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무사히

by 느긋

어김없이 돌아오는 수요일 아침, 6월 초중순이지만 아침부터 날이 많이 더워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을 켠다. 밤사이 우리 반에서 키우는 장뎅이와 수뎅이라는 이름의 장수풍뎅이 암수 한쌍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법은 젤리통이 비어있는 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젤리를 다 먹고 흙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장수풍뎅이들을 위해 새로운 젤리 2개를 까놓는다. 컴퓨터를 켜고 미확인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한 명씩 교실로 들어온다. 우리 반은 등교를 하면 담임교사인 나와 눈을 맞추며 주먹인사를 한다. 주먹인사를 한 아이들은 그날의 시간표와 활동을 보고 책상서랍을 정리한 후 아침독서를 시작한다.


오늘 수업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지도서를 펴는 순간, 한 남자친구가 주먹인사도 하기도 전에 통으로 된 생죽순 2개를 내 책상에 올려놓는다.


"선생님, 주말에 제가 할머니 집에 갔는데 너무 신기해서 가지고 왔어요. "

"와! 진짜 신기하다. 선생님도 통으로 된 생죽순은 처음 봐!"

"저도 엄청 신기해서 친구들이랑 선생님 보여주려고 가지고 왔어요, 원래는 꽃이 이렇게 붙어있는 거예요."

"와, OO아! 더 신기하다. 선생님 죽순 꽃은 정말 처음 봐! 선생님 죽순 나물 진짜 좋아하는데... 정말 신기하다!"


자기의 생각보다 나의 반응이 좋았던지 이 귀여운 아이는 계속 말을 이으며 꽃 부분과 죽순 부분을 합체하여 보여준다.


때마침 우리 반에 온 옆반 선생님에게도 통죽순을 보여 주며 나의 흥미로움을 감추지 않는다. 항상 반응이 좋은 옆반 선생님에게 이번에는 내가 꽃 부분을 합체해서 보여준다. 역시 옆반 선생님의 좋은 리액션 덕분에 죽순을 가지고 온 우리 반 아이의 입가에 환하고 뿌듯한 미소가 퍼진다. 우리 반 친구들이 다 등교를 하자 그 친구가 가지고 온 통죽순을 아이들에게 소개를 한다. 처음 본 아이들은 역시 나만큼이나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비빔밥 먹을 때 죽순 나물 넣잖아요. 원래 모양이 이거예요. 대나무 아기라고 보면 돼요"

죽순을 가지고 온 OO이가 한마디 거든다.

"선생님! 지금은 좀 질겨서 먹을 수는 없데요. 그리고 반으로 잘라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좋겠어요"


죽순을 반으로 잘라서 아이들이 오며 가며 볼 수 있도록 복도에 전시를 해 놓는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죽순의 안이 신기한 지 요리조리 살펴본다. 영락없는 대나무 모습처럼 안이 비어있다. 그 모습에 문득 죽순을 학교로 보내주신 아이 어머님이 생각나 하이톡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조금 뒤 바로 답장이 온다.

'OO 어머님, 죽순 엄청 신기하네요! 통으로 된 생죽순을 저도 처음 봐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OO이도 재밌어해서 친구들도 보면 좋을 것 같아 보냈는데 반가워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보니 창 아래에 있는 문구가 오늘따라 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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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고 문구가 언제부터 생겼던가? 담임을 오랜만에 하는 나는 처음에 이런 문구가 낯설었다. 오래전 이기는 하지만 담임을 했을 때 나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교실 전화번호와 하이클래스의 소통 창구만 열어두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이다. 게다가 하이클래스의 하이콜로 학부모와 통화 시 자동녹음이 되는 기능까지 설정해 놓았다. 요즘은 교육청의 교사안심번호를 지원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안 좋은 이야기들이 하도 많아 혹시라도 나에게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순간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항상 교사와 학부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좋은 교육 파트너라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교권 추락의 현실을 요즘은 직간접적으로 상당히 많이 경험하고 있다.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의 씁쓸한 현실을 현장에서 자주 보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신조를 가지고 교문을 매번 들어선다. 아직까지 별다른 일 없이 교직생활을 나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나의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의 운처럼, 나의 잘못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고 말이다.


글쓰기 연수의 마지막 시간 후 이윤영 작가님이 '교사인 우리들의 일은 정말 고귀한 일'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내 일에 대해 고귀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직업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나의 일을 소중히 여겨주라 말씀하셨는데 내가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의 앞날을 축복해 준 적이 있던가? 아마 초임 때는 나름 교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긍지와 사명감이 많이 희미해졌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 민원과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요즘인데 내 일이 다른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거였다고? 확실히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하고 즐겨하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곤 한다. 신규발령 때는 무조건 정년퇴직이 당연했었는데 요즘은 명예퇴직에 대해 가끔씩 생각도 하고 있다. 나는 분명 내 일을 사랑하고 적성에도 맞는데 초등교사의 의원면직에 대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며 능력 있는 젊은 선생님들의 과감한 선택에 대한 감탄도 감추지 않는다.


교사, 학생, 학부모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지금은 모두 여유롭지 않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생죽순을 통으로 보내주신 우리 반 학부모님처럼 아이들의 좋은 경험만 생각하고 그런 학부모에 감사를 드리는 오늘 우리 반 교실의 한 장면이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오늘날이다. '적자생존 -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더 이상 우습지 않은 대한민국의 교육 모습이다.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행동발달 누가기록을 하고 무조건 증거를 남겨놓는 나의 부지런한 습관의 이면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오늘 하루만큼은 교실을 들어설 때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나의 신조를 잠시 접어두고,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고 싶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한 일도 될 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너희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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