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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24. 2024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무사히

 어김없이 돌아오는 수요일 아침, 6월 초중순이지만 아침부터 날이 많이 더워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을 켠다. 밤사이 우리 반에서 키우는 장뎅이와 수뎅이라는 이름의 장수풍뎅이 암수 한쌍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법은 젤리통이 비어있는 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젤리를 다 먹고 흙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장수풍뎅이들을 위해 새로운 젤리 2개를 까놓는다. 컴퓨터를 켜고 미확인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한 명씩 교실로 들어온다. 우리 반은 등교를 하면 담임교사인 나와 눈을 맞추며 주먹인사를 한다. 주먹인사를 한 아이들은 그날의 시간표와 활동을 보고 책상서랍을 정리한 후 아침독서를 시작한다.


 오늘 수업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지도서를 펴는 순간, 한 남자친구가 주먹인사도 하기도 전에 통으로 된 생죽순 2개를 내 책상에 올려놓는다.


"선생님, 주말에 제가 할머니 집에 갔는데 너무 신기해서 가지고 왔어요. "

"와! 진짜 신기하다. 선생님도 통으로 된 생죽순은 처음 봐!"

"저도 엄청 신기해서 친구들이랑 선생님 보여주려고 가지고 왔어요, 원래는 꽃이 이렇게 붙어있는 거예요."

"와, OO아! 더 신기하다. 선생님 죽순 꽃은 정말 처음 봐! 선생님 죽순 나물 진짜 좋아하는데... 정말 신기하다!"


 자기의 생각보다 나의 반응이 좋았던지 이 귀여운 아이는 계속 말을 이으며 꽃 부분과 죽순 부분을 합체하여 보여준다.


 때마침 우리 반에 온 옆반 선생님에게도 통죽순을 보여 주며 나의 흥미로움을 감추지 않는다. 항상 반응이 좋은 옆반 선생님에게 이번에는 내가 부분을 합체해서 보여준다. 역시 옆반 선생님의 좋은 리액션 덕분에 죽순을 가지고 온 우리 반 아이의 입가에 환하고 뿌듯한 미소가 퍼진다. 우리 반 친구들이 다 등교를 하자 그 친구가 가지고 온 통죽순을 아이들에게 소개를 한다. 처음 본 아이들은 역시 나만큼이나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비빔밥 먹을 때 죽순 나물 넣잖아요. 원래 모양이 이거예요. 대나무 아기라고 보면 돼요"

죽순을 가지고 온 OO이가 한마디 거든다.

"선생님! 지금은 좀 질겨서 먹을 수는 없데요. 그리고 반으로 잘라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좋겠어요"


 죽순을 반으로 잘라서 아이들이 오며 가며 볼 수 있도록 복도에 전시를 해 놓는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죽순의 안이 신기한 지 요리조리 살펴본다. 영락없는 대나무 모습처럼 안이 비어있다. 그 모습에 문득 죽순을 학교로 보내주신 아이 어머님이 생각나 하이톡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조금 뒤 바로 답장이 온다. 

 

 'OO 어머님, 죽순 엄청 신기하네요! 통으로 된 생죽순을 저도 처음 봐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OO이도 재밌어해서 친구들도 보면 좋을 것 같아 보냈는데 반가워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보니 창 아래에 있는 문구가 오늘따라 내 눈에 띈다. 

대화 시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용해 주세요. 욕설, 비방, 허위 내용 등의 불쾌감을 주거나 명예훼손의 내용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고 문구가 언제부터 생겼던가? 담임을 오랜만에 하는 나는 처음에 이런 문구가 낯설었다. 오래전 이기는 하지만 담임을 했을 때 나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교실 전화번호와 하이클래스의 소통 창구만 열어두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이다. 게다가 하이클래스의 하이콜로 학부모와 통화 시 자동녹음이 되는 기능까지 설정해 놓았다. 요즘은 교육청의 교사안심번호를 지원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안 좋은 이야기들이 하도 많아 혹시라도 나에게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순간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항상 교사와 학부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좋은 교육 파트너라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교권 추락의 현실을 요즘은 직간접적으로 상당히 많이 경험하고 있다.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의 씁쓸한 현실을 현장에서 자주 보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신조를 가지고 교문을 매번 들어선다. 아직까지 별다른 일 없이 교직생활을 나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나의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의 운처럼, 나의 잘못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고 말이다. 


 글쓰기 연수의 마지막 시간 후 이윤영 작가님이 '교사인 우리들의 일은 정말 고귀한 일'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내 일에 대해 고귀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직업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나의 일을 소중히 여겨주라 말씀하셨는데 내가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의 앞날을 축복해 준 적이 있던가? 아마 초임 때는 나름 교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긍지와 사명감이 많이 희미해졌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 민원과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요즘인데 내 일이 다른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거였다고? 확실히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하고 즐겨하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곤 한다. 신규발령 때는 무조건 정년퇴직이 당연했었는데 요즘은 명예퇴직에 대해 가끔씩 생각도 하고 있다. 나는 분명 내 일을 사랑하고 적성에도 맞는데 초등교사의 의원면직에 대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며 능력 있는 젊은 선생님들의 과감한 선택에 대한 감탄도 감추지 않는다. 


 교사, 학생, 학부모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지금은 모두 여유롭지 않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생죽순을 통으로 보내주신 우리 반 학부모님처럼 아이들의 좋은 경험만 생각하고 그런 학부모에 감사를 드리는 오늘 우리 반 교실의 한 장면이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오늘날이다. '적자생존 -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더 이상 우습지 않은 대한민국의 교육 모습니다.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행동발달 누가기록을 하고 무조건 증거를 남겨놓는 나의 부지런한 습관의 이면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오늘 하루만큼은 교실을 들어설 때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나의 신조를 잠시 접어두고,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고 싶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한 일도 될 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너희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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