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의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테크노 디제이다. 모두 낮에는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전문직 종사자들인데 하우스나 테크노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여 취미로 디제잉을 시작을 하였다. 그러다 장비를 사고 집에서 연습을 하던 중 COVID19 바이러스가 전 세계 퍼져버렸고 집에서 일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집에서 은거하며 점점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고 한 2년 정도 잠도 잘 자지 않고 디제잉을 연습했다. 거의 음악에 미쳐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코비드 규제가 약간 풀리면 집에서 하우스파티를 하거나 친구들끼리 조그만 모임을 운영하면서 파티를 기획하며 그동안 연습했던 디제잉을 기술을 마음껏 발산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은 토론토에서 트렌디 한 클럽 중 하나에 그들이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했고 너희 클럽에서 어떤 음악으로 어떻게 디제잉할 것인지 제안서를 보냈고, 그 클럽에서 수락하게 되면서 디제이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나는 친구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나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한 번쯤 미쳐봐야 한다.’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아 테크노 음악 장르에 빠져들었다. 그 디제이 중 한 명이 지금 우리와 그리스 여행 중이다. 우리는 그리스에서 멋진 나날들을 보내고 유럽 음악축제인 ‘EXIT’이 개최되는 세르비아로 함께 떠났다. 익시트 축제(EXIT Festival)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세르비아와 발칸반도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의 일부분으로 2000년에 개최된 후 유럽 최고의 음악축제 중 하나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노비사드(Novi-Sad)라는 세르비아의 한 도시에서 열리는데 이 축제가 거의 도시를 먹여 살릴 만큼 유명해졌다. 축제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동안 계속되었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저녁 6시쯤 천천히 일어나서 저녁 11시나 11시 반까지 숙소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축제에 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숙소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축제 장소로 이동하고 아침 8시까지 신나게 놀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 9시~10시쯤 잠이 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축제 장소가 워낙 넓었고 각각 다른 장르의 음악을 다른 무대에서 틀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는 시간대를 신중히 골라 무대를 옮겨 다녀야 했는데, 다행히 좋아하는 디제이들이 대부분 메인 스테이지에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 무대와 가까운 곳에서 보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제이들이 두 시간 정도 간격으로 바뀌었고 몇몇 디제이들은 라이브로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했다. 무대와 가까운 곳에 술을 판매하는 바가 설치되어 있었다. 미리 입구에서 축제 내내 사용하게 될 카드를 사서 현금으로 카드에 충전을 한 다음에 축제에서 판매하는 모든 술, 음료, 음식, 기념품들은 이 카드로 계산했다. 진토닉 칵테일이 매우 저렴하게 판매되어 돈 걱정 없이 술을 실컷 마셔도 되지만 간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죽을 맛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적게 가려고 술을 적당히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신나는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춤을 추면서 밤을 꼴딱 지새웠다.
새벽 4시쯤 되면 체력과 힘이 딸려서 무화과나무 그늘아래 뻗어서 누워있었다. 나이 40이 넘어서 이런 테크노 축제에서 밤을 새워가며 놀고 있으니 뭔가 반항아가 된 기분이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젊었을 때 놀아야지 나이 들어 흉하게 무슨 짓이냐고 주책맞다고 손가락질당할 것 같았다. 나이 40이 넘으면 짧은 치마도 입으면 안 되고 핫팬츠도 입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머리도 양갈래로 땋으면 안 될 것 같고 비키니를 입고 사진도 찍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한국이었다면 남의 시선에 덜 자유로웠을 텐데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나의 자유가 더 중시되는 서양에 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자유로웠을까? 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빗속에서 춤추던 모리 교수님을 생각하면서 춤을 췄다. 루게릭 병에 걸려서 근육이 언젠가 멈춘다는 걸 알았던 모리 교수님은 비가 오든지 말든지 근육이 움직 일 수 있을 때 춤을 추셨다.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 젊은 사람들도 뻗어 있었지만 나이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두 분이 내 옆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음악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해방감이 몰려왔다. 언젠가는 무릎이 삐걱거리고 체력이 힘들어 좋아하는 디제이가 새벽 5시에 연주를 한다고 해도 보는 것을 포기해야 할 순간이 온다. 누군가에겐 30대 초반이 그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50 후반이 그럴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즐기고 싶은 것에 오롯이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이곳에서 마음껏 누렸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언젠가 세르비아의 EXIT 페스티벌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편견 없이 20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