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번째 직장, 얻어 걸린 삼성

정체성 없이 이끌려 가다보니 가게 된 삼성

by 태평성대

복학생들은 다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다.

나도 군대를 다녀오면 공부를 잘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입대전에 놀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의 학교는 1학년의 성적으로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해야 했는데 1점대의 학점의 나는 미달이 될 것 같은 비인기 학과를 노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재료공학, 화학공학, 산업공학과는 인기학과 였고 신소재공학과 기계공학은 비인기였다.


나는 허세로 어려워보이는 기계공학을 택했다. 첫번째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학고를 받으면서 군대를 갔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자 그리고 약간의 관종으로 해병대를 택했다.

그렇게 전역을 했고 공부를 시작했다. 안맞았다. 입대전의 처참한 학점은 복구하기도 힘들었다.

총 3번의 계절학기를 통해서 3.08이라는 학점으로 졸업을 했다.

이 학점이 평생의 발목이 되고 있다.


4학년에 다들 회사에 지원하는데 3학년까지 나의 학점이 2점대였다. 당시에 기업들은 서류지원을 위해서 최소 B학점(3점) 이상이 필수였다. 이대로 나는 지원조차 불가능 했다.

대기업 중에 유일하게 두산그룹만이 학점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겨우 3.1를 만들었다. 여전히 남은 학점이지만 지원은 가능했다.

(학점 복구를 위해 계절학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가고 싶은 기업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남들이 다 취업을 하기에 나도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는 동기들에 비해 복학이 한학기 느렸기에 동기들이 신입사원으로 지원할때 나는 인턴으로 지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현재 나의 조건에 지원할 수 있는 기업들 중에 친구들이 지원하는 기업에 나도 같이 지원했다.


그때 내가 가진 스펙은

학점 3.1 오픽 IM2


이게 전부였다.

입사 기준에 토익 점수도 필수였었지만 천운으로 내가 지원할 시기에 오픽으로도 대체되는 기업들이 많았다.

오픽은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필수로 있어야 했기에 시험 한번 봐둔 것이 다행이었다.


지원기업

삼성엔지니어링(인턴), LG전자(인턴)


각자 서류를 쓰고 인적성을 본 후에 면접을 보았다. LG전자는 오산으로 가서 보았고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동에 가서 보았다.

삼성엔지니어링을 지원한 이유는 간단 했다.

기계과였기 때문에 전자계열을 가기는 막연하게 싫었다.(그때 전자를 택했어야 했나) 그래서 다른 삼성계열사를 보는데 다른 곳들은 모두 2자리수로 모집을 하는데 삼성엔지니어링만 3자리수 모집이었다.(당시에는 삼성 그룹 공채로 모든 계열사가 같은 시기에 채용하고 한 계열사만 지원 가능했다)

많이 뽑으니 붙을 확률이 높겠다고 생각해서 지원했다.


당시 삼성과 LG의 서류는 최소 기준만 맞추면 된다는 얘기가 들렸기에 그 기준을 겨우 턱걸이로 맞춘 나는 다행히도 서류는 합격했다. 다음으로 있을 인적성 시험은 따로 책을 사서 공부하지는 않았다. 아니 인적성 시험 자체를 공부하지는 않았다.


전공 공부를 하기 싫어했었기에 수업을 밥 먹듯이 빼먹었고 시험기간 조차 공부를 온전히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과제를 하고 레포트를 쓰고 시험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갔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신문을 보고 책을 보기 위해서 도서관을 갔었다.


결과적으로 그때 보았던 신문과 책들이 인적성 시험에 도움이 되었다.


기억나는 문제가 당시 몇년 후 개최될 올림픽 마스코트를 맞추는 문제가 있었는데 쉽게 풀 수 있었다.


문제는 면접

LG 전자는 먼저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한번의 면접이었다.

하지만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의 면접은 총 3개였다.


전공면접, 토론면접, 임원면접


47157_1155_1732.png


문제는 전공 면접이다. 전공 공부를 거의 한적이 없어서 난감하고 두려웠다.

지금에서야 전공책을 펴들고 공부를 한다고 될까?

5대 역학에 기타 과목들을 볼 엄두조차 생기지 않았다.

친구 중에 원주에서 공부를 잘해 모의고사를 보기만 하면 서울대를 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수능이 난이도가 어려웠고 그 친구는 수능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우리학교로 왔었다.


서류랑 인적성 합격발표가 나고 역학 책 한권을 들고 그 친구를 찾아갔다.

내가 택한 역학은 '열역학'

정역학은 안나올 것 같았고 그나마 개인적으로 열역학이 나머지 역학에 비해 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있던 친구 옆에 앉아서


"다 필요 없으니 그냥 여기서 면접에 나올만한 문제 하나만 찝어줘라"


"내가 어떻게 알겠냐만 열역학이면 그래도 제일 중요한게 싸이클 아닐까?"


책을 펼쳐보니 여러가지 싸이클이 나왔다. 랭킨, 카르노, 브레이튼 등등...

그냥 싸이클 중에서 랭킨 싸이클이 맨 처음에 있어서 그것 하나만 완벽하게 말할 수 있게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단기 속성으로 그것에 대해서만 이해를 했다.


친구중에 삼성 SDI와 현대 케피코에 지원한 친구가 있었는데 모의 면접을 해보자고 했다.

강의실에 3명이 모여서 각자 준비한 전공 관련 문제 풀이를 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면접장으로 갔다.

전공면접을 먼저 보았는데 대기실에 A4 용지 몇장이 놓여져 있었다.

각 전공별 문제들이 있었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준비를 하라고 했다.

눈 앞이 컴컴했다. 모르는 것들 이었다. 좌절하는 중에 발견한 건 내가 가져온게 화학공학 쪽 문제였던 것

기계공학 문제로 바꿔왔다.

기적이었다. 랭킨 사이클 문제가 나왔다.

정확하게 랭킨사이클에 대해서 그려보고 설명하라는 문제와 부속 문제로

열역학 법칙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것이 나왔다. 흥분되었다.


그렇게 면접장을 들어갔다. 면접관은 4명이었고 입장하자 마자 바로 문제 풀이를 진행했다.

화이트 보드에 싸이클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했다.

완벽히 이해하고 수십번 연습했던 것이라서 막힘없이 술술 모든 풀이를 끝내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 문제가 나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기계공학에서 열역학은 아주 중요하고 그 열역학에서 싸이클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예상 했는데 랭킨 사이클일 줄은 몰랐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이 존 스탁턴?"


"미국 프로농구 NBA의 유타재즈라는 팀의 전설적인 선수 입니다. 마이클 조던같은 화려한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그의 장점은 꾸준함입니다. 19년간 한팀에서 1500경기 이상을 뛰면서 단 22경기만 결장하였고 기록면에서도 득점이 아닌 어시스트와 스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팀에서 오래 뛴 의리와 1500경기 이상의 꾸준함 그리고 어시스트와 스틸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이 아닌 팀을 위한 헌신이 저에게는 존경의 인물로 다가왔습니다."


분위기는 화기해해 했다. 만족감과 함께 직무면접은 통과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턴 사원은 전공과 토론면접만 보면 되었다. (임원면접은 인턴이 끝나고 정규 신입면접때 본다고 했다)

토론도 정답의 길이 있듯이 두렵지는 않았다.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그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 반론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지원자들 모두가 그 정답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해야 할 건 딱 2가지였다.

1. 평정심을 잃지마라

2. 토론의 사회자 역할을 맡지마라 (임팩트를 줄 수 없다)


다행히 사회자는 아니었다. 총 7명이서 사회자를 제외하고 3vs3 이었기 때문에 발언기회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1인당 2번 정도 발언을 하면 되는 정도였다.

무난했다.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의견의 핵심을 요약하면서 부분적으로 동의하였고 나의 반론을 펼쳤었다.


결과는 합격. 정규직이 아닌 인턴이었지만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이렇게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나의 첫 직장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