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GS에서의 새로운 시작 하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by 태평성대

입사까지는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갔다.


회사 근무지는 서해 쪽 지방이었다.

삼성에서는 대중교통과 출퇴근 셔틀을 탔지만 그곳은 자차 없이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차를 몰고 회사로 갔다.


주차장에서 회사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기존 직무에 맞춰서 건설팀으로 갔다.

10명 남짓의 팀원들이 있었고 반갑게 맞아주는 분도 계셨지만 퉁명스럽게 맞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이곳에서 다시 회사 생활을 해야 했다.


업무는 기존 업무와는 차이가 있었다. 기존에는 수주를 받아 일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사업주 입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분야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좋은 사수와 함께 배우면서 적응해 나갔다.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같은부서 신입사원 한명이 역삼 본사로 발령지가 바뀌었다.

그 친구의 대학원 교수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 그 쪽으로 보냈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다.

부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숙소를 배정 받았다. 회사에서 10분 가량 떨어진 아파트였다.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하려고 생각했었고 그 전까지 합숙 생활을 해야했다.

몇일 먼저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이미 좋은 방 2개를 쓰고 있었다.

나는 작은 골방에서 짐을 풀었다.


천성이 그런지라 그런 합숙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밖을 구경하고자 했지만 공장들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유흥업소들이 너무 많아서 나가기가 싫었다.

그리고 문제는 서해쪽이다 보니 미세먼지가 너무 심했다.


이런 곳에서 가족과 지내면서 아들을 키울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이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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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술을 너무 마셨다. 나는 선천적으로 술이 맞지 않는다. 한잔을 마시면 온몸이 빨개지고 항상 구토를 해야만 했다.

술을 잘 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배려는 없었다. 계속해서 술을 마셔야 했다. 사업주다 보니 업체랑도 마셔야 했고 부서 회식도 해야 했다.

글라스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고 그 안에 날 계란을 풀어서 원샷을 했다.

너무 힘들었다.


잘 알아보고 가야 하는데 도망치듯 한 이직은 만족 하기가 힘들었다.

다른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직 마음을 먹는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피곤한 채용공고 탐색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삼성에서 친하게 지낸 사우디에서 동고동락을 같이한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님 이 회사 씁시다. 발전 공기업입니다."


신입이었다. 서류를 지원했다. 인적성을 보러 갔다. 전공시험도 있었지만 다행이도 비중이 적었다.

오며가며 눈이사를 했던 삼성의 동기도 시험장에서 보았다.

기대는 안했지만 합격을 했다. 하지만 후배는 불합격을 했다. 전화위복이라고 그 후배는 나중에는 더 좋은 기업과 원하는 지역으로 이직을 했다.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전형이 많았다.

직무 면접, 영어 면접, 협동 면접등등 한 4~5개는 되었던 것 같다.

준비를 따로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면접을 보았다.

떨어져도 돌아갈 곳이 있다보니 크게 긴장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더 면접이 잘 봐진 것 같다.


최종 합격이었다. 합격을 하니 오히려 더 고민이 되었다.

다시 이직을 해야하나 아니면 남아야 하나


가족은 어떤 선택이든 다시 나를 지지해주었다.

그래! 공기업이니 더이상의 자기계발이 아닌 워라밸을 찾으면서 가족들과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경력직으로서 느끼는 비 성골 출신에 대한 서러움도 신입 공채로 입사니 없겠구나.


회사에 얘기한 이직 사유는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다 보니 내가 팀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 같다는 것과 나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발전 공기업에서의 월급이 더 많아 질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의 사수는 피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소 된다고 했고

나의 팀장은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서운하다고 했다.


GS의 짧은 6개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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