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타지로 이사 온 지도 5년이 넘은 시기. 처음 상경하여 올라올 때가 생각납니다. 다니던 대학교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여서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가깝게 지냈는데, 그곳을 벗어나 타지로 오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외로움에 사무치기 시작했던 그 감정이 생각납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히 마음이 멀어진다고 자주 보고 놀던 친구들이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져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게 점차 외로움을 거쳐, 고독으로 그리고 고립으로 넘어가는 시기. 그게 지금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착한 친구들은 반년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씩 연락하면서 저의 생사를 확인하고는 했습니다. 몇몇은 타지로 동떨어져 집 밖으로 나오지 않던 저를 만나기 위해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는 사람도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졸업 후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실패를 겪었습니다. 대학원도 갔다 자퇴하였고 고시 공부도 했는데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점점 세상의 구석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끔 보여주는 저런 관심들 덕분에 그래도 살아있는 듯합니다.
최근에는 학교에 있을 때 종종 보던 후배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자기도 이사 왔다는 이야기, 그러니 한번 보자는 이야기. 그렇게 또 누군가가 저를 세상으로 끄집어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본 그 친구는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고향이 너무 시골이라서 오기 어려우니 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전 가겠다고 했습니다. 밖을 나가기 위한 핑계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내려가는 김에 여행을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결혼식 후에 바로 터미널로 가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경주로 갔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느긋하게 길을 걷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관광지라면 으레 볼 수 있는 느린 우체국이 보였고 들어갔습니다. 엽서를 고르고 우표를 붙이고 펜을 들고 편지를 썼습니다. 일 년 뒤의 저에게로.
이쁜 글귀가 그려진 담벼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가만히 일 년 뒤의 저를 생각했습니다. 네 잎 클로버가 그려진 엽서를 집어 들고 자리에 앉은 거 치고는 편지에 쓴 글은 결코 좋은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일 년 뒤의 나라고 생각하니, 나 같이 느껴지지 않고 타인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랑 똑같은 성향을 가진 동일한 상황에 부닥친 누군가를 향해 글을 남기는 느낌으로, 저는 편지에 비난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너는 불편한 상황을 항상 피하려고만 하지, 너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다고 말하지. 열정, 열의는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불만은 많고 소심해서, 그 무엇에도 도전하지 않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남 탓하면서 괜찮은 척.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들어 가는 걸 좋아하지. 지금의 나로선 너를 신뢰하지 않아. 아마 너는 여전히 소심하고 회피할 거야. 무언가 잘 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난 자신 없어. 그런데 넌 나잖아. 너도 자신 없을 거야. 그러니 난 널 신뢰하지 않아.
그렇게 한 줄 한 줄, 좁은 엽서 안에 빼곡하게 썼습니다. 하나의 엽서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가만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아침엔 구름이 가득 껴서 하얗게만 보이던 하늘이 어느샌가 조금 걷혀서 하얀 바탕에 파란 얼룩무늬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도 나인데 싶어서, 조금 더 적어넣었습니다.
세상은 마음같이 흘러가지 않는 거라고 하더라고, 계획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니까. 지금 난 너를 신뢰하지 않고 난 너를 믿지 않지만, 어쩌면 이것마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르지. 글쎄. 아무튼 행운을 빈다.
그렇게 엽서를 편지 봉투에 넣고 왁스를 녹여 부어서 봉하고, 보내는 날에 맞춰 편지를 넣었습니다. 편지를 넣는 곳은 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다른 이들의 편지 봉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림도 그려서 편지 봉투 꾸며두었습니다. 결혼하는 부부를 그려놓은 편지 봉투를 보자, 결혼식이 생각났습니다.
항상 결혼식에 가면 조금은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언제나 결혼을 앞둔 자식들을 보는 그 부모의 입장에서 오랜 시간 키워온 아이가 이제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그런 감상에 몰입해서 그 위에서 부모를 당사자로서 바라본다는 상상을 하면 눈물이 맺히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물이 더 많이 났습니다. 결혼식을 보다가, 허리를 접어 고개를 책상 밑으로 잠깐 두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유가 달랐습니다. 문득 난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결혼을 하겠지 하며, 공감하면서 흘리던 눈물이. 이번엔 내가 결혼하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들에 몰입해서 맺히던 눈물이, 이제는 몰입이 되지 않아서,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