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지 않은 내 몸에 실망한 당신에게

낡은 훈장을 내려놓고, 비로소 진짜 나를 껴안는 시간

by 레슬러 플라톤

"예전 같지 않네"라는 혼잣말이 늘어갈 때

어느 날 문득 계단을 오르다 숨이 턱 막힐 때,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던 체력이 하루아침에 방전될 때, 혹은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 우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립니다. "나도 이제 예전 같지 않네." 저도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학생들이나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할 때면 예전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쉽게 지치는 제 자신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곤 합니다.

젊음과 체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의 하락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반짝이고 유능했던 과거의 내 모습에 갇혀, 늙고 약해져 가는 현재의 자신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지나 보내야 할까요? 그 지혜를 얻기 위해, 평생을 '몸' 하나로 버텨오다 하루아침에 그 몸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스파크스의 연구: '능력 = 나'라는 공식이 무너질 때

영국의 스포츠 학자 앤드류 스파크스(Andrew C. Sparkes)는 1998년, 부상이나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은퇴를 맞이한 엘리트 운동선수들을 깊이 있게 인터뷰하여 한 편의 묵직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엘리트 선수들에게 은퇴는 단순히 '직업을 잃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즉 자아가 완전히 죽어버리는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선수들은 자신의 가치를 오직 '남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무거운 것을 드는 능력'으로만 증명해 왔습니다. 스파크스는 이를 '운동선수로서의 정체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정체성은 그들을 챔피언으로 만든 강력한 무기였지만, 동시에 능력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인생 전체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선수들은 기량이 떨어진 자신의 몸을 보며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내 마음대로 통제되던 완벽한 기계 같던 몸이, 갑자기 내 말을 듣지 않는 낯선 고철 덩어리처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운동선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들은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통째로 찢겨 나간 듯한 지독한 막막함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인생에서 '은퇴한 선수'가 된다

스파크스가 담아낸 이 붕괴의 과정은 결코 메달리스트들만의 특별한 비극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이런 화려했던 '정체성의 붕괴'를 겪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훈장을 가슴에 답니다. '가장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나', '회사에서 제일 잘 나가던 김 부장', '아이들을 완벽하게 키워낸 헌신적인 엄마'. 우리는 내가 이루어낸 성취나 사회적 명함을 자기 자신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명함을 반납해야 할 때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주름이 늘고, 정년퇴직을 하고, 다 큰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가면, 우리는 은퇴한 선수들처럼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능력 있는 직장인, 희생하는 엄마가 아닌 나는 도대체 누구지?" 남들에게 인정받던 능력(Doing)이 사라지자, 내 존재(Being) 자체가 쓸모없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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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하는 자아에서 '존재하는 자아'로 나아가기

그렇다면 끝없는 절망에 빠졌던 선수들은 어떻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스파크스의 연구는 '새로운 자아로 살아남기'의 과정에 대해서도 따뜻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선수들은, 예전처럼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돌아보며, 가족, 친구, 그리고 일상 속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내려놓음의 미학'이 필요합니다. 화려했던 과거의 훈장은 이제 무대 뒤로 조용히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 같지 않은 내 체력과 좁아진 사회적 입지를 '실패'나 '노화'로 여기며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동안 삶이라는 경기장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뛰었는지를 증명하는 영광스러운 상처이자 훈장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이뤄내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다는 철학적 전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원한 챔피언은 없고, 화려한 전성기는 누구에게나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스파크스의 논문이 우리에게 넌지시 건네는 위로는 명확합니다. 상실과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은 서글픈 패배가 아니라,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내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성숙한 용기라는 것입니다.

혹시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줄어든 명함의 무게에 슬퍼하고 계신가요? 남들에게 나를 증명해야 했던 그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지금부터가, 진짜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내 삶의 시작입니다.

낡은 훈장을 내려놓고 마침내 빈손이 된 당신. 오늘 밤엔 그 주름진 두 손으로, 치열하게 살아오느라 고생한 당신의 어깨를 온전히 쓰다듬고 껴안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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