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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an 12. 2021

영화 About Time 속 아빠와 아들

영화를 통해 배우는 부모자녀관계


세상 유일하게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넘나들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아들은 성인이 되는 스무 살에, 아버지로부터 이 집안 남자들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전해 내려온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아들은 처음엔 믿지 못하지만, 차차 능력을 실험해보며 시간을 넘나드는 방법을 터득하고, 바로잡고 싶은 인생의 부분 부분들을 교정해나간다. 실패한 첫사랑을 성공시키고자 수번이나 시간을 돌리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인생이 좌절되지 않도록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대신 바꿔주는 선행을 해보기도 하고, 미숙한 연애를 능숙해질 때까지 반복 되풀이해보기도 한다. 영화 <about Time>이다.

한 사람이 시간을 되돌려 인생의 시시콜콜한 사건들을 교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지고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아온 아버지와 이제 막 능력을 알게 돼 이를 통해 서툴게 인생을 배워가는 성인 아들, 이 둘의 대화와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의 큰 관전 포인트이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라는 요소를 첨가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더욱 박진감 넘치게 풀어 나가고 있다. 

영화 about time (2013) 중에서

사실 우리 인생에도 '시간을 돌리는 능력'만큼이나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사건들이 가득하다.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던 우리가 첫걸음을 떼 던 일도, 부모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던 우리가 유치원이라는 곳에 몇 시간씩 낯선 이들과 있어야 했던 일도, 작년과 달라진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만 19살이라는 나이부터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일도, 내 몸 하나 잘 건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부모가 되는 일까지. 우리의 삶에는 낯설고 적응해야 할 일들로 채워져 있다. 


부모들은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영화 속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우리는 이제 인생의 많은 부분에 노련해져 있다. 하지만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해야 하는 자녀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꼰대는 되기 싫고

지나간 일들은 상당 부분 미화되어 기억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지나 보내고 난 뒤, 이미 많은 것이 노련해진 부모들은 마치 과거에 있었던 힘든 시간들은 별 것 아니었던 듯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쉽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하게 된다. 이 조언들이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말로'만'하는 조언은 아이들의 한쪽 귀로 들어가 한쪽 귀를 흘러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이 속히 말하는 '꼰대'가 되어버린다.


부모와 자녀, 삶의 무게는 동일하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의 '삶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아이들의 귀와 마음을 연다.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해보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현재 겪고 있는 인생의 과제가 가장 크고 무거운 사건일 수 있다. 갓난아기에게는 젖을 빨아 배를 채우는 것이, 돌 전후 아이들에게는 다리에 힘을 주어 걷는 일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유치원, 초중고, 대학교 각 학년에 새로 들어가는 아이들에게는 예상할 수 없는 또래 및 선생님과의 관계, 새로 배우는 학문, 이성교제의 난관들이 안간힘을 써야 버틸 수 있을 만큼 불안하고 버거운 사건일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나오는 자녀들에게는 불투명한 미래가, 혹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모르는 답답함에 숨통을 조여 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고민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 영화 속 아버지의 태도는 참 인상적이다. 그는 아들이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은 큰 문제 앞에 늘 아버지를 찾는다. 지금 어른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에 비해 아이들의 고민이 작게 느껴진다고 하여서, 실제로 자녀들의 고민이 더 하찮고 가벼운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기억이 지난 고민들의 무게를 축소, 왜곡시켜 저장했을 수 있음을 명심하자.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아들

경청이 주는 선물

이처럼 평소 부모가 자녀의 어려움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면, 자녀는 부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러 다가올 것이다. 영화에서 아들이,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가져온 무서운 결과를 직면했을 때, 유일하게 자신과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부모에게 자녀가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우선 이야기를 잘 들어주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지 몰라도 진지하게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아이들 스스로가 부모의 경험담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구하게 될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경험담과 조언을 필요로 할 때, 이때가 바로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큰 영향력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타이밍이다.   

     

방관이 아닌 기다림이 필요해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처음으로 아들에게 전수할 때부터, 영화 속 아버지는 이 능력이 이러이러하니 이럴 경우 사용하지 말고, 이런 경우에는 사용하는 게 좋다고 자신의 경험이 정답인 것 마냥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차분히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아들의 반응과 선택을 지켜본다. 아들은 자신과 달라서 능력을 다르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존중해주는 태도이다. 아들이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능력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방관이 아닌 기다림이다. 방관과 기다림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데,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해쳐나가야 한다는 면목으로 마냥 내버려 두는 것이 방관이라면, 인생에 대한 안내를 간략히 해주고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며 성공과 실패를 함께 지켜 봐주는 것이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자세로 자녀를 지켜보다가 자녀들이 인생의 힘든 과정을 스스로 체험하고 부모의 조언을 구할 때, 기억을 되돌려 부모가 해당 나이에 겪었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자녀의 뒤에는 늘 부모가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면 부모와 자녀 모두의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리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이미 충분히 이상적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더욱 나은 아버지로 다가가기 위해 시간을 돌리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의 역할은 늘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 우리도 부모는 처음이기에 자녀 앞에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양육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반대한다.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더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부모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부모로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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