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
장병언
어떤 이는 내게 묻는다. '당신은 왜 옛 그림을 따르는가?'
"나는 옛 그림의 붓이 지나간 궤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선인들의 삶과 정신, 그리고 그들의 가능성을 따르고 있다오. 그들의 그림 위에서 붓이 지나간 것 이상의 것을 보았기 때문이요. 또한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잠시 접어 두었소."
'전이모사(傳移模寫) 즉, 선인들의 그림을 모사함으로써 화격을 더욱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지난 10여 년간 서첩의 고전이라 일컫는 석고문, 모공정, 을영비, 구양순, 왕휘지, 손과정 등의 서법을 익혔고, 청나라 초기의 화보로써 1701년에 간행된 개자원 화보의 사군자, 그리고 산과 바위, 나무들을 임모 했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가장 완숙함을 갖춘 북송시대 산수화와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4대 거장들의 그림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다시 말해, 지난 10년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앞으로 수묵을 다루어야 하는 화가로써 반드시 거쳐야 된다고 생각했던 '고행'의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자기 구속과 혹독한 훈련의 과정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옛것을, 내면적으로는 자발적 고행이자 수련의 단계로써 고전이라는 '인식의 도구'를 택한 것이다. 즉, 고전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몸에 익히면서도 고법古法에 구애됨 없이 자기 인식을 표현하기 위한 초석을 다져왔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세상이 변할수록 버려지고, 잊히고, 소멸되는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반다시 기억하고, 지켜내고, 보존해야 하는 가치도 공존할 것이다. 또한 이런 모델의 가치야 말로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법고'의 터널을 지나 '창신'이라는 또 다른 아득한 터널로 진입하려 한다. 지난 10년은 선인들에게 길을 물어 걸어왔던 '법고'의 시간이며, 이제 '창신'의 길을 걷고자 한다.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잠시 접어 두었던 시간이 족쇄가 될지, 든든한 동반자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2012.11 장병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