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로 결혼식 갔을 때, 셔틀을 타고 내려가는 김에 그대로 근처 경주로 갔다.
최근 몇 년은 혼자서 하는 게 많다.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쇼핑하는 일종의 일상 행위를 혼자서 한다. 그렇게 특이한 게 아닐지 모르지만, 의외로 그전까지는 혼자서 하지 않던 행동들이다. 이런 행위의 연장선에서, 여행도 사실 난 혼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혼자 여행을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원체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경주에 갔지만 어디서 무엇을 할지는 계획해둔 것이 없었다. 미리 정해둔 건 딱 두 가지, 하룻밤 잘 숙소와 거기까지 가는 버스표만 예약했다. 돌아오는 교통편도 계획하지 않았다. 여행 일정을 세우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많고 하다가 시간 보고 되는대로 예매해서 오면 되겠거니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무계획 여행은 어쩌면 혼자 하는 거니까 가능한 방식이겠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자기 전에 숙소 침대에 누워서, 그제야 휴대전화로 찾아본다. 경주에 할 게 뭐가 있는지. 아침엔 언제 나갈지. 대략적인 계획. 그마저도 사실은 그저 몇시쯤 어디 가서 걸어 다녀보자. 정도의 가벼운 생각 정도 뿐이다. 그렇게 걸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오후 5시쯤 되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밥을 안 먹었다. 뭐 먹을지를 미리 정하지도 않았고 돌아다니면서 정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커피랑 디저트 같은 거 주워 먹은 덕에, 그냥 넘어간 거도 있다.
계획하지 않았다는 건, 여유롭다는 거다. 지금 주어진 시간이 적어도 6시간은 있는데 해야 할 일정은 없으니 아주 느긋해진다. 전날에 결혼식에 갔었기에, 그 복장 그대로 차려입은 상태로 느긋하게 천천히 혼자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였다. 그 느긋함을 즐기고 우연히 마주친 곳에 들어가,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들을 스스로 하는 경험이었는데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도 비슷한 여행을 한 번 더 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느낌을 느꼈고 다양한 생각을 했다. 수첩 하나를 들고 가서 시간도 많으니까. 머릿속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생각을 끄적였다. 수첩 하나 들고 가길 잘한 듯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고 많은 시간을 들인 곳은 서점이었다.
황리단길에 있는 ‘어서어서’라는 서점이었다. 경주에 와서야, 서점에 가볼 생각을 했고 우연히 황리단길의 메인 거리 초입에 있어서 들리기 좋은 장소였기에 간 곳이다. 처음엔 오전 일찍 가서, 손님이 없었기에 혼자서 여유롭게 책 하나하나를 다 살펴보고 읽기도 하고, 구경했다. 서점치고도 좁고 작은 서점이었지만, 그 아기자기한 장소에 사장님의 취향과 관심이 깃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언가 아늑했다. 황리단길을 다 돌고 빠져나올 때, 한 번 더 들렸는데 그땐 방문한 사람들이 많아서 작은 공간을 다 채우고 있었다. 지금은 가만히 서서 책을 읽어보고 있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왔던 게 운이 좋았다.
작은 서점치고 꽤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서점은 독특하게도 관광지의 역할을 하는 듯했다. 난 오전에는 꽤 오래 머물렀는데, 두 명 정도 짝지은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곤 했다. 가만히 책을 읽으면서 그들을 지켜보기도 했는데 이곳은 서점이면서 관광지가 되어서인지, 외국 여행객이 찾아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들어와서, 공간을 즐겼다. 이쁘게 꾸며놓은 공원을 찾아가서 사진 찍고 놀듯이, 그들은 이 서점을 관광했다.
나도 전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서점에 들른 적이 있다. 외국 여행을 가서, 서점을 들른다는 건 독특하다. 책은 문자로 이루어진 문화니까.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으로선 사실 구경하고 즐길 거리가 없는 장소지 않은가. 자국에서 서점에 가면, 책을 본다. 제목을 보고 표지를 보고 책을 펴서 읽어보기도 한다. 큐레이션이 있으면 그것도 읽어보고 그러다가 우연히 갑자기 마음에 꽂히는 책을 발견하면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이게 내가 우리나라에서 서점을 가면 하는 일과다. 이 모든 건 언어를 모르면 의미 없지 않은가.
-서점에서 찍은 사진. 사진을 잘 못찍어서, 여행가도 사진은 찍지 않는 편이다.
‘어서어서’ 서점에 온 그 외국인들은 무엇을 구경하고 즐길까. 한 일본인 여행객은 서점 주인님이 꾸며놓은 인테리어를 보며 ‘카~와이~’했다. 귀엽고 이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고는 사장님께 말을 걸었고 사장님도 응대하셨다. 그 대화까지 듣지는 않았지만 (사장님이 일본어를 하실 줄 아시는 듯했다. 난 들어도 못 알아들었을 거다) 그 일본인분들은 어떤 체험을 하신 거였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서점에 들르면, 그 장소가 주는 분위기가 좋을 때가 있다. 특히 독립서점, 동네서점은 각자 서점 지기 분들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꾸며지니까. 그 재미도 있다. 그렇지만,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성향은 일정하니까. 대체로 차분하고 잔잔하다. 조용하고 때론 아늑한 그 장소가 주는 감각이 좋을 때도 있다. 그런 걸 즐기기 위해서 외국 여행객은 오는 걸까. 어쩌면 그 나라가 가진 독서, 문학, 책의 문화가 서점에 배어있어서, 서점이 주는 향취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까. 전에 일본에서 들린 서점은 큰 인상이 남진 않았다. 혼자 간 것도 아니라 오래 머물지도 않았고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 본 평범한 서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외국으로 다시 여행 가게 되면 서점을 들려봐야겠다. 나라마다의 분위기가 다를지 궁금하니까. 어떤 감상으로 서점을 관광하는지 느껴보고 싶다.
‘어서어서’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샀다. 이 서점만의 독특한 굿즈랄까. 몇 가지 같이 챙겨주셔서 기념품이 되었다. 이 경주 여행에서 물리적 실체로 남기는 게 전혀 없을 뻔했는데, 덕분에 실존하는 형체로서 기념이 되었다. 서점에서 머물면서 사장님을 관찰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고 계셨다. 서점을 운영하고, 그래서 당당하게 일하는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그의 삶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사기 전에 사장님과 대화도 나눴다. 사실 난 숫기가 너무 없는, 과할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라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 걸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함에도,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서점 벽에 꾸며져 있던 영화 포스터에 관해 묻기도 하고, 책 추천도 받았다. 책과 영화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닌 예술이라 생각하는데, 이야기 예술 상당히 향유하시는 분이구나. 그래서 이런 서점도 운영하시는구나.
그분께 추천받았던 영화는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였고 추천받은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