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남편은 둘 다 개발자다.
풀재택근무로 일하는 우리는 일 시작 시간이 다르다.
동부 시간으로 일해야 하는 남편은 오전 6시 반에 일어나고,
서부 시간으로 일하는 나는 8시쯤 일어나 오전 9시에서 9시 반쯤 노트북을 연다.
일을 끝내는 시간도 다르다.
일이 많이 없는 날의 경우, 남편은 보통 오후 4시에서 4시 반 사이,
나는 오후 6시에서 6시 반 사이즈음 회사 노트북을 닫는다.
그동안 우리의 일상은 보통 다음과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채 10 보도 되지 않는 거리가 홈오피스이기에, 때로 아침부터 이어지는 미팅으로 바쁜 나머지 잘 잤냐는 인사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집이 사무실이니 당연히 "출근 잘하고 와!"라는 말을 건넬 필요도 없었다.
점심시간에는 서로의 미팅이 겹치기에 후다닥 점심을 만들고, 아직 절반도 안 지난 일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자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재택근무로 일할 경우, 온라인으로 만나는 미팅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직접적인 상호 작용이 없다. 그래서 특별히 회사에서 생긴 큰 이벤트가 없다면 같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일한 우리는, 그날 어땠냐는 질문조차 안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조금 여유로운 퇴근 후, 지인들과 약속이 없다면, 우리는 함께 저녁을 만들고 서로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를 하나씩 섭렵하는 것이 함께 그날의 유일하고도 공통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 이후에는 설거지, 산책 또는 운동, 개인 여가시간 등이 뒤따른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고 서로 일을 하기에도 바빴다.
그저 그날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리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감사했다.
미국에서 이방인의 신분으로 사는, 국적이 다른 우리가 여러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지나와, 둘 다 직장을 구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참 감사가 넘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던가.
내 속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조금씩 생겨났다.
풀재택으로 일한 지 만 3년이 넘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일하는 것이 도저히 집중이 안 됐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돈을 조금 쓰더라도 나가서 일을 할 때가 많았다. 보통은 근처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카페였다.
아파트 내 2층, 인터넷이 잘 되는 라운지룸이 있음에도 굳이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하루를 깨우고 카페에 와서 책을 읽거나 개인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에너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조용한 집이나 거의 아무도 없는 라운지 룸에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알기 어려운데, 밖에만 나가면 ‘이렇게나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집중이 잘 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건
소통의 부재였다
분명 아직 혼인신고를 한 지 채 몇 개월이 안 된 신혼부부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마치 30년은 함께 한 노부부 같았다. 연애를 오래 해서 그런가?
시간이 지날수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풀재택근무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신혼부부”처럼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내가 내린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매일 아침, 누구든 먼저 “good morning” 해주기 (가벼운 애정표현도 해주기)
출근 잘하고 오라는 말이 필요 없는 우리에게는 굿모닝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될 수가 있다.
별거 아닌데, 그래도 이 말을 서로에게 해 주면 더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2. 남편이 좋아하는 아침 메뉴 구상해서 미리 물어보고 만들어주기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는 남편이기에 간단한 아침은 필수다.
내가 일이 바쁜 날에는, 남편이 알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브리오슈 빵 위에 체다 치즈를 올려 아침을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몇 주 전부터 남편에게 유튜브에서 새롭게 찾게 된 토르티야 샌드위치를 만들어줬는데 너무 맛있다며 행복한 얼굴로 그릇까지 싹싹 비웠다. 그 모습을 보니 만들어주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속재료는 여러 조합으로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보통 남편의 장건강을 생각해 채 썬 양배추, 계란, 당근등을 볶고 치즈를 얹는다).
또 한 번은 저녁으로 베이컨 가지구이를 해줬다. 평소 내가 잘 안 먹는 베이컨이어서 집에서 금지 품목처럼 보기 어려운 재료였기에, 남편은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함께 버무려져 오븐에 노릇노릇하게 바삭해진 베이컨 가지구이 또한 싹싹 긁어 먹었다.
3. 전 날에 미리 점심에 먹을 밀프랩 하기
같은 메뉴를 연달아 먹는 걸 안 좋아하는 남편의 식습관을 점점 닮아가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매 점심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다. 재택근무여서 부릴 수 있는 사치인데 그러면 물론 설거지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쾌적한 홈 오피스 환경을 위해 전날 미리 밀프랩을 해 놓는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한다.
물론 바쁜 날은 여전히 치폴레가 넘버원 투고 메뉴다.
4. 점심시간에는 짧게라도 이야기 나누기. 그러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핸드폰 보는 건 자제하기
이건 여전히 서로가 노력하는 부분이다. 미국 회사 특성상 점심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다. 특히나 우리는 일 하는 시간도 다르기에 가끔 미팅이 겹쳐져 있는 날은 점심을 먹으면서 미팅을 듣는 경우도 있고, 각자 가볍게 때우기 바쁘다.
많은 분들이 재택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특히 부부가 되고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거의 모든 분들이 재택근무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집이 사무실인 우리에게는 어쩌면 집이 제일 중요한 일 환경일지도 모른다.
방 1개, 화장실 1개인 환경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거실은 2개의 탁자가 들어선 전용 오피스룸이 되었다가 나중에 서로의 미팅에 얼굴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내 책상을 안방으로 옮겼다.
이전에 14평 내지 스튜디오에서 혼자 생활할 때도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룸메이트 2명과 방 2개, 화장실 2개인 곳에서 거실 공간을 나눠 쓸 때도 돈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참 사람 마음은, 내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저 이제는 남자친구가 아닌 남편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공부나 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하고 함께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들이 하나하나 모여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나를 더 잘 알고 또 같이 맞춰나가며,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