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리가 시작했을 때부터 다낭성 난소 증후군 증상에 시달렸다. 그땐 내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항상 불규칙한 주기로 생리를 했고 심지어 아예 몇 개월간 안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청소년기는 젊다는 사실 하나로 어떻게든 잘 버텨온 것 같고, 진짜 문제는 20살 이후부터였다. 2018년, 다이어트를 하려다가 오히려 살이 더 쪄버리고(63.5kg), 나는 거의 6개월간 생리를 안 했다. 솔직히 생리를 안 하니까 편하기는 엄청나게 편해서 몇 개월간 병원에 안 갔던 것도 있다(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시길). 근데 그게 6개월을 돌파하니, 슬슬 내 몸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병원에 갔고, 호르몬 검사와 피검사를 받은 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내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니..
미친듯이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검색했다. 아, 불치병이랜다. 억울했다. 심지어 딱히 치료방법도, 원인도 잘 모른다는 것에 '아니, 우주까지 진출한 인류가 어째서 현대 가임기 여성의 약 5~10%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이 정도밖에 발전을 안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체지방을 감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 그게 말처럼 쉽냐고요. 심지어 난 2017년쯤 다이어트를 빡세게 하다가 이미 폭식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다이어트와 폭식증에 관해서는 추후 따로 포스팅하겠다. 할 말 정말 많다).
2019년, 폭식증이 다 나은 지 1년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주 만에 8-9kg 감량(54~55kg)에 성공했다. 감량하자마자 생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 나는 건강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한 것이 아니라 거의 초절식을 하면서(과자나 라면, 햄버거, 디저트류 같은 걸로 초절식했다) 단기간에 다이어트를 한 것이었고, 결국 생리도 한두 번 규칙적으로 하나 싶더니 원상태로 돌아와 버렸다. 2018년보다 살이 많이 빠져있는 건 사실이었으나 식단을 내 맘대로(?) 하면서 살다 보니 요요까지는 아니어도 체중이 어느 정도 다시 증가하게 된 탓도 있었다(56~57kg). 그리고 이 체중은 물론 건강하게 증가한 체중도 아니었다.
애초에 2016년~2018년 약 2~3년간 여러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면서 어쨌든 살이 도로 찐 이유가 극단적인 식단 조절(살찌는 음식과 살 안 찌는 음식 구분하여 골라먹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거 먹으면 안 된다'라는 강박증보다 '이거 먹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강박증에, 평소라면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을 패스트푸드와 특히 디저트와 같은 미치게 달달한 음식들을 중독 수준으로 먹어댔고, 그 결과 2020년 즈음 소화기관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당시 내 심리 상태는 이랬다. '어차피 무슨 음식을 먹든 먹는 양이 많을 때만 살이 찌는 거면, 예를 들어 내가 10 정도의 양을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하러 10을 야채 과일로 채워? 마카롱 10을 먹고 말지!'
내가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뭐든지, 정도라는 게 있다.
물론, 다이어트하면서 극단적인 식이 제한이나 '이거 먹으면 살쪄'라는 생각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폭식증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체지방 감량에 있어서는 먹는 음식의 종류보다 음식의 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체지방 감량'만을 놓고 봤을 때의 얘기고, 건강 그 자체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요약하자면, 체지방 감량을 위해서는 확실히 음식 종류를 따지는 것보다 양을 줄이는 게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이미 현대 쩝쩝 박사들이 발명해 놓은 음식들에 잘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이, 다이어트한답시고 (1) 음식 종류랑 (2) 음식의 양까지 제한하기 시작하면, 독한 의지를 지닌 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고 무조건 폭망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 중 하나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일 순위를 따지자면 음식의 양이, 그다음이 음식의 종류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체중이거나 고도비만이라면 음식의 종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양만 줄여야 일반인으로서 쉬운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탄탄 마름으로 가고 싶은 정상체중이거나 마른 비만이라면 양만 줄이게 되면 초절식이 될 테니, 음식의 종류까지도 신경 써야 체지방을 건강하게 감량할 수 있다. 물론 초절식으로도 살은 쉽게 빠진다. 그리고 기초대사량을 다시 천천히 올리면서 식사량을 늘리고 몸무게는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그 기간 중 당신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2020년, 나는 툭하면 배가 아프고, 고기류를 먹으면 소화가 안돼서 잠을 못 자고, 한두 달에 한 번씩 장이 꼬여서 응급실에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때 내 식단이 어땠냐고?
아침: 초코 시리얼 + 배스킨라빈스
점심: 버거킹 세트 + 배스킨라빈스
저녁: 통삼겹에 까르보 불닭 + 배스킨라빈스
배스킨라빈스에 미친놈..?
어쨌든 이랬다. 중간중간 간식(바닐라라떼 + 케이크 or 쿠키)은 덤! 소화기관이 안녕 할리 없었다. 물론 '라면 하나 먹는다고 큰 일 안 납니다', '다 사람 먹으라고 만든 건데 유해하지 않습니다.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스트레스받는 게 더 유해합니다'라고 하는 사람 많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다.
어쩌다 라면 한 번? 괜찮다. 어쩌다 마카롱에 바닐라라떼 한 번? 괜찮다. 근데 이게 일주일에 3-4일, 그리고 거의 매일.. 이렇게 가다 보면 진짜로 안 괜찮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다낭성 난소증후군입니까? 당장 내려놓으십시오.
어쩌다가, 는 정말로 괜찮다. 그렇지만 저런 음식들의 특징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가공식품이나 인공적으로 달달한 음식들은 술과 담배 수준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2022년, 나는 결심하고 약 일주일간 가공식품 및 '단 맛'을 완전히 끊었다.
계기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가공식품 및 당분 섭취 증가로 인한 체중 증가.
눈물이 난다..
어쨌든 거의 자연식물식 채식으로 일주일을 살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2.5kg가 빠졌다. 안 굶었다. 채소, 버섯, 잡곡밥, 된장찌개 등등 배 터지게 먹어서 배불렀다. 신세계였다. 경험상 체지방 감량에는 먹는 양이 제일 중요한 줄 알았는데, 음식의 종류도 중요했다. 살 빠진 것보다 다른 영향의 체감이 더 컸는데, 내가 느낀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안 피곤함, 안 찌뿌둥함, '피로'라는 게 사라져 버렸다..?!
2) 몸과 정신이 미친 듯이 가벼움
3) 일과 공부에 집중 잘 됨
4)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너무너무너무 상쾌함
5) 단 게 이제 안 당김. 배가 안 고파도 단거라면 주섬주섬 주워 먹던 단맛 중독이 마법같이 사라져 버렸다.
6) 음식 맛에 예민해진다. 자연 식물의 다양한 맛에 새로운 미감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7) 적당히 먹게 된다. 과식이 부자연스럽게 된다. 이게 정말 신기했다. 예전엔 밥 먹고 디저트 안 먹으면 허했는데, 이젠 밥 한 끼로도 든든하고 충분하다.
8) 살 빠지는 건 덤이다. 이제 체중으로 스트레스받으면서 먹고 싶은 거 참으면서 살 빼는 게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건강한 맛있는 음식을 적당히 먹었더니 살이 알아서 빠져준다. 원래부터 순서가 잘못됐던 거다.
9) 드디어 글 주제에 맞는 내용. 단맛을 끊은 지 약 일주일 만에 생리를 시작했다.
그렇다. 생리를 시작했다. 6개월 전, 생리를 안 한 게 거의 1년째 되어가던 날 산부인과에서 받아온 경구 피임약으로 버티다 약이 다 떨어진 게 3달 전. 마지막 생리를 기점으로 또다시 두 달간 생리를 안 하다가(역시 난 평생 약으로 조절하면서 살아야겠구나 체념했었다) 단 음식을 끊고 일주일 만에 생리를 시작한 거다.
그리고,
제일 큰 건 '피로'가 없어졌다는 것. 단맛 중독일 때는 영양제를 아무리 들이부어도 피곤에 찌들었던 몸이, 단 거 하나 끊었다고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뭐랄까, 이전에는 계속 의식이 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안갯속에 갇혀 살았던 느낌이라면, 지금은 온 정신이 또렷하다.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체감이 컸던 건, 달달한 음식을 이제는 '참지 않는다'는 것. 그냥 안 먹는다. 안 먹고 싶다.중독이 사라졌다. 지금은 단맛을 완전히 끊었다기보다는 허용한 수준인데도, 많이 못 먹겠다. 많아봐야 한 번에 작은 비건 쿠키 1개 정도 먹을 수 있는 수준..?
이제 나는 달달한 음식을 '먹고 싶어 죽겠는데 참는'게 아니라, '굳이' 먹어야 하나 싶어서 안 먹는다.
이 마인드가 진짜 진짜 중요하다. 그러면 안 되니까 안 먹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먹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단 음식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끊어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단 음식을 끊었을 때 오는 해방감을 본인이 직접 스스로 느껴봐야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백날천날 남들이 잔소리해봤자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깨닫고 변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자기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다양한 채소의 맛을 사랑하게 되고, 조미료 없이 집에서 해 먹는 밥이 외식보다 백 배 천 배는 맛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조미료나 가공식품, 단 음식을 안 먹는 것은 아니다. 가끔 라면 당길 때 해 먹는다. 가끔 디저트 먹고 싶을 때 사 먹는다. 먹을 땐 정말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이젠 라면 반 봉지도 다 못 먹는다. 물리고 질려서. 그래서 두부랑 계란 넣어 먹는다. 근데 그거로 충분하다.
즉, 나는 무조건 자연식물식 해야 해! 가공식품 입에도 대면 안 돼! 보다는, 이제 좀 더 융통성 있게 내 삶에서 그것들을 허용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달래와 시금치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 다양하고 신선하고 저렴한 야채를 썰어 넣은 참치 야채비빔밥, 구운 두부에 고추냉이와 생강을 얹은 두부 덮밥, 다양한 버섯을 넣어 만드는 버섯 샤브샤브 등이다.
서론이 길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단 맛, 정제 탄수화물 등 가공식품을 한번에 끊어보길 권한다. 평생 끊으라는 건 아니다. 초반 3-4일의 고통만 참아보자.안 그래도 이놈의 불치병 탓에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든 여정, 자신의 몸과 정신의 변화를 즐기면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즐겁게 가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