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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26. 2023

미스터리한 지하의 벙커


카파도키아는 BC 6세기 문헌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있는 곳이었다. BC 190년까지 셀레우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이후 11세기까지는 동로마제국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 시대에 탄압을 피해 많은 그리스도 교인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다. 지형적으로는 약 3백만 년 전 화산 폭발과 대규모 지진 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엎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 군을 이루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우리는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과 역사의 흔적을 쫓아다녔다.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여러 가지 관광상품이 마련되어 있는데 보통 호텔을 통해 예 할 수도 있고, 인터넷을 통해 트립어드바이저와 같은 대형 관광회사로도 예약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은 곳이라 가볼 만한 지역을 한데 묶어서 관광상품으로 마련을 해 두었고 대표적으로 그린투어, 레드투어, 로즈밸리 투어 등이 있었다. 관광객들은 관광상품에 포함된 지역을 살펴본 후 본인들이 가고 싶은 장소가 있는 상품을 골라 관광했다. 그런데 각각 관광상품은 일 인당 40~50달러 정도 비용에 입장료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많아서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하루는 괴레메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을 걸어서 구경하고 하루는 차를 빌려서 가보고 싶은 곳을 다 둘러보기로 했다. 차량 렌트비는 미국 달러로 35불 정도면 가능했다. 단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기 전에 정보를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보았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우리 숙소에서 괴레메 야외 박물관(Open Museum)은 3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서 먼저 야외박물관으로 가 보았다. 이곳은 11~12세기경 로마인들의 박해를 피해 몰려든 기독교인들이 암석과 바위를 이용해 집들과 교회를 만들어 공동체 생활을 한 곳이다. 절벽에 형성된 교회 그룹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야외 박물관이 되어있다. 암석들을 구성하는 입자가 물러서 그들은 이 암석을 파내고 그 안에다 집과 교회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반듯한 돔 형태가 꽤 정교해서 사람이 파내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게다가 길을 걷는 내내 뜨거운  햇볕 때문에 땀을 주르르 흘렸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했다. 왜 이곳에서 동굴을 만들어 생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둠의 교회 앞(내부 사진촬영 금지)

그리고 수도원에 그려놓은 프레스코화의 그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는데 특히 어둠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아주 특별했다. 이 때문에 야외 박물관에 들어올 때 입장료와는 별도로 어둠의 교회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또 걷는다. 하지만 일단 어둠에 교회 안에 발을 들이면  1000년 이상된 파랗고 선명한 성화로 압도적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몇몇 성인들 얼굴이 훼손된 것만 제외하고 제법 잘 보존이 되어있어서 비잔틴 시대 중요한 유산으로 손꼽힌다. 이곳에 1950년대까지 주민들이 살았는데 풍화작용에 의한 붕괴 위험으로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야외 박물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 날을 잡아서 차를 빌린 후, 카이마클리 지하도시, 비둘기 계곡, 러브 밸리등 지역을 둘러보았다. 나는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지하 도시이다. 지하 도시는 8세기경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내던 동굴인데  카파도키아에는 1,00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튀르키예 정부는 이 지하 도시들을 모두 발굴하지 않고 몇 개만 발굴하여 관광객에게 오픈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카이마클리 지하도시(Kaymakli underground city)였다. 데린쿠유 지하도시가 가장 큰 지하도시이고 통로가 약간 넓은 편이며 관광상품으로 데린쿠유 지하도시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카이마클리 지하도시는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 도시이고 소규모 그룹 투어로 많이 간다고 했다. 우리는 숙소에서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카이마클리 지하도시로 가보았다. 


카이마클리 지하도시는 최대 1만 명까지 지하에 살았다고 한다. 최대 깊이는 100미터에 이르며 지상으로 57개의 입구로 구멍이 나 있고 수백 개의 방들이 개미굴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지하 4층까지만 개방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 교회, 방, 주방, 거실뿐 아니라 와이너리까지 있었는데 열악한 환경에도 적응하며 꿋꿋하게 살아간 사람들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지하도시 안으로 들어가려면 고개를 숙이고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굴을 통해 안까지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환풍구는 곳곳에 있긴 했지만, 너무 갑갑했다. 관람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소 부족 증세로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많은 산소를 받아들이기 위해 숨을 거칠게 내몰아 쉬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이곳에 조금만 더 있다가는 밀실 공포증에 걸려 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 숨 막히는 곳에서 1만 명이나 같이 살았을까? 인간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물론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햇볕도 없고 숨쉬기도 힘든 지하의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간 인간에게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 지하도시를 처음 만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기독교인들이 로마인들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하지만 그전부터 이 지하 도시는 존재했다고 한다.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로마가 아닌 그 전의 침입자들로부터 보호하고자 이런 도시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누가 이런 도시를 왜 만들었는지는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나는 고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미스터리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신비로운 자연 현상이나 고대의 미스터리한 현장과 마주하게 되는데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회사, 집, 회사, 집만 반복하는 일상에서 탈출하면 보이는 또 다른 세상은 언제나 나의 상상력에 기름을 부어준다.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에 항상 적혀있었던 단어는 ‘이 아이는 상상력이 풍부하다’라는 문장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가며 나의 상상력은 모두 도태되어 버렸다. 사회화되어 가며 없어져 버린 나 본연의 특질, 내가 가진 독특한 성질이 여행하면 할수록 되살아 나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잊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안락한 둥지를 박차고 지금도 꾸역꾸역 짐을 싼다.


나는 누가 이 미스터리한 지하의 벙커를 만들었는지 흐뭇하게 상상하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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