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직을 결심한 이유(사우디의 삶)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다. 일만 해서는 안되는 걸까

by 태평성대

사우디에서 파견기간동안 여러 일을 겪었고 한국과는 다른 생활 패턴을 가졌다.

기상은 4시 20~30분, 이후 셔틀버스 탑승 4시 40분

그리곤 출근까지 버스안에서 쪽잠

5시 30분 현장 도착후 아침식사(때로는 건너뛰고 회의실 책상에서 누워 자기)

6시 업무시작 후 18시 퇴근과 함께 저녁식사 (야근하는날은 21시 또는 22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음)

19시 숙소 도착 및 샤워 후 영화나 드라마 시청 또는 게임 (다른 거 할 엄두가 안남)


현장에서는 사우디에 맞추어서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이 쉬는 날인데 현장은 토요일도 일했다.

목요일은 퇴근과 함께 회사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그리고 금요일은 쉬거나 때로는 7시 쯤에 출근을 해서 점심 또는 오후 3시 정도까지 일을 했다.

이렇게 2년 2개월을 보냈다.

몸무게가 17kg 가까이 빠졌다.

4개월에 2주 가량 휴가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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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학때부터 마이너들을 더 챙겼다.

소외받는 친구들을 더 챙기고 관심 받지 못한 사람들을 더 챙겨줬다.

현장 파견때도 그랬다. 선배보다는 후배를 그리고 같은 삼성직원보다는 함께 파견온 협력업체 직원들을 챙겼다. 또래의 2명의 동생이었는데 살갑게 대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소원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유를 몰랐지만 나한테 소원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굳이 나도 잘해주진 않았다.

나중에 이유를 알았지만 친하게 지내고 장난도 많이 치다 보니 내가 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잘잘못은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 또한 상처를 받았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선배들은 나를 위로했고 결국 그 친구는 얼마 후 귀국을 했다. 그렇게 또 무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동기가 축구를 하다가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한국을 가서 수술을 해야 하지만 귀국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본사에서는 내가 속한 사업부 상황이 좋지 않아 산업설비 쪽 사업부로 부서이동 및 파견자 대상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만약 그 동기가 수술로 귀국을 하게 되면 아마 그 후보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계속 귀국을 미루었다.


그리고 인사고과를 정하는 방법이 변경 되었다. 기존에는 속한 부서에서 고과를 매겼지만 이제는 프로젝트팀에서 고과를 매기겠다고 했다.

부서에서 고과를 매기게 되면 여러 사정(진급 순서등)을 고려하여 고과를 잘 주는 편이지만 프로젝트팀에서 하게 되면 그런것을 크게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맹점이 있었다. 고과를 평가하는 그 시기에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고 했다. 내가 1년중 대부분을 A팀에서 보내다가 고과 평가 시기에 일주일 정도 B 프로젝트에 소속되면 B 프로젝트에서 나의 1년 고과를 평가 한다는 것이다.


제어설계에서 파견온 직원들은 과장 진급 누락자가 많았다. 그래서 누락자들이 전원 일시 귀국해서 소속을 원 설계팀으로 변경한 후 원 소속팀에서 고과를 받고 다시 프로젝트 팀 소속으로 현장을 나왔다.

어깨를 다쳤던 동기는 사업부 이동자가 본사에서 다 정해지고 고과 시즌이 다가오자 어깨 수술을 해야 한다며 귀국을 하고 돌아오진 않았다.


처세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프로젝트 소속으로 고과가 매겨졌다. 결과는 3개월 가량 후에 나온다.


내가 담당한 Area의 공사는 거의 마무리였다. 하지만 동기가 귀국을 하면서 그 Area가 나에게 할당 되었다.

정말 눈물나게 노력했다. 협력업체가 하던 3D 수정업무를 업체 직원에게 졸라서 배웠다. 그래서 간단한 수정들을 직접 했다. 잘못 설계 된 부분들도 빨리 고치고 누락된 부분들도 빠르게 수습했다.

그렇게 결국 2년이 흘렀다. 이젠 진짜 복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젠 공사팀에서 파트장에게 나에 대해서 2개월 연장을 요청했다. 그렇게 2년 2개월의 시간 후에 복귀를 하였다.


복귀후 새로운 프로젝트에 바로 소속 되었다.

작은 프로젝트였다. 기피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국이다라는 마음으로 일했다. 2달 가량 일을 하는데 작년도 고과가 공개 되었다.


"최하고과"


나는 진급을 한 다음해였기에 보통 평고과를 주고 아무리 못해도 평고과 보다 한단계 정도 낮은 고과를 준다. 하지만 최하였다.

어이도 없으면서도 분노가 생기고 밑기지가 않았다.

보통 고과를 주기전에 상담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있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귀국을 한 상태여서 그 고과를 준 PM을 찾아가서 따질 수도 없었다. 억울한 마음에 e-mail을 썼다.

다음날 출근하니 답장이 와있었다. 답장은 더 억울하고 분하게 만들었다.


"왜 내가 이 고과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유를 알고 싶다"


"우리 프로젝트는 적자 프로젝트고 손해가 크다. 그리고 너는 A,B,C,D를 잘못했다"


억울했다. A,B,C,D는 나와 개인적인 연관은 거의 없다 싶이 했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번에는 EM을 참조로 해서 회신을 했다.


"A,B,C는 어깨 다쳐서 귀국한 동료 대신에 내가 남아서 수습을 한 것이다. 전에 발생한 문제를 내가 조기에 발견해서 해결한 건이다. 그리고 D는 우리 프로젝트에 소속된 팀 전체적으로 나온 잘못이다. 그걸 왜 7명의 파견자 중에서 밑에서 서열 2번째이고 설계했던 팀 20명 중에서 막내급인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냐"


그러자 PM과 EM 각자에게 회신이 왔다.


PM: 어쨌든 잘못 된 것이다. 그리고 너가 그 고과를 인정 못하면 다른 사람을 최하 고과 줘야 한다. 니가 그사람하고 이야기 하고 정해서 알려 달라


EM: 내가 1차 평가자인데 나는 평고과로 해서 올렸는데 PM이 내린 것 같다. 프로젝트가 적자라서 인사팀에서 무조건 1명은 최하고과를 줘야한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미안하다. 내가 이제 다른 프로젝트 PM을 할 것 같은데 너를 데려 가겠다. 그리고 최고고과를 줄 것을 약속한다


EM은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약속을 준 방면 PM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파트장과 임원이었던 팀장을 찾아가서 얘기를 했다.


두분다 적극적으로 나서준 느낌은 아니었다. 통화 1~2번 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기분이었다.

몇일 아니 몇달 동안 일이 제대로 안되고 억울하고 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 고과라는게 그리고 회사라는게 인생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진 않다.

길게 생각하자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망각의 동물 인간답게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 지는듯 했지만

틈틈히 솟아나는 분한마음과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이직을 해야겠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이 고과가 정당한 것이라면 나는 일을 정말 못하는 것이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아니다.

정당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부당한 일을 또 당할 수도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부서 동료들이 평가한 역량에서 나는 동기중에는 최고였고 나보다 3년 앞서 입사한 선배와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를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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