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연수와 신입으로의 지원
겨울방학 2달동안 인턴을 했다.
전 삼성계열사 인턴들이 모여서 인턴 SVP(삼성 신입 연수 프로그램)로 1주 진행했다.
20명 이상의 한 조를 이루어서 수십개의 조가 만들어졌다.
SDS, 호텔신라, 전자 등 여러 계열사 동기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나름 인싸였다. 분위기를 주도했고 최종발표때는 다른 동기와 둘이 나가 새로운 대담형식으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다시 1주 가량 교육이 시작 되었다. 간단한 소개들과 함께 과제들이 주어졌다.
그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은 무서울게 없는 잘나가는 회사였다.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이건희 회장의 바로 왼쪽편에 앉는다는소문도 있었고 당시 주가 또한 1주당 20만원 이상으로 고공행진 이었다.
당시 본부장(전무) 께서 애사심을 가지기 위해 매달 1주씩 사보라고 하셨고 그 본부장 비서분께서 알려주시길 본부장은 0.1% 지분을 가진 대주주라고 하셨다.
나도 그래보자라는 마음에 딱 1주를 사고 사정상 못샀는데 지금에서야 2만원대로 1/10이 된 주식을 보면 안도감이 든다.
삼성엔지니어링은 EPC 기업이다. 문과 계열을 제외하고 이과 계열이 갈 수 있는 곳이 E,P,C 인 것이다.
부서 배치는 랜덤이었다. 첫번째로 사업부가 정해졌다.
당시 사업부는 업스트림의 에너지 사업부, 다운스트림의 화공 사업부, 그리고 산업설비의 I&I 사업부가 있었다. 나는 에너지 사업부로 정해졌다.
이제는 E,P,C 중 하나가 정해졌다.
공학을 전공하는 인턴사원들에게 설계, 조달, 공사 그 중에서 선호하는 분야는 설계 분야였다.
또 기계공학 전공자가 갈 수 있는 곳은 기계설계, 공간설계(배관) 정도 였다. 두 곳 중에서도 기계설계를 선호했다. 석유화학 EPC에서 배관설계의 업무 자체가 3D로 불렸었다. 일 양 자체가 너무 많고 복잡했다.
나는 다행인지 설계의 기계설계 팀으로 배정되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내 사수는 해병대 출신의 모교 선배였다. 나 또한 해병대 출신이었다.
좋은 선배들도 많았고 다들 젠틀했으며 회사가 호황인지 분위기도 좋았다.
회사도 타워팰리스 앞의 도곡동에 위치해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 것도 행복했다.
퇴근후 선배들과 식사를 하는 것도 좋았고 동기들과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하며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짧은 2개월이 지나갔다.
월별로 급여를 주지 않고 인턴이 끝날때 240만원을 한번에 주었다.
통장이 아닌 현금으로 주었다.
뜻이 다 있었다. 첫 월급이니 그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담당자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동기들과의 헤어짐이 아쉽겠지만 아쉬움만으로 끝나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세요"
아쉬움을 만들지 않고 인연을 이어 나가라는 뜻이었다.
인턴 사원들이 100% 정규직으로 전환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환율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90% 이상이 될 것이라고...
인턴 근무하는 것을 보고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 인턴이었기에 졸업때 신입을 지원하면 서류와 인턴 면접때 보았던 직무, 회의 면접을 건너 뛰고 임원 면접 하나만 보면 되었다. 회사도 실적이 좋기 때문에 90% 이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남은 1학기 동안 취준생이 되었다.
학점은 신경 쓰지 않고 이제 기업에 지원을 해야 한다.
당시 내 주변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공기업을 지원하는 친구는 한명도 없었다.
대기업에 지원하거나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2가지 뿐이었다.
줏대 없던 나도 친구들의 기류에 휩쓸려 대기업에 지원했다.
전공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대학원 진학은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부자도 아니었어서 그냥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 많이 쓰는 기업에 나도 따라 지원을 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기아자동차, 두산중공업, GS건설, 대림건설, LG화학
이렇게가 기억에 남는다.
현대차는 토익 점수가 없어서 지원자격이 안되었고 인턴을 삼성엔지니어링이라는 EPC 건설사에서 했기 때문에 주로 EPC를 하는 기업에 지원을 했다.
기아자동차를 가고 싶긴 했지만 그 당시에 학점도 낮은데다 영어도 오픽 뿐이고 자격증도 없었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서류 제출을 안해도 되었고 나머지 5곳의 서류는 다행히 모두 합격을 했다.
기업마다 전형 일정이 차이가 있다.
당시에 삼성이 가장 빨리 시작했고 발표도 가장 빨리 났다.
임원 면접만 보면 되었다.
"인턴 한거 기록 보니 생활을 잘 했나 보네"
"사수랑 팀장님이 많이 알려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 했습니다"
마지막에 인턴 부서의 팀장이 했던 말이 떠 올랐다.
"너는 꼭 우리팀 와라"
질문과 질타가 이어졌다.
"학점이 안좋네. 공부 열심히 해라"
(이 얘기 듣고 떨어지는 줄 알았다. 공부하라고 해서 학교로 돌아가라는 의미인줄...)
"신문을 볼때 어느 면을 먼저 보냐"
"정치, 경제, 스포츠등 여러면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면을 먼저 본니다."
"그럼 요즈음 사회면에서 가장 관심있게 봤던 것 하나만 말하고 니 의견 말해봐라"
"초과 이익 환수제에서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일반 사기업에서도 일정 이익을 초과하게 되면 그 것을 환수하는 내용이었는데 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조마조마 했지만 최종 결과과 합격으로 나왔다.
합격 발표 나는 시간에 학교 선배와 카페에서 담소 중이었다. 카페에 있는 PC로 접속해서 합격 발표를 확인했다.
선배가 나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는 뭐 잘 안하는것 같은데 니가 해야할 껀 잘 챙긴다"
그랬던가...
인턴 동기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생각외로 충격이었다. 90% 가 넘을 것이라는 인사팀의 얘기와 다르게 불합격자가 너무 많았다.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동기들은 모두 떨어졌었다.
이게 사회에서 처음 맛본 뒷통수였다.
지원한 나머지 기업들은 삼성 합격 발표후 인적성이나 면접이 진행되었다.
이미 한 곳의 기업을 합격 했기에 긴장감은 사라졌고 간절함도 없어졌다.
그 중 기억에 남는 3곳
기아는 그래도 가고 싶은 기업이었다. 인적성시험이 삼성동에 있는 중학교였다.
당시 가족 중 한명이 그 중학교 바로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그 가족도 주말에 놀러 간다고 하여
혼자 그 방에서 잔 다음 시험을 보러 가기로 했다.
못갔다. 이유는 늦잠.
당시 다들 스마트폰을 쓸때 나는 베컴폰을 쓰고 있었다. 배터리 탈착 상태가 불안한 폰이었다.
불안해서 고무줄로 핸드폰을 묶어서 배터리가 탈착 되지 않게 한 상태로 알람을 맞추어두었다.
일어나니 배트리는 탈착되어 핸드폰이 꺼져 있었고 시계를 보니 이미 2시간이 지난 뒤였다.
두번째는 대림건설 이었다. 왕십리 쪽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인적성시험 이었다.
대림보다는 삼성이지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긴장 없이 시험장에 도착해서 시작까지 남은 시간에 다른 반들을 돌아다녔다. 다른반에서 취업 삼수 중인 선배를 만났다.
왜 시험 보러 왔냐고 뭐라했다. 형 좀 도와주라고... 내가 인적성을 잘 본다고 해서 큰일 나지는 않겠지만 시험을 망치기로 했다.
세번째는 두산중공업이었다. 친한 선배가 이미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인적성 끝나고 버거킹 만원 쿠폰을 주었다.
결국 나는 삼성엔지니어링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