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기업의 중고 신입

늦은 신입사원의 처절한 적응기

by 태평성대

100%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채용형 인턴이다.

신입 교육을 받으러 모였다.

수백명의 동기들이 있었고 늦은 나이의 신입인지라 조용히 지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8살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동갑인 친구도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 사람에 데이다 보니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까우면 생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좋은 동기들이 많았지만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혼자 밥을 먹기도 했고 자유시간에는 조용히 책만 읽었다. 물론 몇주가 지나고서는 같이 농구도 하고 수다도 떨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활발히 하지는 않으려고 교육 내내 자제했다.


더구나 2인 1실의 합숙은 더이상 맞지가 않았다. 나름 해병대에서 군생활도 하고 대학도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어느덧 타인과 같이 방을 쓴다는 것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단체생활이니 어쩔수가 없다. 그렇게 버텨왔고 또 매주 있는 시험도 치르면서 교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금요일 오후마다 귀가가 허용되었고 집과의 거리가 멀었지만 마음만은 너무 좋았다. 짧은 주말을 보내면 다시 입대하는 기분으로 들어왔다.


모든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었고 나는 애써 적응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신입 교육이 끝나고 다시 2차교육이 이어졌다. 긴 시간이었다. 자유는 부여되었지만 그래도 합숙과 지루함은 어쩔 수 없었다.

1차, 2차에 이루어진 시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무조건 암기였다. 블라인드 채용인 공기업의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이 입사하기 때문에 그 편차도 컸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절대적이진 안지만 상대적이고 비율적으로 삼성의 사람들이 더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공기업 회사에서도 놀라울만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드디어 배치를 받았다. 원했던 곳은 아니었다. 낙담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족들도 이사를 했다. 나로 인해서 여러번의 이사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배치 이후 직군 교육이 진행되는데 한달가량 진행된다. 하지만 배치된 곳에 인원이 부족하여 나는 선 근무를 하고 다음 신입 차수와 함께 교육을 받아야 했다. 다음차수와는 같이 배치받은 동기가 먼저 교육을 받으러 갔고 그 다음차수는 신입사원이 없었고 결국 2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신입 직군교육을 들어러 갈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입사원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철저하게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물론 나중에서야 그 곳의 한 친구와 가깝게 지내면서 이직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도 되었지만 교육 중에는 스스로를 더 가두었다.


주말에는 집에 갈 수 있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전염병이 창궐해서 주말간에도 귀가가 허용 되지 않았다.

꼼짝 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담당자를 찾아가서 그럼 중도 포기하고 전염병 끝나고 다음 기수 교육때 재입교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가정도 있고 애를 돌볼 사람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담당자는 역대로 자진해서 중도포기자는 없었다고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수가 없었다.


어쨌든 공기업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직 없이 잘 다녀보자라고 생각했다. 이 마음이 바뀌기까지 3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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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번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무엇인가 도전을 할때 자주 듣는 말이다.

이직도 똑같았다.

처음의 이직이 어렵지. 한번 이직하면 또 이직의 마음이 쉽게 생긴다.


더 좋은 곳을 찾아가야 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대학때 소개팅을 종종 했었는데 그때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

자꾸 하다 보면 무덤덤해 진다.

그리고 지나간 사람이 더 괜찮아 보여서 애프터를 하지 않게 된다.


이직도 그랬다. 지난번의 기업이 더 좋아 보였고 이직 하는것이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기에 공기업은 정말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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