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을 여행할 때 첫 일주일은 팀의 집에서 보냈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이스탄불 발랏(Balat)이라는 지역에 에어비앤비를 9일 정도 예약하였다. 어디에 숙소를 정할지 검색을 할 때 발랏 지역에 건물들이 알록달록 너무 예뻐서 눈독을 들이게 되었고 가격도 너무 저렴하여 망설임 없이 선택하였다. 내가 터키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다양한 컬러의 조합을 최대한 많이 눈에 담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엔비는 넓은 거실과 주방, 침대가 있는 방, 욕실 하나 이렇게 쓰는데 하루에 3만 원 정도였다. 숙소 건물은 많이 낡았지만 ‘이 정도면 뭐 쓸만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샤워기에 물이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다거나, 주방에 시설들은 너무나 더럽고 사용하기 불편하여 요리는 꿈도 못 꾼다는 점 등은 불평하지 않고 그냥 참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체크인한 다음 날, 물이 아예 끊겨버려 씻고 나갈 수가 없었고 그다음 날은 밤 11시에 전기가 나가버렸다. 숙소에 컴플레인하고 나갈까 고민했지만 숙소를 옮길 힘도 없고 버짓 여행자(예산을 빠듯하게 쓰는 여행자)가 이 정도는 참지 뭐……. 하고 참았다.
발랏지역에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줄지어 있고 걷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되는 예쁜 골목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커피 맛이 기가 막힌 커피숍을 발견해서 매일 아침 그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동생이 ‘오십에 읽는 논어’라는 책을 보내주었는데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무척 행복하여 매일 아침 그 커피숍에 가고 싶어 눈이 번쩍 떠졌다. 그곳에 브라우니도 정말 기가 막혔다.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카페들 인테리어는 고풍스럽고 독특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참 감각적인 것 같다. 쇼핑할 것도 너무 많다. 예쁜데 저렴하기까지 하니 액세서리 샵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다. 그랜드바자르에도 가봤지만, 가격을 덤탱이 씌우는 느낌이고 발랏의 가격들은 더 정직하다. 보는 즐거움도 있고 저렴하게 쇼핑하는 즐거움까지 더해주니 금상첨화였다.
발랏에서 생활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우리가 체크아웃하기 전날 밤 사건이 일어났다.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자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자꾸 들려왔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윌, 어디 불꽃놀이 하나 봐? 펑펑 소리가 밖에서 들리는데 한번 확인해 볼까?”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던 윌이 시큰둥하게 ‘어 그래?’라고 대꾸만 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바깥 사정이 궁금했던 나는 거리로 창이 나 있는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랏지역의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우리 숙소는 3층이었고 우리 숙소의 창문 가까이에 가면 맞은편 건물 창문 너머로 이웃들도 자세히 보이고 옆 건물 테라스 쪽에 있는 사람들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보인다. 그런데 이웃들이 다들 창문가까이 서너 명씩 모여 엉거주춤하게 머리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거리 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건물 바로 아래쪽 거리에 한 남성이 시리아 언어로 짐작되는 말로 뭐라 뭐라 외치며 총을 들고 탕탕탕 쏘아대고 있었고 총을 쏘는 반대편 거리엔 두 명의 남성이 건물 뒤로 숨어 총탄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게 지금 장난치는 건지 영화 촬영이라도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하여 총을 쏘는 남성을 내려다보며 5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한 후 머리를 숙이고 거실의 불을 껐다.
마구 나대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침실로 가 윌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윌도 황급히 거실 쪽으로 와서 머리를 숙인 채 거리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 남성들이 총을 들고 건물로 뛰어 올라와 관광객인 우리를 발견하고 다 쏘아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 현관문이 잠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조용히 침실로 돌아와 누워봤지만 한참 동안 쏘아대는 총소리에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킬 길이 없었다. 총소리는 멀어지는 듯했으나 30분간 지속되었고 희미하게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멈추었다.
튀르키예라는 나라를 좀 더 잘 이해해 보려고 역사도 공부하고 현지에 친구들을 만나 현재 상황도 좀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체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무 일 없었지만, 다음날 8일 동안 잘 활보하고 다녔던 거리가 새삼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발랏이라는 지역은 건물이 오래되고 문제가 많아 터키인들이 떠난 자리에 월세가 저렴하여 시리아 난민들이 많이 들어와 사는 그런 지역이었다. 왜 그런 총싸움이 난 건지 세부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이미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 나라에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에 납득이 갔다.
다음날이 체크아웃이라 두려움이 이내 사그라들긴 했지만 인생에 있어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데, 튀르키예 정부를 비난하거나 시리아 난민을 탓하거나 그런 목적은 전혀 없다. 오히려 튀르키예를 여행한 후 나는 이 나라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튀르키예에 다시 가고 싶다. 그저 지금 튀르키예를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런 상황들이 있음을 진솔하게 전하고 싶었다. 튀르키예에 관광을 가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드리는 광고가 있지만, 이면에 이런 모습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