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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Dec 01. 2023

마법의 피에타


 로마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두 눈으로 감상해 보는 것이었다. 먼저 천지창조로 유명한 ‘아담의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시스티나 예배당(Sistine Chapel)에 가기 위해 바티칸 투어를 예약해야 했다. 바티칸 투어는 마치 숙제처럼 나를 괴롭혔다. 이걸 먼저 해놓지 않으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 마지막 날까지 바티칸 투어를 못 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치우고 싶었다. 그래서 바티칸 투어를 예약하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결제하려는데 무슨 이유인지 결제가 잘되지 않았다. 아무리 여행하기 좋은 세상이지만 핸드폰이나 노트북으로 결제를 하려고 할 때 안 되는 일이 간혹 발생한다. 기계가 말썽을 부릴 때는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모른다. 그럴 때면 윌과 나, 둘 다 기계를 다루지 못해 해결 못하고 쩔쩔매다가 결국, 기계에다가 화를 내면서 ‘에잇, 그냥 가서 해!’라고 외친다. 


 다음날, 바티칸 투어의 티켓을 예약할 수 없었던 우리는 현장으로 찾아갔다. 우선 Ottaviano 역에 내려 핸드폰에 미리 다운로드한 구글 지도를 보며 바티칸 입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역에 내리자마자 호객꾼들이 관광객들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풍경인고? 알고 보니 바티칸 입구에서 줄을 서면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는데 시간을 엄청 낭비하게 되는데, 여행사 직원으로 보이는 이 호객꾼들에게 원래 입장료 보다 약간 더 비싼 표를 사면 fast track처럼 모든 줄을 건너뛰고 박물관 입구까지 바로 데려다줄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돈으로 시간을 사는 거다. 우린 기다리는 게 싫어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고 호객꾼을 따라가서 표를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바티칸에 그렇게 입고 서는 출입이 안 된다고 하셔서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스카프를 하나 구매했고 길게 스카프를 바지 위에 둘러 무릎까지 싸고 다녔다. 


바티칸 피냐 정원


브라만테가 설계한 피냐정원(솔방울 정원)


 박물관의 첫 시작은 회화관(Pinacoteca)으로 시작하는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의 거장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솔방울이 있었던 피냐 정원을 지나 벨베데레의 팔각정원인 코르틸레 오타고노를 통과했는데 이곳은 교황님들의 개인 컬렉션이라고 했다. 많은 조각상 중에 라오콘 군상이 가장 멋졌다. 그 당시 라오콘 군상 보수 담당자는 미켈란젤로였는데 기원전의 작품이 이 정도였으니 아마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라오콘은 포세이돈 신전의 사제이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 사건 때, 그리스 군이 거대한 목마를 해안에 남겨 놓고 거짓으로 철수했을 때 목마를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경고하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샀다. 이윽고 포세이돈이 바다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두 아들을 감아 죽여버린다. 이 작품은 라오콘이 뱀에 휘감겨 일그러진 고통, 심지어 발에 핏줄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도 미켈란젤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조각상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라오콘 군상


그리고 건물 안으로 쭉 걷다 보면 팔다리가 잘린 채 몸통만으로도 완벽하다는 조각, 토르소가 나오고, 곧이어 복도를 따라 조각같이 보이는 천장화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한참을 가면 드디어 아테네 학당을 볼 수 있다. 한두 시간 걸어 다녔을까? 드디어 대망의 시스티나 채플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티칸 당국은 관광객들이 시스티나 채플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만 달랑 보고 갈까 봐 이렇게 빙빙 돌아서 시스티나 채플을 마지막에 볼 수 있게 배치해 두었다. 

토르소


바티칸 내부


나는 윌과 함께 ‘최후의 심판’을 먼저 보고 고개를 들어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구석에 조용히 앉아 한동안 그림을 감상했다. 유튜브 채널 중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미술을 읽어 드립니다’라고 하는 채널에서 양정무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나왔다. 나는 윌에게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1533년에 미켈란젤로는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라고  명을 받았다. 클레멘스 7세가 34년에 사망했지만, 다시 교황 바오로 3세도 이 작업을 의뢰한다. 미켈란젤로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곧 받아들이고 6년 동안 최후의 심판을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황 측에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우선 가냘파야 할 예수님을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그려놓았고 권위를 느끼게 해주는 수염도 없는 데다 예수님의 얼굴을 마치 그리스 신인 ‘아폴로’의 조각상을 닮게 그려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운 영혼은 아름다운 신체에 깃든다고 생각하여 온 신경을 집중하여 아름다운 신체 그리기에 몰두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391명의 인물을 그렸고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근육질이고 나체였다. 예수님을 이교도의 신을 닮게 그려 놓은 데다 죄다 나체로 그려놓았으니,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했다. 특히 교황의 의전 담당인 비아지오 다 체세나가 그림이 상스러워 공개하면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 소식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그에 대한 복수로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 위에다 지옥에 심판관 미노스의 얼굴을 비아지오의 얼굴로 그려버렸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너무 놀란 비아지오가 교황을 찾아가 설득했지만, 교황은 ‘나에 권한은 지옥에 없다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도 비아지오의 얼굴은 지옥 심판관의 모습을 하고 역사에 길이 남아 현재까지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작품이 공개된 1541년 10월 31일, 시민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1564년 1월에 와서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칙령이 반포되어 생식기 부분에 덧그림이 그려졌다. 


 우리는 당황했을 그 당시 교황과 사람들을 상상하며 한참을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가만히 천장화도 올려다보았다. 가운데 그림과 양쪽 사이드에 그려놓은 그림을 나눠지게  테두리를 조각상으로 그렸는데 그림이 아니라 정말 조각처럼 입체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 아담의 창조를 보면 엄청 작아 보이는데 실제로 그림에서 아담의 크기는 다비드상 5.17m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걸 그가 혼자서 다 그리지야 않았겠지만 그래도 누운 자세로 5년을 꼬박 그렸고 실제로 눈과 몸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힘들게 그렸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사람이 이런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 정말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 감정은 피에타를 볼 때 더 극대화되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한 후에 시스티나 성당을 빠져나와 성 베드로 대성전(Basilica di San Pietro, Basilica of St. Peter)으로 향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가톨릭의 진원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 국가이다.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미켈란젤로는 1563년 목숨을 다할 때까지 이 건물에 매달렸고 그 뒤 1593년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바실리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그 길이가 211미터로 실내는 베르니니의 바로크풍과 수많은 걸작들로 장식되어 있다.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면 오른쪽 첫 번째 예배당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전시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24살 때 프랑스 대사였던 랑그로사이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 피에타를 조각한다. 피에타(Pieta)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비탄이나 슬픔을 의미한다고 한다.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픔에 젖어 비통한 마음을 갖는 모습을 표현한 것을 피에타라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생에 총 4개의 피에타를 남겼는데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피에타 조각상은 유리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이 조각을 보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은 재료가 단단한 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사람의 표정이나 옷의 주름 하나하나 상세하게 표현한 기술에 대한 놀라움이다. 어떻게 대리석을 떡 주무르듯이 깎아내어 이런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도저히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조각에서 성모 마리아는 성인 자식을 둔 노모가 아니라 아주 젊은 여인으로 그려져 있고 표정 또한 그리 비통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젊은 여인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이 작품에 빠져든다. 우리가 빠져드는 것은 현실에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오묘한 유토피아적인 미학이다.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로서, 현실에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모여 완벽하지 않은 사회를 이루고 실수투성이의 완벽하지 않은 국가를 이루고 삐걱삐걱하며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완벽해져 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그 과정에서 희망이나 이상을 설정한다. 인간은 이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설정하지 않고 살면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상’이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말하며 어쩌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수없이 많은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한다. 내가 본 ‘피에타’는 사람들이 구현하고 싶어 하는 이상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실현한 하나의 형태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나는 후에 보게 된 보티첼리의 봄이나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그림에서도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너무도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워서 작품 앞에서 그 어떤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이 그냥 몸이 얼어붙게 되는 상황에 빠졌었다.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앞에 서면 장담하건대 당신도 몸이 얼어붙는 신기한 마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홀린다’는 표현은 이때 쓰면 딱 좋은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성인 아들의 끔찍한 죽음 앞에 평온한 얼굴을 한 젊고 예쁜 엄마는 인간의 인생에서 전혀 겪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가짜’이기도 하다. 이것을 만들 당시 미켈란젤로는 자신감에 넘쳐있는 한창때였고 성모마리아상 띠에 내가 만들었노라 서명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 이후로 서명을 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모르지만, 짐작해 보자면 젊은 시절 패기와 자신감, 신이 내린 기교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홀렸으나 어쩐지 가짜 같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작품에는 서명까지 하기 부끄러웠던 건 아닐까?

이상이란 결국 완벽해 보이는 상태일 뿐이지 완벽한 실제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완벽하지 않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이다. 이상처럼 구현이 된 현실이 있다면 가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그림, 이상적인 사람이 있다면 아주 위험하다. 피에타의 마법처럼 우리는 그 가짜에 홀려버려 꼼짝도 못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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