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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규리 Aug 25. 2021

공간과 공기

 공간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배경을 바꾸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 환기까지 돕는다. 두터운 시멘트 안쪽의 공간은 외부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순백의 공간에 들어서면 잡다한 생각의 고리들은 완전히 끊어지고, 목표는 선명해진다. 최근에서야 이런 경험을 하고 난 후부터는, 여행에서 숙소를 고를 때에도 한번 더 고민한다. 단순히 몸을 뉘일 곳을 고른다기 보단 내가 들어갈 공간을 고르는 것이다. 곳곳의 우드톤은 쉽사리 침범하기 어려운 백색 속에 아늑함을 불어넣어 충전의 장소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와 다른 생각에 빠져들고, 더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고, 늘 그랬듯 배를 채우고, 가벼운 아침을 맞이한다. 새로운 공간 덕분이다. 


 이렇듯 건물의 내부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이곳이 낯선 곳 한복판이라는 외부적 요인도 기분 전환에 한몫한다. 낯선 햇빛에 눈을 찡그리고, 건물을 뒤로한 채 완전한 타인들 속에 섞이게 될 때면 왠지 모를 근사함이 느껴진다. 아는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은 덤이다. 때때로 외로움이 섞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원래 나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어떨까. 다시 반복의 고리에 끼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실감과 안락함을 번갈아 주는 이곳을 무엇보다 성실히 가꾸어야 한다. 어느 곳에 위치할지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으나, 적어도 어떤 곳에 있을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청소는 내가 느낄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를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방의 공기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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