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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21. 2023

뚱뚱한 아저씨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튀르키예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카파도키아라는 곳이다. 이십 대 중반쯤이었을까?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지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치 화성이나 어떤 외계행성같이 생긴 지형에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일제히 수십 개의 열기구들이 떠올랐다. 단지 작은 티브이 스크린의 직사각형 네모 안에 담겨 있는 영상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장관이던지, 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질지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튀르키예 여행을 미루고 미뤘다.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큰맘 먹지 않으면 오기가 힘든 나라였다. 


크로아티아에서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려고 지도를 펼쳤을 때 튀르키예 쪽으로 쓱 눈이 갔었다. 마치  옷장 속 새로 꺼내 입은 코트 손을 쑥 찔러 넣었을 때 손끝에서 꾸깃꾸깃 접혀 있었던 종이쪽지의 감촉을 느끼고선 ‘이게 뭐지?’ 하고 종이를 조심스레 펼쳐 보니 ‘튀르키예’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윌 친구가 튀르키예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비로소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멋진 핑계를 만들어 냈다. 그래, 튀르키예에 가보는 거야! 이렇게 튀르키예에 발을 디딘 이상 세계 테마기행에서 보았던 그 열기구를 봐야 했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파도키아행 버스 티켓을 끊었다. 


카파도키아는 튀르키예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을 크게 말하는 지명이다. 이 지역에 괴레메(Goreme), 네브셰히르(Nevsehir), 위르깁(Urgup)이라는 마을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우리는 괴레메라는 지역을 가기 위해 동유럽에서부터 이용한 플릭스 버스 웹페이지를 통해 버스를 예약했다. 플릭스 버스는 튀르키예에 없지만 이곳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고 연계된 카밀코치(Kamil Koc)이라는 버스회사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여행자들은 괴레메를 여행할 때 카밀코치 버스 이외에 메트로(Metro)라고 하는 버스 회사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숙박비도 아낄 겸 밤 버스를 예약했다. 버스는 밤 11시에 출발해서 괴레메에는 정오 12시 15분에 도착하는 장작 13시간 정도가 걸리는 일정이었고 20kg 짐 두 개까지 포함해서 50유로 정도 지불했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저가항공 이용 시 짐이 있으면 요금이 비싸졌다. 항공사는 사람 한 명이 지불해야 할 요금의 거의 50%가 넘는 가격을 짐에게 부여했다. 어떤 항공사는 짐을 부치는 가격을 거의 한 사람의 좌석 이용료와 비슷하게 받았다. 결론적으로 나의 23kg~24kg 정도의 내 짐짝은 사람의 가치와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한 사람이나 혹은 어쩔 수 없는 경우 항공편이 좋겠지만 우리는 오래 걸려도 저렴하고 한 번에 쭉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우리에게 많은 건 시간이요 없는 건 돈이었어로.

튀르키예 버스정류장과 카밀코치 버스

버스에 줄을 서서 티켓을 보여주고 기사님께 인사를 하고 좁은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내 좌석의 번호를 엉거주춤 확인하면서  버스 길이의 반쯤 걸어 들어왔을 때 내 번호의 좌석을 확인한 후 일단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장장 13시간 동안 생활을 해야 할 이 조그만 좌석에서 최대한 편하게 가기 위해 부산스럽게 준비에 나섰다. 가방에서 목마를까 봐 물도 꺼내고, 책을 읽으려고 아이패드도 꺼내 놓고, 추울까 봐 후드티 하나도 주섬주섬 꺼내고…….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가방을 머리 위 작은 짐 놓는 칸에 쑤셔 넣었다. 

우리 좌석 앞에는 다른 좌석이 바로 붙어있지 않고 가슴 높이 정도까지 칸막이가 쳐져 있었고 칸막이 아래는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지며 계단 끝에 하차 문이 달려 있었다. 누가 계단을 통해 올라오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 사람 머리부터 가슴, 몸 전체가 다 보이게 되고 누가 아래로 내려가면 허리부터 사라져서 어깨, 그리고 머리가 없어져 보이지 않게 된다.  버스 좌석은 우리나라 고속버스 좌석처럼 꽤 편했다.


버스 내부_칸막이가 앞에 있던 좌석

장기 버스 이용에 가장 걱정되는 것이 화장실이었다. 평소에 화장실을 자주 가서 버스에서 난감한 일이 생길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버스를 타기 전부터 나는 물도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버스는 출발한 후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자주 섰고, 새벽에는 두세 시간에 한 번 정도 휴게소에 들러주어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다행히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튀르키예는 고속버스 휴게소라도 화장실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휴게소에 내릴 때마다 동전을 몇 푼 넣어둔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비용은 1리라~3리라 정도로 1유로씩 하던 유럽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독일 ‘본’의 길거리에서 보았던 인간의 배설물은 튀르키예 길가에 없었다.

새벽에 내린 버스 휴게소

 버스 회사에서는 손님들에게 주스랑 과자를 나눠주었다. 새벽 한 시쯤 주셨던 것 같은데 딱히 배도 고프지 않고 목에 어떤 물체가 넘어가는 느낌이 싫어 버스 앞 좌석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피곤하긴 한데 잠은 딱히 오지 않고 약간 멍한 기분으로 어깨와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찔러 넣고선 의미 없이 눈을 꿈벅이고 있을 때였다.


버스 기사님이 있는 앞쪽 복도에서부터 체중이 한 120kg 정도는 되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좌석이 있는 뒤쪽까지 뒤뚱뒤뚱 걸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 좌석 앞에 하차하는 문이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셨다. 우리 가슴팍 높이까지 쳐져 있던 칸막이 때문에 처음에 그분 허리, 어깨만 보이다 머리조차 점점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기분 나쁜 배설물 냄새가 순식간에 퍼졌다. 확실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지독한 냄새였다. 윌과 나는 ‘으악’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들이 막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처음에 하차하는 문 옆에 버스 화장실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아저씨가 버스에서 큰 볼일을 보신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리를 잘못 배정받았군. 앞으로 13시간 동안 화장실에서 나는 온갖 기분 나쁜 냄새들을 어떻게 견딘담?’ 

윌과 난감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면서 코를 막고서 한참을 견뎠다. 그리고 영원할 줄 알았던 고약한 냄새가 다행히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아저씨가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윌과 이야기했다.

 “그 아저씨 왜 화장실에서 안 나오지?”

아저씨가 너무 궁금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했고 계속 의문을 가졌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버스가 서자마자 우리 코앞에 있던 버스의 하자 문으로 내려가서 화장실 문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화장실은 어디에도 없었고 버스의 문 주위로 그 어떤 통로도 없었다. 


‘펑’ 


아저씨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버스는 분명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고 하차하는 문 주변으론 어떤 통로도 없다. 이곳으로 내려간 아저씨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비몽사몽에 나 혼자 착각한 것도 아니고 윌과 둘이 같이 경험을 한 것인데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사건은 우리 여행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이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때 그 아저씨 기억나지?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 

동그랗게 놀란 눈을 하고 서로를 쳐다보면서 쿡쿡쿡 한 번 더 웃는다.


튀르키예에서 괴레메로 가는 도중 버스 창밖의 풍경


 우린 자다가 깨다를 반복하며 거대한 튀르키예의 땅을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새벽이 되자 동이 트는데 창문 밖으로 비치는 대자연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버스에서 주로 책을 많이 읽지만 이렇게 밤에 출발해 아침에 도착하는 버스를 탈 때는 피곤해서 책이 잘 안 읽혔다. 대신 여러 가지 생각들을 메모하며 정리했다. 한국에 있으면 인터넷을 켜서 드라마를 보거나 정보를 검색하며 13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물론 자다 깨다 해서 13시간보단 적었겠지만. 내가 본 것, 경험한 것, 읽은 것, 사람들과 이야기한 것들을 바탕으로 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멍하게 생각만 하며 나를 위해 집중해 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인터넷 없는 13시간을 한 곳에 갇혀서 오로지 생각만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겠나. 

나는 미스터리 한 뚱보 아저씨와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13시간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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