 아이의 머리를 망친다>, <버거의 상징-맥도날드와 문화권력>,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같은 책들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거대한 식품 제국주의를 낱낱이 해부하고 난타해 대고 있다.

  맥도날드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먹거리와 그것을 공급하는 식품재벌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앞에서 든 예화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 세뇌교육을 통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의 반사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만큼 맥도날드라는 테마는 단순히 먹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에 대한 헤게모니와 그에 대한 투쟁 담론을 끝없이 생산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이제 사람들의 혀와 위장을 지배하는 중추기관을 넘어서서 뇌와 신체의 모든 부위를 조종하는 전 지구적 사령부가 되었다.      


 아메리칸드림을 넘어서 미각의 천국으로!


  맥도날드가 미국을 넘어서서 이제 진정한 세계기업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이 되는 과정에서 맥도널드의 상징인 황금아치(Golden Arch)는 아메리칸드림과 세계화에 대한 환상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차별적으로 심어 나갔다.


  ‘오리엔탈’ 치킨 샐러드, 프라이드치킨, 데리야끼 버거, 바나나 파이, 할랄 버거(회교식 쇠고기 요리), 두리안 밀크셰이크, 키위 버거, 연어로 만든 맥락(McLak), 칠리소스로 양념한 프렌치프라이 등... 맥도날드의 세계화 전략은 지구 곳곳의 가게에서 서비스되는 메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황금아치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서 천상의 축복을 받는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차에 탄 채 주문하는 방식(Drive Through)은 그러한 경험에 스피드의 황홀경까지 접합하는 신화로 승화된다. 마치 디즈니랜드의 놀이시설 앞에서 아이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판타지에 온몸을 맡긴 채 무아지경에 함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맥도널드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떤 고객의 증언도 이런 사정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맥도날드는 나와 내 아들에게 있어 모든 것이다. 맥도날드가 아니라면 나는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요리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내 가족들은 더 이상 내가 요리한 것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빅맥을 먹으려 할 것이다.  
"빅맥 덕분에 요리할 일이 없어!"


빅맥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행복의 아이콘?


  맥도날드의 창립은 그 자체로 신화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밀크셰이크 믹서를 만들어 팔던 떠돌이 장사꾼인 레이 크락(Ray Kroc)은 1954년 샌 버나디노(San Bernadino)의 사막에서 자본주의의 천재로 변신한다. 그의 눈에 비친  맥 맥도날드의 점포는 무지개 빛의 광채를 띠고 나타난 오아시스였다.


  이렇게 시작된 프랜차이즈 형태의 맥도날드는 주력 제품 빅맥의 크기만큼이나 상징적인 성장을 거듭해 나갔다. 맥도날드가 비용을 지불한 매체들은 크락의 이미지와 맥도날드의 신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했다.


 1960년대~70년대를 통해 맥도날드는 미국의 어떤 기업보다 많은 광고비를 지출했다. 광고들은 미국의 문화적 전통을 발굴해서 그것들을 어떻게든 황금아치와 연결하려고 애썼다. 이런 전략을 통해 ‘맥도날드가 파는 음식은 모든 것이 선하다.’라는 믿음을 심어 나갔다.


  시리즈로 집행된 광고들은 햄버거야말로 미국의 성조기에 박힌 별 같은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그래서 ‘미국,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당신‘이라는 아포리즘을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어 나갔다. 한편 맥도날드 하우스, 자선사업, 운동경기 후원 등을 통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확산해 나갔다. 이를 통해 제품뿐만 아니라 기업 자체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정당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맥도날드는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갔다.   


  다이어트 콜라 광고가 그랬던 것처럼 맥도날드 역시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주는 무소불능의 존재라는 미신을 유포시켜 나갔다. 음식을 먹으면서까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영양학적, 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따져들 필요가 있을까?


  맥도날드 매장의 풍경을 상상해 보라. 화려한 유니폼을 입은 애교스러운 종업원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행복의 기표를 담은 상품들... 거기에 디즈니사와의 공동마케팅을 통해 맥도날드는 이 시대 최고의 스펙터클로 완성되고 있다. 로널드 맥도널드, 맥도널드 랜드, 캐릭터 인형, 놀이시설 등은 할리우드의 쇼보다 더 현란한 마술을 연출한다.

"맥드라이브는 훨씬 가까이 있어요."




 맥도날드는 또한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를 이야기하는 텍스트로서도 풍성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이 키워드를 둘러싸고 생성되는 코드의 수도 손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영웅적 기업정신, 자본주의의 에너지, 전통적 가족관의 신봉, 효율에 대한 존중, 청결에 대한 자부심, 인습과 오락의 조화,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소비예찬 등을 들 수 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도 맥도날드를 능가할 만큼 그들의 감각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발명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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