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가깝고도 먼

by 무명

청첩장을 받았다.
요즘 주변 지인들이 결혼을 많이 해서, 청첩장을 받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분이 달랐다.

사랑이 결실을 맺고,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살겠다는 선언.
청첩장이란 보통 그런 편지다.
받는 순간에는 축하가 오가고, 건네는 사람의 얼굴에는 행복이 묻어 있다.

그게 일반적인 풍경일 텐데, 왜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 애매하고 오묘했을까.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는 오래된 친구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우리는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다.

중간에 멀어졌던 시간도 있고, 내가 친한 사람이 없는 그런 좋지 않은 성격 소유자이기도 하고,

우리가 이성이기도 해서 그렇다.



우린 이성 친구인데, 같이 아는 친구가 없다.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우리 둘은 서로 사는 세상이 조금 달랐다. 친하게 지낸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서 그렇게 됐다.

그렇다 보니, 우린 만날 때면 단둘이 만났고, 지금도 둘이서만 약속을 잡고 만난다.



나는 이 친구가 좋다.
약속을 잡으면 괜히 조금 설렌다. 당일이 올 때까지 은근한 두근거림을 안고 지내고, 전날이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옷을 입을지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쌓아두었다가, 막상 만나면 잊어버린다. 그러다 기억나는 것부터 조심스럽게 꺼낸다.


우리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만나면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세 시간쯤 앉아서 이야기만 하다 헤어진다.
술을 마시긴 해도 맥주 한두 잔 정도. 어릴 때는 취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친구는 애매하게 가깝고 먼 사람이다.
그래서 눈치를 보게 되지만, 또 그래서 편하다.
멀기 때문에 우리는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다. 약속을 잘 지키고, 말을 고른다. 존대를 하지는 않지만, 말에는 늘 우아한 완곡함이 있다.

그러면서도 가깝기에, 각자의 일상과 생각을 조용히 나눈다.
서로가 살던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하면, 이 친구는 늘 신중하게, 집중해서 들어준다.
어쩌면 이것도 우리가 완전히 가깝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이 친구에게는 이상하게도 말하게 된다.

우리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자주 한다.
혼자 떠났던 여행, 좋았던 책과 영화, 최근에 들은 철학 이야기, 아니면 마림바 소리가 좋더라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들.
그럼에도 이 친구는 언제나 성심성의껏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순간들이 나는 참 좋았다.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귀한 일이고, 지금의 나에게 그런 사람은 이 친구뿐이다.



그래서 이 친구의 결혼 소식이,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임에도 마음이 온전히 기쁘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 보통 사람 사이는 달라진다.
각자의 세계가 확장되고,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긴다.
이미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이성이라는 이유로 더 만나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사랑과 우정은 감정의 물성에 있어서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젠가는 글로 쓰고 싶다)

이성 친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사회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이성이라는 관계에는 자연히 거리감을 두게 된다.

이 친구와도 자주 만나고, 대화도 많이 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일 년에 두 번 정도만 만나는 건. 그런 연유도 있다.

아무래도, 결혼하면 더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거기에 만약, 아이까지 생기면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질 테고.



우리의 관계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노력해서 관계를 유지할 텐데.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다소 멀었기에, 이 결말이 자연스럽게 예견되어.

아마 그래서 오묘한 기분을 느낀 건 아닐까.



좀 더 진심을 담아서 축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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