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Dec 05. 2022

회사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

예비워킹맘의 복직 준비 과정

복직이 열흘 남았다.

아이와 온전히 둘이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주가 시작됐다.


예비 워킹맘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회사에 복직 계획을 알리는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낼 수 있는 육아휴직 2년을 전부 썼고, 지금 복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 달 전쯤 인사팀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복직 2주 전 안내드리겠다고 한다. 조용히 기다리는데 2주 전이 되어도 통 연락이 없다. 지금 회사가 안팎으로 시끄럽다는데 그래서 오래 걸리는 것이겠지, 이해하려 했으나 마음은 너무나 불안하다.


매일 회사 꿈을 꾼다. 내가 전혀 잘할 수 없는 뜬금없는 부서에 발령이 나기도 하고, 애 엄마는 집에서 애나 보라는 폭언도 듣고, 야근을 하느라 아이 하원을 제시간에 하지 못하는 그런 악몽. 글쎄, 나중에 '이거 꿈에 나온 것 같아'라고 데자뷔처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예지몽일까.


나랑 같이 일했던 후배는 새로운 팀장에게 내 얘기를 넌지시 건넸다. 다만 우리 팀이 야근이 많아 대리님이 오시기에 좋은 부서일지 모르겠다고 말을 덧붙이니, 팀장의 안색이 변하며 그런 사람은 우리 팀에 필요 없다 했단다. 아기 키운답시고 퇴근 시간을 보장받으려 하고 재택근무니 근무시간 조정이니 하는 혜택을 모두 누리며 다니려고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회사가 놀러 오는 곳도 아니고, 아이를 키우는 게 그렇게나 중요하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나와는 전혀 안면도 없는 사람이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비난한 게 아니지만 분명하게 가슴 한쪽이 시리다. 이 사람이 왕꼰대고, 이상한 사람임은 틀림없지만 사실은 다른 팀장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아이 키우기 좋은 편인 회사라곤 하지만 회사는 애엄마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후배가 이상한 팀장에게 걸린 게 아니라, 이것이 결국 워킹맘에게 놓인 현실인 것만 같다. 후배는 있는 힘껏 팀장 말에 반박하며 그러다가 일 잘하는 사람 다 놓친다고 지적했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 사람이 일 잘하는지 보다는, 언제든 부르면 회사에 나올 수 있고 부리고 싶을 때까지 부릴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궁금했나 보다.


이번엔 친한 선배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나는 "일은 뭐든 상관없고, 퇴근 시간 보장받을 수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선배는 "사람이 좋다곤 할 수 없는데.. 퇴근 시간은 보장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옆 팀을 소개해주었다. 그 팀 이름을 들은 동기는 절대 그 사람들과 엮이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나도 같이 일한 적 있고 자체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릴 정도로 최악인 직원이었지만, 내겐 그런 인물과 일하는 것보다 '퇴근 시간 보장'이라는 달콤한 '혜택'이 더 중요했다.


월요일 오전, 아이 등원 길도 유독 힘들었는데 회사일로 골머리를 앓으니 이미 복직한 기분이다. 마음이 무겁다. 마침 얼마 전 자신의 회사에 복직한 친구가 선물을 보내왔다. 곧 복직 아니냐며 응원 선물을 보냈다. 입사와 동시에 출산휴가를 쓰고, 3개월 뒤 복직을 한 친구다. 입사 시 이 부분에 대한 사전 협의를 마친 상태였음에도, 곧장 출산휴가를 떠난다고 하자 진짜 가는 거냐며 당황해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순식간에 지난 3개월. 당연하단 듯이 "모유수유는 어떠냐, 힘들지 않냐"라고 묻는 질문에 "그래서 분유 수유합니다"라고 답했다는 이야기, "나 때는 2개월 만에 돌아오고 그랬는데, 3개월이면 길다, 길어"라고 말하는 선배 말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는 이야기는 곧 복직인 나를 씁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출산은 나보다 훨씬 늦게 했지만 복직을 먼저 한 선배 워킹맘인 친구는 '생각보다 괜찮다'든지, '워킹맘 할 만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복직하고 힘들면 언제든 얘기해. 서로 하소연하자"라고 말했다.


복직에 앞서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그다지 회사에서 원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티끌만큼의 애사심도, 회사에 내 모든 능력을 쏟아붓겠다는 미련한 열정도 없지만 그럼에도 '회사원'으로서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2년 간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off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멋진 워킹맘으로 부활한 내 모습을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시 퇴근해야 하는 애 엄마'일뿐이고, 내 능력보다는 회사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한없이 우울한 미래에 빠져 숨이 턱 막히다가도,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다. 내 복직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팀장과 말싸움을 나서 준 후배, 여의치 않은 상황에도 내가 갈만한 부서가 없을지 고민해 준 선배와 동기들, 자신과 같은 길을 가게 될 나를 염려해 먼저 위로를 건네는 친구들. 오로지 그들뿐이다. 워킹맘을 그나마 위로하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