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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26. 2023

뜻밖의 안탈리아


괴레메 도시 중심에 가장 번화가 거리에 보면 작은 버스 회사가 있다. 우리는 괴레메에 올 때 타고 왔던 버스 회사인 카밀코치 (Kamilkoc) 버스 회사를 튀르키예 여행 내내 가능하면 이용했다. 괴레메 다음으로 갈 도시는 안탈리아였는데 이스탄불에서 괴레메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밤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괴레메에서 안탈리아까지 500~600km 정도 거리로 자가용으로 가면 7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버스로 가면 9시간 정도 걸렸고, 오후 10시 반쯤 이곳에서 출발해서 오전 7시 반쯤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9시간 동안 버스를 타는 것이 고역이지 않을까 싶은데 재밌는 것이 13시간 정도 장시간 차를 타보니 뭐 9시간쯤이야 쉽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한국에 간다면 서울에서 거제도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고 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매번 여행의 힘든 순간과 고단함이 사람을 더 잘 견디게, 단단하게, 매 순간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감사하게 만들어 준다. 

안탈리아 버스정류장에서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서 체크인하고 근처에 아침 먹을 만한 곳을 검색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안탈리아라는 도시에 눈곱만큼의 기대도 없었다. ‘대도시가 다 똑같지 뭐.’ 그렇게만 생각했다. 큰 도시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이틀만 머물고 가려고 일정도 짧게 배정했다. 하지만 아침을 먹으러 나간 안탈리아의 첫인상은 뜻밖이었다. 큰 도롯가의 레스토랑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었고, 절벽 아래로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항구가 오목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아담한 항구 앞에 크고 작은 레스토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성벽 너머로 오스만 제국 시대를 연상시키는 주홍색의 지붕들이 사이프러스 나무, 야자수 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하늘 밑에 주홍 지붕과 초록 나무들, 그리고 성벽 아래 펼쳐진 새파란 바다와 오밀조밀 붙어 정박된 보트의 풍경. 거기다 오른쪽으로는 까마득히 멀리 서는 엄청 높은 산들이 겹겹이 쌓여 하늘빛으로 희미하게 놓여 있었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절벽에서 엘리베이터로 항구까지 내려갈 수 있었는데 그날따라 고장이 나서 절벽을 빙 둘러 나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 보았다. 항구를 따라 앞쪽에 늘어선 레스토랑들은 온통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실제로도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리라 가치의 폭락으로 우리에겐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밝고 좋았다. 그래서 한잔에 3천 원 정도 지불하고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한잔씩 마시며 느긋하게 앉아서 꽃들과 분수,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 분위기를 천천히 감상해 보았다. 





 우리 옆 테이블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가 앉게 되었는데 눈이 마주치며 그들과 자연스레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형적인 영국의 노부부 커플이었다. 세 명의 자녀가 있었고 자녀들은 우리 또래였으며 그들은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다 키워놓은 지금, 그들의 나이 60세가 넘어서야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커플 중 남자분은 윌과 한참 축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마시던 음료 종목을 ‘커피’에서 튀르키예 맥주인 ‘에페스 맥주’로 바꾸었다. 나는 관심 없는 축구 이야기가 지루하여 슬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항구와 연결된 좁은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새로운 여행지를 탐험했다. 




아름다운 안탈리아의 골목


다음날은 윌과 함께 쇼핑에 나섰다. 길가에 화려한 무늬의 카펫이나 스카프가 널려있었고 골목 사이사이 화사한 꽃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이 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게 만들었다. 골목은 관광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 원피스, 스카프, 가방, 액세서리등 판매하는 상가들로 즐비했다. 우리는 우연히 돌을 꾸며서 판매하는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하게 되었는데 주인장 말에 따르면 그는 이 지방에서 나는 돌에 직접 도구를 이용해 수공예로 무늬를 새겨서 판매한다고 했다. 작은 돌은 액세서리 만들어 ‘악마의 눈’이라 불리는 나자르본주, 아니면 별자리 등을 신비스럽게 새겨 넣었고 장식용으로 좀 더 큰 돌조각에는 이 지역 신화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꾸며놓았다. 주인의 손때가 소중히 묻어나서 그런지 여느 관광용품 파는 곳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쇼핑을 마치고 우리는 안탈리아에서 유명한 해변을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다. 짧은 일정이라 여러 해변 중에 딱 한 군데만 가보기로 했고 나는 콘얄트(Konyaalti Plajlari) 해변의 사진이 아름다워 보여 이곳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먼저 공원이 펼쳐졌다. 공원도 그렇고 해변도 그렇고 이곳은 사람들로 많이 붐비지 않았고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해변을 따라 난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 자전거를 타면서 저마다 여유를 부리며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 해변에 다다랐는데 파도가 거셌다. 멀리서 CG 효과와 같은 겹겹이 합쳐진 푸른 산이 보였다.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해변을 따라 선베드들이 늘어선 바들이 보였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선베드 하나를 골라잡아 벌러덩 누워서 에페스 맥주를 주문하여 마셨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콘얄트 해변의 어느 비치클럽
콘얄트 해변 공원
아름다운 콘얄트 해변


 안탈리아라는 도시의 분위기는 나에게 놀라울 만큼 오래 남았다. 그래서 지금도 ‘다녀왔던 여행지 중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튀르키예 안탈리아가 후보지 중 하나로 떠오른다.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이스탄불행 티켓 말고 안탈리아행 티켓을 끊어서 바로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물가도 저렴하고 이스탄불만큼 사람이 미어터지지도 않으면서 큰 도시라서 각종 편의 시설은 죄다 갖추고 있다. 도시가 주는 편리함과, 소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함, 그리고 뻥 뚫린 바다가 주는 시원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안탈리아는 이틀 만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안탈리아라는 도시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행을 가기 전에 사전 조사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가? 그곳에 가보지 않았지만 거의 가 본 것과 같을 만큼 조사를 할 때도 있다. 특히 MBTI 성향 중 파워 J의 경우 미리 여행지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둬야 안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쯤은 가방을 싸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의 티켓을 아무렇지도 않게 끊은 다음 아무런 정보 없이 그 도시를 방문해 보길 바란다.

철저하게 계획한 여행보다 이렇게 우연적이고 황당한 여행이 더 큰 감동과 깨달음을 줄지도, 더 많이 기억에 남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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