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기업에 맞지 않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천국, 누군가에게는 지옥

by 태평성대

공기업에 들어가고서는 정년까지 워라밸을 추구하며 살 줄 알았다.

정시퇴근은 당연했고 휴가 사용에도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 밖의 상황도 바뀌었었다.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면서 내가 다니던 삼성을 포함한 야근을 일삼던 많은 대기업들도 빠른 퇴근이 가능해졌다.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 하나 줄어든 것이었다.

반면 사기업들의 급여는 계속 오르는데 공기업의 급여는 그렇지 않았다.

또 그 즈음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을 만났는데 워라밸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하루 단위의 워라밸을 추구하지 마라. 워라밸을 인생 단위로 바라 보아야 한다.


매일 정시 퇴근을 통해서 워라밸을 꿈꾸지 말고 젊은 시절 열심히 달리고 그걸 토대로 나이가 들면 편안한 인생을 살라는 것이었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말이었다.

나는 삼성에서 열심히 달렸다. 물론 달리면서 불만도 많았고 워라밸도 찾고 싶었지만 그래도 회사에 있는 순간과 업무를 하는 순간은 정말 달렸다. 하지만 회사에서 내려준 평가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흘러 흘러 공기업까지 오게 된 것이다.


주변 나이든 공기업 직원들을 보니 확실히 달랐다. 물론 내가 본 단편적인 것들이기에 그것이 공기업을 대표할 순 없다.

업무의 강도는 이전 회사에 비해서 절반도 되지 않았다. 쉬엄쉬엄 지내며 일하기 좋다.

웬만하면 잘리지도 않는다. (남도 안잘리지만...)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다.

복지가 줄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준수하다.

나이드신 분들이 누린 혜택이 있어서 그런지 자녀들도 공기업에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호봉제이기 때문에 급여 상승이 적다고 해도 업무 평가에 크게 좌우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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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게 아니면 개인적인 취미들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간부들은 주말부부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무엇인가 여유들이 느껴졌다.

테니스, 골프, 등산, 축구, 수영, 악기연주, 사진 등등 다양한 취미들을 가지고 있었다.


좋았다. 나도 그런 취미를 가져볼까 했다. 이것저것 시도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공기업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고 지원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난무난하게 지내온 습관들 속에서 하고 싶은 것들 대한 욕구가 있었던것 같다. 성장하고 싶었고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기업은 아니었다.

그곳은 상당히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성장보다는 안정이 우선이었다.

일하는 문화보다는 쉬엄쉬엄 문화였다.

누군가에게는 천국인 직장이었다. 그런 문화를 알기에 입사를 한 사람도 많았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자랑이 되는 문화였다.


천국이라 생각을 했지만 한순간에 지옥이 되기도 한다.


쉬엄쉬엄 하고자 입사했는데 일을 많이 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특히 나같은 대기업에서 이직해 온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 물론 대기업에 비해서 업무 강도가 50% 이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 업무 강도가 익숙해지고 주변에 더 일을 안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면 나는 일을 적게 할려고 왔는데 그게 아니게 되는 순간을 접하게 된다.

더구나 공기업은 인사에 대해서는 공정과 공평이 더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적당히 적당히 쉬엄쉬엄이 강했다.

나 자체도 그런 타성에 젖어가는 것 같았다. 주변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에게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상상외로 이상한 사람들이...

내가 나이가 들었을때 눈에 보이는 저 사람처럼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인사이동을 할려면 비벼야 했고 회사의 일부 복지나 혜택을 받으려고 해도 공평보다는 친분이 작용하기도 했다. MBTI 에서 I 성향인 나에게는 힘든일이었다.


급여부분도 분명 큰 부분이다. 내가 금수저라면 적당히 적당히 하며 다닐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러지 못하기에 급여도 중요했지만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였다.


공기업, 공공기관들은 특성상 매년 국정감사를 받는다. 국회의원들이 기관장들을 대상으로 호통과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해가 되었다.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복지들이 국민들 입장에서는 방만경영의 대상이 되었고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그런 기관들을 타겟으로 꾸짖고 개선을 요구하면서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었다.

그렇다면 매년 이런 저런 이유들로 질타를 받으면서 복지와 혜택들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발전공기업의 오지 근무 가능성도 큰 리스크가 되었다.

서울에 사는 것이 스펙이 되는 시대였고 한양을 벗어 나지 말라는 정약용의 말이 와닿았다.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건은 있었다. 도망과 탈출이 아닌 더 좋은 곳을 찾아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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