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르비아 음악 축제를 흠뻑 취해 마음껏 즐긴 후 모로코로 가야 했는데 직항이 없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이틀 정도 경유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을 품고 있는 모로코,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한 모로코로 드디어 출발이다! 모로코행 비행기의 거의 대부분이 마라케시로 향해 있었다. 비행 편이 많기 때문에 모로코 여행을 마라케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마라케시(Marrakech)는 신의 땅이라는 뜻의 베르베르인의 언어 “amurkush” 에서 유래했는데 후대에 마라케시가 다른 나라에 어느 왕국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모로코라는 국명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저렴한 비행기 표를 구하다 보니 모로코 마라케시에 새벽 12시쯤 떨어지게 되었다. 모로코에서 늦게 도착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택시 기사들이 관광객들에게 택시비 덤터기를 씌우는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값비싼 요금을 고스란히 지불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구글의 힘을 빌렸다. 공항에서 숙소가 많이 모여있는 메디나까지 적당한 선의 택시 가격을 알아본 후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택시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에어비엔비 호스트는 우리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보내 택시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고맙게도 메시지를 보내 주었고 가격도 적당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라케시에 도착했을 때 입국 심사는 꽤 수월하게 끝냈다. 밖에 나와 보니 호텔이나 숙소에서 보낸 운전기사 및 택시 기사님들이 관광객들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종이 틈 사이로 예약자인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찾았고 에어비엔비 호스타가 보낸 택시 기사님을 만났다. 그는 선해 보이고 나이 지긋한 모로코 남자분이었고 굴러가는 게 신기할 만큼 오래된 택시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무사히 시내를 잘 통과한 후 메디나 입구 한 구석에 차를 세우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모로코에서 시장이 형성된 곳을 메디나(medina)라고 불렀는데 수십 개의 골목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차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그 좁은 길 양쪽으로 가게들이 빽빽하게 붙어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는데 새벽이라 문은 모두 닫혀있었다. 그는 내 케리어를 손수 끌어주시며 앞장서서 미로 같은 메디나의 골목으로 하염없이 들어갔다. 길이 너무 구불구불하고 방향 표시도 없어서 도대체 어떻게 기억을 하고 집을 찾아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고 키가 작고 연세가 지긋하신 프랑스인 여주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의 건물 형태를 리야드(Riad)라고 하는데 모로코의 전통 건축 양식의 형태로 아랍어로는 정원을 뜻한다고 한다. 페르시아 ‘정원’에서 유래된 이 건축양식은 건물에 들어서면 보통 가운데 수영장이나 분수가 있고 양쪽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이 정원을 중심으로 건물이 네모 모양으로 빙 둘러져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생긴 구조이다. 깜깜하고 좁은 입구의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니 침대가 하나가 방을 꽉 채우고 있었고 침대 바로 발치에 1인용 의자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내 캐리어와 윌 백팩을 소파 옆에 두니 발 디딜 틈이 없이 꽉 차는 아주 좁은 방이었다. 아침 식사를 1인당 5유로를 내면 가져다준다고 하셨는데 10시쯤 가져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말을 듣고 사라지는 여주인 뒤로 이분의 고양이인 카카오가 우리 방까지 따라와 엄청 애교를 떨어서 피곤한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카카오는 특별히 게스트들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우린 이동하는 날이 늘 그렇듯이 침대에 녹아들 듯이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눈을 뜨니 예약했던 시간에 모로코식 아침 식사가 도착했다. 식사는 방 바깥에 작은 테이블에 차려 주셨는데 우리 숙소의 리야드는 거의 정글 수준이어서 1층으로부터 뻗어 올라온 무성한 코코아나무들이 2층 전체 뷰를 모두 가려서 테라스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11시 정도 되자 호스트가 주변을 설명해 준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블린'이다. 금발 단발머리에 피부는 하얗고 배가 좀 나왔는데 모로코의 전통 의상 드레스로 체형을 발목까지 가리고 있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뒤뚱뒤뚱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집에 어떻게 찾아오는지, 어떤 레스토랑이 저렴한지, 핸드폰 심카드는 어디서 구매하는지, 환전소 이자가 어느 곳이 제일 저렴한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대체로 집을 찾아가는 방법은 첫 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고 이발소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꺾고 가방가게를 지나 왼쪽으로 꺾고……. 이런 원초적인 방법이다. 나는 행여나 길을 잃을까 심카드를 구매했다. 이것은 현대 사회가 만든 하나의 병폐라고 생각한다. 당장 핸드폰이 없으면 가족들 전화번호도 기억 못 하고, 친구들 생일도 기억 못 하고 길도 찾지 못한다.
중요한 곳이 어디 있는지 설명을 다 해준 에블린은 숙소로 먼저 돌아갔고 우리는 메디나 이곳저곳을 구경을 했다. 메디나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 위쪽에서 각종 누더기 천들로 연결한 천막을 걸쳐 놓아 사람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해 쇼핑할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골목을 걸어 다닐 때는 더워도 제법 참을 만했지만 그늘 하나 없이 하늘이 뻥 뚫린 광장을 걸을 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바깥 온도는 47도였다. 11시부터 1시까지 딱 두 시간 돌아다니고 점심을 먹었을 뿐인데 우린 땀에 흠뻑 젖었으며 벌써 숟가락도 겨우 들어 올릴 만큼 기력을 탕진하였다. 에블린이 알려준 식당에서 모로코 전통 요리 중‘비프 타진’ 요리(일종의 소고기 찜요리)를 시켰는데 가격은 저렴했지만 강한 향신료의 독특한 냄새 때문에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 날씨와 이 지역에 좀 더 익숙해지면 또 맛있어 질지 모를 일이지만……. 모로코는 봄과 가을에 오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 스케줄 때문에 여름인 지금 시기 밖에 선택할 수가 없었고 그야말로 뜨거운 맛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거의 호흡이 골란 할 정도였다. 기진맥진하여 숙소에 코딱지만 한 방에 기어들어가 에어컨을 켰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돈을 내고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침대하나, 가방하나면 꽉 차는 방에 둘이 갇혀서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인터넷 검색 밖에 없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것 다음에 갈 여행지를 검색하거나 책을 다운로드하고 자료도 좀 찾아보면서 쉬자. 문제는 에어비앤비를 고를 때 숙소 정보에는 분명히 와이파이가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우리 방에서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다. 에블린에게 말해봤지만 그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될 텐데? 왜 안된다는지 모르겠네'라는 태도롤 보이며 무심히 등을 돌렸다. 다행히 심카드에 데이터를 사용해 인터넷을 할 수 있었지만 하루 종일 인터넷을 써야 했으므로 데이터가 곧 바닥이 났고 좁아터진 방에 삼일이나 둘이 붙어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간이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모로코에 저렴한 숙소와 저렴한 음식을 기대했었는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부유한 유럽 관광객들이 붐비는 마라케시는 모로코라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숙소비가 꽤 비쌌다. 좀 괜찮은 숙소들은 십만 원이 훌쩍 넘어갔지만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어야 한다면 예산을 더 써서 좋은 숙소로 옮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모로코는 북쪽은 스페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를, 남쪽은 거의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는데 우리가 있던 마라케시에 대두분의 관광객들은 거의 프랑스인들이었다. 마라케시는 프랑스에서 거리도 가깝고 프랑스보다 저렴해서 휴가로 꽤 많이 오는 듯했다.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 덕분에 가격이 대부분 유로로 책정되어 있었다. 모로코 화폐는 디르함(MAD)라고 하는데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 디르함이 한화 12000원, 유로로는 9유로 정도였고 통상적으로 100 디르함을 10유로로 받았다. 그래서 마라케시 장사꾼들은 유로를 선호했다. 괜찮은 레스토랑의 한 끼 식사가 거의 100~200 디르함으로 비쌌다. 우리가 페스와 쉐프샤우엔에서 한 끼를 35~45 디르함으로 먹은 것에 비하면 엄청 높은 물가이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스카프나 전통 의상들도 10유로~20유로가 다반사였다.
모로코 전통의상을 사서 사막에서 입으려고 메디나의 한 옷 가게에 들어갔다. 아주 얇지도 않고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에 모자가 달린 남성 젤레바 하나에 400 디르함을 달라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나가려고 하자 얼마를 원하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우리는 돈이 많지 않은 여행자라고 깎아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자 300 디르함이라고 했다. 그래도 살 수 없다고 말하니 나에게 드레스도 골라보라고 권유했다. 함께 사면 엄청난 할인을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노란색의 화사한 모로코 여성 드레스를 하나 집어드니 400 디르함을 내라고 했다. 윌의 젤레바는 어찌어찌 깎아서 250 디르함에 샀는데, 나는 드레스를 인심 쓰듯이 거저 준다면서 200 디르함에 가져가라고 봉투에 마구 구겨서 넣어주는 걸 억지로 빼서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사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들은 흥정할 때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중에 페스의 메디나의 한 가게에서 비슷한 드레스를 35 디르함에 구입했다.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가게에 내가 마케도니아에서 20유로 주고 샀던 목걸이와 비슷한 목걸이가 걸려 있어서 주인장에게 얼마냐가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800 디르함(80유로)을 달라고 한다. 덤터기를 씌워도 정도껏 씌워야지……. 가격을 한껏 올려놓고 숫자를 많이 낮춰주면서 이렇게까지 할인했다고 허풍 떠는 것이 그들의 판매 전술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그 후에 마라케시에서 쇼핑을 하지 않았다.
3일 뒤에 수영장이 있는 리야드로 숙소를 옮겼다. 보통 1박에 3~4만 원 숙소가 마지노선인데 이곳에서는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웰컴티라고 하면서 민트티 세트를 화려한 찻잔에 내어 주었는데 마치 왕과 왕비의 손님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인터넷도 잘 터지고 조식도 입이 떡 벌어지게 나왔다. 우리는 이곳에 이틀 더 머무르면서 딱 점심 먹을 때, 저녁 먹을 때만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라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곳은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광장에 풀어놓은 코브라들이며 덤터기 씌우는 장사꾼들, 그리고 화려한 모로코 인테리어의 숙소는 이색적이고 신비로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좋았던 것들만 기억에 남을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라케시에서 안 좋았던 기억들이 강력하게 남아있는데 그 기억들이 묘하게 매력 있었다. 47도의 살인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메디나 골목을 떠돌았던 기억, 향신료 냄새가 강한 비프 타진에 실망하고 되바라진 마라케시 장사꾼들과 흥정하며 화를 냈던 그런 기억.
아마 평생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