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 Thessaloniki
12월 베를린에 갔을 때부터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지만 6개월이란 시간을 둘이서만 보냈다. 한국에서 일상생활을 하면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서로 못 보고, 각자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주말도 따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24시간을 늘 붙어있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탐험하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기는 하지만 서로 너무 익숙해진 탓에 모든 것에 점점 감흥이 없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무언가 하나 쑥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가을에 캐나다에서 만난 윌 친구가 농담 삼아 말한 것이 현실이 되었다. 윌 친구는 캐나다인 이지만 그의 뿌리는 마케도니아(Macedonia)에 있다. 어렸을 때 가족이 마케도니아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지금도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마케도니아에 살고 계신다. 그의 어머니 별장이 그리스 테살로니키(Thessaloniki)에 있는데 그는 ‘너희들 여름까지 유럽에 계속 여행할 거면 여름에 그리스에 있는 우리 엄마 별장에서 만나자. 6월쯤 휴가 내고 갈게.'라고 싱겁게 말한 것을 약속처럼 지켰다. 여자친구와 함께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것이다!
친구를 좋아하는 남편은 그들이 오기 며칠 전부터 신이 났다. 24시간 아내와 함께한 이 무료한 감각을 탈출할 수 있는 탈출구가 마련되었다.
“우리 친구들을 만나러 6월 말에는 테살로니키로 가야 해."
처음 윌이 나에게 말했을 때 잘 못 알아 들었다.
“어디라고?"
사실 그리스는 역사책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네, 델피 아니면 관광객에게 유명한 섬 산토리니나 미코노스와 같이 몇 군데 지명만 알고 있었고 테살라노니키라는 도시는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그리스의 문화의 수도로 여겨지는 곳이라고 한다.
아테네를 여행하던 중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할 때 버스 옆자리에 앉으신 노신사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아테네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셨는데 교수님의 고향도 테살로니키라고 하셨다.
“난 아테네가 너무 싫어요. 관광객들만 북적거리고 비싸고……. 빨리 은퇴해서 내 고행 테살로니키로 가고 싶어요. 직장만 아니었음 아테네로 오지도 않았을 텐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테살로니키가 그렇게 좋은 곳인가요? 내일 사실 테살로니키로 가거든요."
“여기보다 훨씬 좋아요. 조용하고 물가도 저렴하고 아름답고. 살기에는 테살로니키가 훨씬 좋아요."
보통 여행을 하기 전에 내가 가고 싶은 도시들을 검색해 보고 고른 다음에 또다시 정보를 꼼꼼하게 알아보는 편인데 테살로니키만 유일하게 친구들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설레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갔다. 교수님의 말씀으로 좀 더 궁금해졌을 뿐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찾아보지도 않고 기차표 하나만 달랑 끊어서 친구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보통 휴가를 떠나면 일상이나 바쁜 일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멋진 나날들을 보내기 마련인데 나는 여행이 스스로에게 ‘일’이 되어버려서 항상 바빴다. 어디로 갈지 나라를 찾아보고, 도시를 정하고,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를 검색하고 리뷰도 꼼꼼하게 읽어보고, 예약하고, 무엇이 맛있는 찾아보고, 이곳의 역사적 사건이나 소설 혹은 영화도 찾아보고, 사진 찍고, 동영상 촬영하고, 편집하고, SNS계정에 올리거나 블로그를 쓰고, 글을 쓰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고 다니는지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테살로니키는 모든 일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처음으로 여행하면서 첫 휴가를 떠난 기분이었다.
테살로니키의 정보를 찾아본 것은 사실 여행이 끝난 후이다. 테살로니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여동생 이름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인 카산드로스 왕이 BC316년에 도시를 건설하고 아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AD50년 경에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도 바울도 이곳 유대교 교회당을 방문했고 첫 교회에 편지 두 통을 보냈는데 이 편지는 신약성서 실려있고 데살로니카 전서, 데살로니카 후서라고 불린다. 이곳은 동로마 시대에도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로 부유했다. 1423년 이후 베네치아의 통치를 받았고 1430년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간다. 이후 발칸 반도의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가 발칸동맹을 맺고 1912년에 1차 발칸 전쟁을 일으켜 오스만제국, 지금의 튀르크예를 몰아냈다. 그리고 그리스가 튀르키예와 전쟁으로 패배한 뒤 그리스와 튀르키예 주민 교환이 이루어졌고 오스만제국 소아시아와 동 트라키에 거주하던 그리스인 16만 명이 테살로니키로 왔고 이 도시의 무슬림 20만 명이 튀르키예로 이주했다. 그래서 지금 주민의 대부분이 그리스인이다.
우리는 이런 테살로니키의 역사적 사실과 모든 정보를 무시한 채 오직 친구들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테살로니키행 기차를 예매했다. 기차로 한 4시간 반 정도 걸렸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는 중간지점을 지날 때였나? 어디쯤 왔는지 확인해 보려고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보고 있는데 그 지도에 의하면 내가 바로 올림포스산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 유명한 신화 속 올림포스산이 내 두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이런 게 바로 스토리의 힘인가. 지구상 어디에나 있는 그 산 하나가 이렇게 멋있게 보일줄이야. 내가 신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테살로니키 기차역에 내려 숙소를 잡고 저녁도 먹고 근처의 광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테살로니키 숙소에서 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고 아르스토텔레스 동상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의 엄지발가락만 사람들이 하도 만져대서 닳아 있길래 자석에 이끌리듯이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나도 그분의 발가락부터 만지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가 아니라 이곳 출신인가? 내가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알고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에서 언제나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고향의 고대 이름은 칼키디케 스타기라 (Stagira)이고 현대의 테살로니키가 이 지역이다. 그는 이 지방 왕정 의사인 아버지와 부유한 어머니 슬하에 부족함 없이 자랐고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친척 보살핌으로 잘 자라 17살 때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나 20년간 아테네에 있게 된다. 플라톤이 죽고 모두 아카데미아 원장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해야 한다 생각했지만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와 전쟁 준비로 시선이 곱지 않아 그는 도망가듯 아테네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튀르키예 이즈미르지역인 소아시아에 정착하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다 마케도니아로 이주하게 된다. 이때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친다. 알렉산더의 아테네 정복으로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 숲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알렉산더대왕이 일찍 세상을 뜨고 1년 뒤 다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가족들과 어머니의 고향인 칼키디케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가만히 있었으면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였던 것처럼 처형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전 384년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그 수많은 분야의 방대한 지식들을 탐구하고 명쾌하게 정의 내리고 책을 쓰고 가르치고 했는지 그의 실천철학과 덕윤리에 대한 가르침은 지금도 감탄할 따름이다. 지금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 동상의 발가락을 만지는 의미는 당신의 지혜를 나에게도 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의 지혜가 나에게 조금 전달이 되었으려나?
테살로니키 기차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자 친구들이 호텔 앞에 와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다른 나라에서 보니 그 반가움이 몇 백배는 되는 것 같았다. 친구가 차를 렌트해 왔는데 이 차로 그리스 여행 내내 엄청 편하게 다녔다.
친구 어머니 별장은 바닷가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40평 정도 되어 보이는 널찍한 아파트식 콘도였다. 우리는 짐을 풀고 슈퍼로 가서 장을 봤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푹 쉬면서 이 지역의 해변이란 해변을 도장 깨기 하듯이 정복하고 다녔다. 테살로니키의 지형은 곰의 발바닥처럼 생겼는데 발톱처럼 보이는 지형을 'finger'라고 표현했고 그 'finger' 부분에 해당되는 모든 땅이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우리는 주로 해변에 파라솔과 썬베드들이 늘어서 있고 술을 판매하는 'beach bar'에 갔다. 썬베드에 누워 한가로이 샴페인을 한잔 마시다가 더우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바다는 크리스털처럼 맑고 물고기들이 다리 사이로 살랑살랑 지나다녔다. 바닷물이 너무 따뜻해 어머니 품에 폭 안긴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해변에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가도 수위가 허리 부근에서 찰랑거릴 만큼 얕아서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았다.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하루는 이 지역의 두 번째 손가락에 해당되는 어디쯤인가 가서 친구들과 보트를 빌렸다. 보트를 빌릴 때 어떻게 보트를 운전하는지 보트 렌트하는 곳에서 대략 알려주셨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보트를 마음껏 타고 다니다가 아름다운 곳이 보이면 그것을 정박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다 해볼 줄이야!
그러다 블루라군이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이 일제히 소리 질렀다.
"WOW!"
우리는 눈에 보이는데도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블루라군 적당한 곳에 닻을 내리고 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이곳은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라는 진부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셨다. 물에서 나오기 싫었다. 배 위를 오르다 다리를 찢어먹었지만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상처 부위를 잘 치료하지 못해 피부는 까맣게 착색되었고 지금 내 다리에 훈장처럼 남아있다. 나는 행복한 기억을 가져다준 이 상처가 너무 좋다. 지금도 이 상처를 보며 그때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이 경험 이후로 그리스가 너무 좋아졌다. 이것뿐이랴,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돼지고기를 못 먹는 나라도 있고, 소고기를 못 먹는 나라, 해산물을 찾기 힘든 나라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육해공,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는 나라였으며 지중해 뜨거운 태양을 받아 잘 자란 식재료 또한 전 세계를 다니다 맛본 그 어느 식재료보다 신선했다. 테살로니키의 물가는 버스에서 만났던 교수님의 말씀처럼 관광지인 아테네보다 훨씬 저렴했다. 아테네만 방문한 것으로 그리스를 경험했다고 하기 부족하다.
나는 아직도 보고 싶은 나라와 도시들이 많기 때문에 한 번 갔던 나라는 다시 가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블루라군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나 혼자 여행했으면, 아니 윌과 둘이 여행했으면 이런 경험을 절대 하지 못 했을 텐데 친구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나에게 찬란하고 눈부신 기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