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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Dec 01. 2023

해 보고 후회하기


내가 유럽 여행을 꿈꾸며 언젠간 가보고 말리라!라고, 가장 처음에 가슴에 품었던 도시들은 프랑스의 파리와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피렌체이다. 이 도시들을 동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고전 화가들의 작품,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의 영향이 크다. 그들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나 자연환경, 그곳의 사람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내가 그곳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자주 해 보았다. 내가 그런 도시들을 보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꿈꾸는 자들에게 희망은 있다고 했던가! 마침내 그곳을 갈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하지만 성수기가 시작되는 6월 중순이었고 여행지를 조사하면 할수록 내가 보고 싶은 도시들은 우리가 발도 붙일 수 없을 만큼 비싸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일치기로 하루나 이틀 만에 도시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좀 여유 있게 보고 싶었는데,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의 숙박비가 10만 원이 훌쩍 넘었고 별 두 개의 좁아터진 호텔 예약하는데 15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곳곳을 둘러본다는 말인가?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시들 때문에 유럽 여행을 계획했지만,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도시만 빼놓고 루트를 짜게 되었다. 독일 베를린을 발판으로 동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는 것이다. 체코,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터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다 짜놓고 보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돈이 없는 현실과 타협을 하겠다. 하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두 나라 다는 못 가더라도 하나는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저렴한 숙소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틈만 나면 에어비앤비 앱을 열어 치열하게 찾아보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걸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인 포지본시(Poggibonsi)라는 마을에 하루에 68,000원 가격의 집을 발견하였다. 시세에 비해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침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고 테라스까지 딸린, 집 전체를 쓸 수 있는 곳이었고 리뷰도 매우 훌륭했다. 그래, 이탈리아로 가자! 우리는 포지본시의 그 에어비앤비에 9일, 그리고 비행기로 도착할 첫 도시, 로마에 4일을 예약했다. 


 나에겐 로마도 대도시였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들은 로마는 툭하면 길을 잃어버려 헤매기 일쑤고 북적이는 곳이나 지하철에선 소매치기가 들끓는 최악의 관광지라는 것뿐이었다.  피렌체에는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의 낭만과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대한 동경심이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미국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1953년에 만든 흑백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걸었던 길을 걸어보고 싶은 환상이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로마에서 붐비는 곳과 지하철에선 내내 가방을 끌어안고 행여나 내 가방을 뒤질 사람이 있을까 싶어 사람들을 째려보면서 다녔다. 


우리는 터키 이즈미르 공항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로마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Fiumicino Airport) 공항에 도착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이곳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철도 티켓을 구입하는 매표소에 다다르니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고 몇몇 청소년 그룹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어서 바닥에 발을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빨간 자동판매기 같이 생긴 기계로 기차표를 살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줄을 서서 판매원에게 테르미니(Roma Termini) 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했다. 


로마 공항, 철도 티켓을 예매하기 위한 매표소


30분  정도 가면 로마의 도심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테르미니역에 도착하는데 우린 이곳에 내려서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숙소까지 이동했다. 로마에서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집을 찾는 데 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렴한 곳을 찾느라 주요 관광지로부터 위치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을 예약했는데  문제는 아파트 위치가 아니었다. 주소는 적어두었는데 나의 불찰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아파트 호수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심카드도 구매하지 않아 인터넷이 없는 상황이라 다시 에어비앤비 앱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5층 정도 높이의 그 아파트의 모든 문을 두드려서 에어비앤비를 찾는 해프닝을 벌인 후에 겨우 우리가 머무를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첫날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우선 배가 고파 숙소 근처의 피자가게에 들어가서 피자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이곳은 신기하게 그램(g) 단위로 피자를 끊어서 판매했다. 우리는 피자 한 판이 몇 그램인지 몰라서 허둥대다가 피자가게 아저씨에게 바디랭귀지로 벽에 붙어있는 12유로라고 적혀있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거 한 판 달라고 이야기했고 아저씨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피자를 다 구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는 눈치였다. 그래서 한 10분 정도 가게에 앉아서 기다렸는데 세상에 라지 사이즈 피자 두 판이 나왔다.  12유로에 피자 두 판이라……. 생각보다 이탈리아 물가가 비싸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납작 복숭아와 와인 한 병을 샀다. 와인 한 병에 3유로 정도였는데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러웠다.

두 판에 12유로였던 로마의 피자

 

달콤한 과즙이 풍부한 납작 복숭아


 로마를 여행하며 가장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판테온 근처에 있는 ‘타짜도르’라는 카페의 카푸치노 한잔이 1유로 30센트밖에 하지 않았고 커피맛도 좋았다. 우리나라 평균 카푸치노 가격이 4천 원이 넘는데, 이곳은 커피 가격이 저렴했다. 슈퍼마켓에 가서 과일 가격과 여러 생필품 가격을 비교해 봤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했다. 특히 치즈, 햄, 고기, 과일, 채소, 와인 가격이 훨씬 더 저렴했다. 


타짜도르 카페 커피와 크로와상 가격

 

정작 이탈리아에 오고 싶어 유럽 여행을 계획했건만 서유럽은 비싸다는 평이 있어 비싼 물가에 지레 겁먹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탈리아만 쏙 빼고 계획을 세웠었다. 어쩌면 그리 벌벌 떨지 않아도 될뻔했다. 

물가가 비싸다고 이탈리아에 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그러니 할지 말지 고민되는 것이 있을 때 해 보기를 권유한다.

‘그때 이탈리아에 갔어야 했는데’라고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 차라리 가고 나서 ‘이탈리아 갔더니 너무 비싸서 혼났지 뭐야’라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나는 언제나 해 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 보고 후회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결국 하게 되어있고, 해 보고 후회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망설이는 여행지가 있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저지르기.

해 보고 후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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