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는 것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과 근육이 가르쳐준 '퇴보'의 잔혹한 진실

by 레슬러 플라톤

'현상 유지'라는 달콤한 착각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쉰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이 무너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은 그저 흔히 '현상 유지'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면 내 체력도, 내 지적 능력도, 통장 잔고도 어제의 상태 그대로 안전하게 '0'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죠.

하지만 '운동생리학'과 '경제학'은 입을 모아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라고 경고합니다. 세상에 정지된 '0'의 상태란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마이너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몸의 경제학: 근육은 가만히 두면 분해된다

수십만 년 전 굶주림과 싸워온 인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 몸은, 지독하게 생존의 효율만을 추구하는 구두쇠입니다. 우리가 땀 흘려 만들어 놓은 근육은 사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칼로리를 펑펑 태워 없애는, 아주 사치스럽고 유지비가 비싼 조직입니다.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필요 이상의 근육은 가성비가 몹시 떨어지는 사치품인 셈이죠.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근육은 한 번 지어놓으면 영원히 굳건하게 버티는 콘크리트 건물이 아닙니다. 체내에서는 끊임없이 낡은 벽돌을 빼내는 작업(단백질 분해)과 새 벽돌을 채워 넣는 작업(단백질 합성)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근육량은 이 분해와 합성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겨우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동적 평형 상태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편안함을 택하는 순간, 우리 몸은 즉각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갑니다. 뇌는 "최근 무거운 것을 든 적이 없군. 이 비싼 조직은 생존에 더 이상 필요 없으니 허물어서 에너지로 써버리자"라고 판단합니다. 새 벽돌을 쌓는 합성은 멈추고, 벽돌을 빼내는 분해의 속도만 맹렬하게 높여 스스로 근육을 먹어 치우는 것이죠. 이를 생리학에서는 '근위축'이라고 부릅니다.

즉, 어제 만들어둔 근육을 오늘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분량의 물리적 자극을 근육에 전달하여, 뇌에게 이 근육이 계속 필요하다는 생물학적 명분을 쥐여주어야 합니다. 가만히 쉬는 것은 근육의 보존이 아니라 '근육의 폐기'를 뜻합니다. 운동하지 않는 몸은 결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퇴보하고 마는 것이지요.


거시경제학의 진실: 솔로우 모형과 '균제상태'

거시경제학으로 눈을 돌려 '솔로우 성장 모형(Solow Growth Model)'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몸과 소름 돋게 똑같은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공장의 기계나 건물 같은 자본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놓고 조심스레 다루어도, 시간이 지나면 기계는 녹슬고 건물은 낡아 부서지기 마련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본의 가치가 깎여나가는 현상을 '감가상각'이라고 부릅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우리 몸의 근육이 서서히 분해되어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 거죠.

그렇다면 이 경제가 퇴보하지 않고 현재의 부유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로우는 이 흔들림 없는 유지의 궤도를 '균제상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단어만 보면 아주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이 균제상태에 머물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구멍 난 항아리에서 물(감가상각)이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그 빠져나가는 물의 양만큼은 위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물(투자)을 부어주어야만 겨우 원래의 물 높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 투자가 '0'이 되는 순간, 경제는 현상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가상각이라는 거대한 중력에 끌려 내려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가 '제자리'라고 믿었던 평온한 상태는 사실, 낡아 없어지는 것들을 메꾸기 위해 쉼 없이 투자의 수레바퀴를 굴려 얻어낸 치열한 결과물인 것입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gp7oimgp7oimgp7o.png


세상의 '중력'을 버텨내는 눈물겨운 투쟁

결국 생리학의 '근위축(근손실)'과 거시경제학의 '감가상각'은 언어만 다를 뿐, 정확히 같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점차 낡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중력은 결코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평온하게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 냉혹한 진실은 헬스장이나 경제 지표 너머, 우리의 일상과 삶의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배움과 지적 능력이 그렇습니다. 늦은 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어렵게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도, 복습이라는 '재투자'를 멈추는 순간 뇌리에서 휘발되어 버립니다. 시대가 변하는데 새로운 배움을 멈춘 채 가만히 있는 사람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편견에 사로잡힌 '퇴보한 어른'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원래 친하니까", "가족이니까 이해하겠지"라며 다정함을 건네는 수고를 멈추면 어떻게 될까요? 그 관계는 어제의 끈끈했던 그 자리에 일시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난로에 땔감을 넣지 않으면 불씨가 꺼지듯, 마음을 쏟지 않는 관계는 서서히 온기를 잃고 남남처럼 멀어지게 됩니다.

장롱 속에 안전하게 모셔둔 현금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둑에게 매일 조금씩 구매력을 갉아먹히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결코 평온한 휴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마이너스(-)입니다.

그러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오늘"에 안주하려는 태도는 우리를 현상 유지가 아닌 조용한 퇴보로 이끕니다. 가만히 숨만 쉬며 흘려보내는 하루는, 쉼 없이 몰아치는 감가상각의 파도에 내 삶의 가치를 무방비로 내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부서지고 흩어지려는 세상의 거대한 중력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하루에 머무르는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투자를 내 삶에 던져 넣어야 합니다. 매일 가벼운 덤벨이라도 들어 올리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책장을 한 장 더 넘기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그 작고 치열한 노력들만이 우리 삶의 '균제상태'를 지켜내고 나아가 더 나은 내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달려야 하는 붉은 여왕들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숨을 헐떡이는 앨리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있는 힘껏 달려야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 있어."

오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선 달리기나, 졸음을 쫓아가며 늦은 밤 책상 앞에서 버텨낸 시간이 당장 내일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띄는 발전이 없어 허탈하고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조바심이 날 때도 있겠죠.

하지만 결코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그 고단한 노력은, 가만히 있으면 퇴보하고 마는 세상의 잔혹한 중력에 맞서 당신만의 꼿꼿한 '균제상태'를 지켜낸 가장 고결한 투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장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늘 당신이 땀 흘려 있는 힘껏 달렸기에, 당신은 무너지지 않고 당당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퇴보하지 않고 버텨낸 오늘 하루의 당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작가의 이전글예전 같지 않은 내 몸에 실망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