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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24. 2023

사진 속의 현실과 진짜 현실


카파도키아에 도착했을 때 비가 왔다. 대충 점심을 먹고 조금 있으니 비가 그쳐서 다행히 저녁에는 일몰 전망대로 가서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약간 가파른 동산을 오르는데 금방 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고 저녁 6시쯤 갔는데 이미 로즈벨리의 계곡이 핑크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360도로 사방의 탁 트여있었고 이 신비스러운 지구의 모습을 비추는 노을빛은 모든 것을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기기괴괴한 암석들 사이로 지는 해는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빛까지 쥐어짜고서는 마침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갔다. 



숙소로 돌아가 푹 쉬고 다음 날 비가 그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새벽을 기다렸다. 열기구들이 떠오르는 새벽 시간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카파도키아를 여행할 때 나는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선물로 숙박비가 우리 예산을 조금 초과하는 좋은 호텔에서 묵기로 했고 우리는 루프탑이 예쁜 동굴 호텔울 숙소로 예약했다. 예쁜 쿠션을 가지고 이색적으로 꾸며 놓은 숙소의 옥상에서 열기구들이 떠오를 때 나도 인플루언서들처럼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좋은 숙소를 예약했건만, 우리가 있는 딱 3일간 야속하게도 주르륵주르륵 비가 내렸다. 왜 하필 내가 온 이날만 비가 올까? 

다음날 알람 소리에 눈을 떴는데 비가 오지 않았다!  혹시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까 해서 부리나케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호텔 측은 비에 젖을까 봐 알록달록한 쿠션들을 한쪽에 치워놓은 채 커다란 비닐로 덮어놓았고 열기구들도 내 마음 같이 예쁘게 떠주지 않았다. 

너무 속상했다. 


여행을 다닐 때 윌은 사진을 함께 찍는 것에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내가 예쁘게 구도를 잡고 핸드폰 앵글 속으로 그를 떠밀며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콧방귀를 뀌었다.

“It’s fake.” (이건 가짜야)

우리가 아름다운 곳에 이렇게 버젓이 두 발을 디디고 있는데 이것이 가짜라니? 나는 그의 생각이 달갑지 않았다. 매번 멋진 풍경을 만나면 윌은 사진을 찍기 싫어했지만, 내가 억지로 그를 카메라 앞으로 밀어 넣곤 했다. 


루프탑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나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더니 그는 엄청나게 무거운 쿠션 몇 개를 집어다가 비에 젖지 않은 옥상 바닥 한 부분에 깔아주었다. 그리고 본인은 졸린다며 다시 호텔 방으로 내려갔다. 윌이 깔아준 쿠션 위에 호주에서 온 커플이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올라가더니 사진을 찍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있는 커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사진 찍어 줄까?”


호주 남자가 찍어준 사진


나는 고맙다고 하고 나의 카메라를 호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구도를 잡고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이때 그들이 호주에서 왔고 튀르키예 여행이 끝나면 이집트로 넘어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중동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이 신기했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힘들지 않아?”

“물론 혼자 하는 여행이나 둘이 하는 여행과는 좀 다르지. 가져가야 할 용품들도 많고 속도도 느리지. 하지만 다른 스타일의 여행일 뿐 우리 여행이 힘들다고 느끼진 않아.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즐기고 있어.”

아이가 있으면 여행도 잘 못 다니고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집트에 간다는 이 커플이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정말 모든 일은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달렸나 보다.


동굴 호텔이라 방 안에서 인터넷도 잘 안 터졌다. 평소 예산보다 비싼 숙소를 예약했건만 호텔의 환경은 저렴한 숙소보다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때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생긴다. 

다음날 동굴 호텔이 아닌 절반 가격의 저렴한 숙소로 바꾸었다. 이곳 루프탑에도 쿠션들은 모두 치워져 있었지만, 열기구들이 떠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멋지게 떠오르는 열기구들



 윌과 함께 열풍선을 보려고 옥상에 올라갔는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관광객이 우리 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윌은 사진을 찍기 싫어했지만,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위해 억지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을 대하는 전혀 다른 우리의 자세


그리고 우리가 떠나기 마지막날, 루프탑에 드디어 쿠션이 깔렸다. 안탈리아로 가기 전 체크아웃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루프탑에 앉아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경험으로 멋진 여행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하는 행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인가? 나는 내가 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2002년 호주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갔었는데 브리즈번의 야경 불빛이 다 번져서 카메라에 찍혔다. 나의 눈동자가 빨갛게 나온 적도 많이 있었고 얼굴의 초점이 흐리게 찍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왕 여행 왔는데 여행지를 좀 아름답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여행 후 작은 DSLR 카메라를 80만 원 주고 구매했고 카메라 동호회에 가입해서 사진을 찍는 것을 연습했다. 내가 간 여행지를 최고의 멋진 모습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이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 여행지의 한 부분을 신중하게 골라 구도를 잡고 현실과는 다르게 편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많아도 마치 없는 것처럼 한 부분만 보이게 하거나 실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채도와 명도를 올리기도 한다. 이것을 현실이라 말할 수 있는가? 멋져 보이게 만든 현실을 가상공간에 나열한 SNS 사진들을 보며 이것이 진짜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멋져 보이게 꾸며놓은 가상공간 속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인가?

사실 소셜미디어의 안 좋은 점도 이해한다. 

마음껏 여행 다니고 예쁜 사진만 포스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좋아 보이는 그들의 삶과 직장생활에 치여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바쁘고 우울한 나의 삶과 비교하며 괴로운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못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거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을 보면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쉴 새 없이 비교하면서 내가 마치 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주변에 SNS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여전히 멋진 여행지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내면이 좀 더 탄탄해지면서 남들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비하하는 마음은 어렸을 때보다 사그라들었다. 여행하고 여러 사람들의 삶을 훔쳐보면서 내 인생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내 삶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SNS 가상현실을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현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이다.

사진 속 예뻐 보이는 현실이든, 정말로 예쁜 현실이든, 현실에 대한 정의가 어떻든 간에 호주에서 온 커플처럼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살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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