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고생은 사서 해야 하는 것일까?
3주간의 신입사원연수(SVP)가 끝나고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또 신입교육을 받았다.
특시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교육을 받을때에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느꼈다.
동기들 중에서 SKY도 많았지만 해외대 출신이 많았다.
컬럼비아대, 워터루대 등등...
어쨌든 배치관련 면담을 했다.
당연히 나는 인턴을 했던 기계설계팀으로 갈 수 있었다. 인턴을 하지 않은 동기들 중 기계과 전공인 친구들은 대부분 그 팀을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똘끼가 있었다.
어렵고 힘든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기계과를 갔었고 해병대를 갔었다.
3D로 불리었던 공간설계(배관설계)에 지원했다. 배치 면담을 하던 인사팀에서도 기계설계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고생해보고 싶고 어려운거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첫번째 선택이었다.
그렇게 공간설계로 배치를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첫 1년은 일이 많지는 않았다. 신입사원인데 크게 관리 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첫 파트가 견적 파트였는데 내 사수가 너무나도 바빴다. 첫 부서 출근 날 사수가 출장중이었다.
당시에 견적 총 5개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첫날에 프로젝트 회의를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채 가서 열심히 적고 왔다. 당시 PM이 용어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당시 배웠던 용어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척(Random Length)" 였다.
나의 파트는 파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력직 출신이었다.
그리고 나만 20대였고 모두가 40대 이상이었다.
나는 케어가 잘 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물어가며 꾸역꾸역 해나갔다.
그러고 현장 OJT가 잡혔다.
당시 회사는 신입사원 모두가 2달동안의 현장 OJT를 꼭 가야 했다.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쥬베일이라는 곳에 2달 동안 OJT를 갔다.
하지만 설계로 가지 않고 공사로 갔다.
업무는 거의 할당 되지 않았다. 그냥 매일 현장 SI(Site Instructor)을 따라서 돌고 기본적인 설명을 듣는게 끝이었다.
회사의 호황기 때라 나와있던 OJT 직원들을 데리고 사우디 수도 리야드 투어를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2달뒤에 귀국을 했다.
그리고 나서 회사는 강남구 도곡동에서 강동구 상일동으로 이전을 했다.
같은 서울이었고 지방 출신인 나에게 큰 감흥도 없었다. 그냥 크고 새 건물에 가는 것에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막내였던 나는 부서의 모든 공용 서류와 비품들을 챙겨야 했다.
주말에도 나와 챙겼다.
복귀후 3개월 후에는 삼성 신입사원이 다 모이는 행사에 참석을 해야했다.
모든 삼성계열 동기들이 다 모여서 치르는 3박 4일간의 행사였다.
무주리조트로 모였고 동기들을 만나서 회포도 풀고 율동도 추고 했다.
멀리서나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보았고 싸이를 포함한 여러 가수의 공연도 보았다.
그리고 이 행사를 위한 카드 섹션이 있었는데 카드섹션 때문에 미리 모여 몇일간의 연습을 하기도 했다.
외부에서는 이게 북한이냐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재밌었다.
오랜만에 동기들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모든 것이 재밌었다.
그렇게 신입사원 프로그램도 끝이났다.
그리고 나선 다시 알제리 출장이 생겼다.
알제리 현장에서 사람이 모자르다고 단기 인력을 보내달라고 했고 어디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일하는게 아닌 견적업무를 하던 나는 차출되어 알제리로 갔다.
다행히 뒤늦게 배치받은 동기들이 OJT로 같은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 그 사람들과는 계속 연락하고 만나고 지낸다. 좋은 사람들이다.
알제리 현장에 가서는 업무를 집중적으로 했다. 계속해서 일했다.
한국 협력업체 직원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시위의 중심에 있었다. 과격한 행동도 있었다.
꽉 찬 맥주캔을 던지기도 했고 의자가 날라오기도 했고 형광등이 깨져나갔다.
숙소에 전기가 자구 끊기고 보급되는 물이 시원하지 않고 식당 에어컨이 없어서 덥다는 등의 생활개선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 3주간의 돌관 작업이 끝나고 회식을 하고 있던 날 일어났던 지라 더 신경을 자극 한 꼴이었다.
서로간 소통이 부족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일단락 되었다.
현장에서 파견을 미리 나와있던 내 사수는 계속해서 나에게 현장에 계속 남아 있어 달라고 요청 했다.
결혼을 하기로 했어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혼할때는 보내준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선배는 나를 보내주었고 그렇게 귀국을 했다.
다시 반년이 지나서 파트이동을 했다. 파트장이 이제는 프로젝트를 하라고 프로젝트를 하는 파트로 보내준다고 하였고 선택을 하라고 했다.
2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상일동 본사에서 근무하는 UAE 프로젝트 팀, 도곡동에서 근무하는 사우디 프로젝트 팀
나랑 친한 동기들이 사우디 팀에 있었기에 사우디 팀으로 갔다.
두번째 선택이었다.
그 프로젝트는 저가 수주에 무리한 스케줄의 프로젝트 였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미친듯이 일했다.
일이 상당히 많고 계속 야근을 해야했고 주말 출근도 해야했다.
하지만 친한 동료들이 있었고 같이 고생을 했기에 으쌰으쌰 하며 일했다.
우리 팀에서 해외 파견으로 보통 1~3명 정도를 보낸다.
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 현장에서의 업무로 전환되는데 현장에도 설계 엔지니어가 투입되어 공사팀과 일을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내 프로젝트는 무리한 스케줄로 수주를 했기에 최대한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빨리 끝내야 했다.
그래서 전례 없이 7명의 투입이 결정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Area는 나의 사수가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줄 알았다.
하지만 파견 시작 3개월전 갑자기 사수가 일이 생겨서 못가게 되었다. 나로 바뀌었다.
파트장은 6개월 동안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사우디아라비아 6개월 파견이 시작되었다. 아들이 돌이 채 안 된때였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내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고 내 이직욕구를 끓어 오르게 한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