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이직 성공기
이직을 해야했다. 나는 지방 출신이라서 서울 근무나 서울 거주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은 없었다.
대학은 수도권으로 갔지만 그렇게 3월부터 이직의 결심을 하였다.
그때는 몰랐다.
서울을 벗어나는건 큰 리스크를 지는 것이다.
이직을 희망하는 직무나 기업이 있지 않았다. 그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 삼성을 벗어나야 했다.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 이름있는 회사에 공고가 뜨면 닥치는 대로 지원을 했다.
자소서는 돌려쓰기로 충분했다.
신입, 경력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신입은 무엇보다 인적성을 다시 봐야해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공관련 문제가 나오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서류를 붙고나서도 인적성을 안보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목표기업과 직무가 없다는게 심신을 힘들게 했다.
이름있는 기업들의 채용사이틀을 북마크에 등록해놓았고 잡코리아, 사람인 등의 어플들도 수개가 되었다.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공고를 하다보니 특히 정신적인 소진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매일 오후 4시에 한번 전체적으로 확인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예전보다 피로는 줄었지만 그래도 여러 사이트와 여러 어플들을 훑어 보는게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삼성엔지니어링에는 젠틀하고 좋으신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를 이직하게 만든 PM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난 떠나야 했다.
그렇게 여러 기업을 지원하던 중 GS 계열사에 서류 합격을 했다.
경력직임에도 인성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단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붙고나서 고민이다.
보통 경력직은 인성 시험은 안보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한다.
신입들은 인성과 전공 시험을 보았고 경력직은 같은 장소에서 인성 시험만 보았다.
인성은 자신 있었기에 합격 했다.
인성시험은 간단하다. 또 하나의 자아를 설정해놓고 그 자아 기준으로 선택만 하면 된다.
면접은 역삼동 GS 타워에서 진행했다.
처음은 직무 면접이었다. 3명의 면접관이 있었고 간단하게 직무관련 질문이 이어졌다.
배관 국제 코드에 관한 질문과 Underground piping 등에 대한 질문 이었다.
사우디에서 단련된 지식으로 간단하게 답을 할 수 있었다.
같이 면접장에 들어간 지원자도 최종합격을 했는데 그 지원자가 나의 면접 답변을 보고 합격할 것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임원 면접이었다. 그때는 누군지 몰랐는데 GS 로얄패밀리도 한분 있었다.
(합격 하고 훗날 그 로얄패밀리와 점심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인사팀장이 나의 면접 대답들을 들으면서 흐뭇해 하는 표정을 보았다.
이건 합격이라고 생각했다.
합격
문제는 지금 부터다.
연봉협상과 거주지 이전(지방 근무 및 가족과 함께 갈지 등) 문제가 있었다.
연봉협상은 E-MAIL로 진행되었다.
아주 높은 연봉을 바라진 않았지만 현재의 연봉에서 상승분이 아주 미미 했다.
너무 적다고 회신을 했고 바로 전화가 왔다.
"복지포인트 등등 다 합치면 실제 연봉은 더 많아 집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곳을 벗어나야 했고 기존 EPC에서 O&M 회사로 가는 것이기에 수락했다.
하지만 끝까지 고민을 한 것은 실제로 이직 할지 여부였다.
가족은 내가 무슨 결정을 하든 100% 지지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규모가 꽤 큰 프로젝트였다.
동기들 모두가 AE(Associate Engineer)였지만 나는 KP(Key Person)로 프로젝트에 소속되었다.
후배 직원을 이끌어가면서 area를 담당해야 했다. 아직 후배 직원이 파견 복귀 전이라 혼자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새로운 견적 업무가 주어졌다. 총 2개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왜 굳이 나인지 물었으나 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여기까진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 느껴서 수긍했다.
그리고 바로 전에 했던 작은 프로젝트의 마무리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총 3개의 프로젝트였다.
대부분 1개의 프로젝트를 하고 소수의 인원이 2개 정도를 하는데 3개를 해야 했다. 물론 하나는 마무리 단계라 이해했다. 그리고 나서 사우디 아라비아 파견을 나갔던 프로젝트의 As-built 업무에 투입도 되었다.
나에게만 일이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일을 할때 크게 티를 내지 않았다. 말수도 줄이고 특출난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회식도 잘 가지 않았고 가더라도 술은 마시지 않고 빠른 시간에 귀가를 했다. 그냥 맡은 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쳐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저런 나의 성향이 오히려 일을 계속 몰고 오는것 같았다. 일을 쳐내니 계속 일이 들어왔다.
1개의 프로젝트와 1개의 프로포잘 업무를 본격적으로 리딩해나갔고 2개의 프로젝트는 발을 걸친채 마무리 업무를 했다.
부서의 admin에게 메신저가 왔다.
"올해부터 부서 프로그램 담당자로 선정 되었어요. 특히 올해는 전사 TF가 구성되어서 개선 작업도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 총 4개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서에 인원이 많은데 저는 그 일까지는 힘들 듯 합니다"
"억울할 수 있는데 짬 찹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헤쳐나가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걸 느낄 수가 없었다. 인정을 받는 것이었으면 어떻게든 부서에서 나의 고과를 챙겨주었어야 했다.
가족에게 이직 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GS 인사팀에도 입사를 하겠다고 했다.
입사 한달 전 파트장에게 퇴사 얘기를 했다. 파트장은 업무를 조정해줄테니 남으라고 했다.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팀장인 상무님께 찾아갔다.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건데? 그때 고과 때문에 그러냐?"
팀장도 내심 그게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꼭 그 한가지 때문은 아니지만 그것도 계기 중의 하나 입니다. GS로 갑니다"
"일주일 시간을 줄테니 다시 생각해보고 이직할 경우 좋아지는 점과 안좋아지는 점을 정리봐라"
정리했다. 이미 마음이 기울어진 터라 장점이 더 많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의 시간이었지만 다음날 바로 다시 찾아갔다.
"정리 했습니다. 가야겠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신변정리를 했다. 동료들을 만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내 고과를 챙겨주겠다는 EM은 미안하다고 했고 당시 CM은 그 고과를 만회하기는 힘들다고 잘 생각했다고 했다.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아쉬워 하면서도 응원을 해주고 소수의 인원은 부러워 했다.
사원증과 법인카드를 반납할때 비로소 진짜 퇴사가 되었다.
이제 게이트를 나오면 나는 들어갈 수가 없다.
만감이 교차했다.
시원섭섭한 마음과 함께 새로운 것에서의 시작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